진보든 보수든 정치적 가치관이 확고하고 진영 논리에 근거해 모든 판단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라면,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70)을 이해하기 난감할지 모른다. 경제학 교수로 있다가 신군부의 민정당으로 정치 생활을 시작했지만, 1987년 개헌 당시 이른바 ‘경제 민주화 조항(헌법 119조 2항. ‘김종인 조항’으로도 불린다)’을 밀어붙여 관철했다.

공직을 맡은 것은 노태우 정부 때가 유일하지만, 한국 재벌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2002년 대선 전에는 노무현 후보의 조언자로 활동했지만, 17대 국회에서는 당시 열린우리당에서 분당한 민주당 의원을 지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조언자로 통한다. 양극화가 다음 대선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도 “원래 복지는 보수의 어젠다다”라며 진보 진영의 기대를 비튼다.

ⓒ시사IN 백승기
정치·경제·국제관계·헌법 같은 주제에서 진보니 보수니 하는 우리 사회의 이념 규정을 비웃듯 폭넓은 식견을 펼쳐온 김 전 수석을 11월25일 서울 종로구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 두 시간 동안 만났다. 세 가지를 묻고 싶었다.

첫째, 헌법. 여권이 다시 개헌론을 띄우는 가운데, 우리 헌법 중 가장 논쟁적인 조항을 만들어냈던 그가 생각하는 헌법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둘째, 시장 만능주의의 종언. 감세론과 성장담론이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힘을 잃어가는 지금, 크게 보아 보수 진영에서 주로 활동하면서도 끊임없이 시장주의자와 전투를 벌여온 김 전 수석은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셋째, 그래서 박근혜. 박 전 대표가 복지 담론을 벼리는 데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김 전 수석이 보는 2012년 대선의 화두와 박 전 대표의 운명을 묻고 싶었다.

그렇게 현안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섰지만, 이틀 전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안이 연평도에서 터져버렸다. 그래서 북한부터 물었다.

북한이 육지에 포격을 했다. 민간인까지 사망했다. 남북 관계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휴전 이후 60년 동안 이러한 위험 속에서 살아왔다. 북한이 저런 상대라는 게 새로울 것은 없다. 우리가 항상 조심하고 예방해야 한다.

조심하고 예방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남북 간에 대화해서 제대로 숨통을 트면 저런 돌발 상황은 나오지 않는다. 기다리면 북한이 곧 붕괴한다고 현 정부가 그러는데, 상황 인식이 잘못됐다. 소련이 미국과의 군비 경쟁을 못 이겨서 붕괴한 것과는 유형이 다르다. 북한 붕괴를 원하지 않는 중국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걱정은 없나? 60년간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이러니, 이 정도 국지전 변수는 이미 시장에 반영돼 있다. 전면전은 중국의 제어 능력도 있지만, 북한부터가 능력이 없으므로 가능성이 크지 않다.

시큰둥해 보일 정도로 김 전 수석은 담담했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호들갑은 어떤 경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태도다. 현안은 여기까지 하고 본 주제로 들어갔다. 먼저 헌법. 우리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이른바 ‘김종인 조항’. 소득 분배, 경제 민주화, 국가의 시장 개입을 모두 정당화한, 시장주의자들이 ‘사회주의적 요소’라고까지 부르는 조항이다.

다들 대통령 직선제 같은 권력 구조 문제만 쳐다보던 1987년 개헌 때 왜 이 조항을 넣었나? 우리나라 재벌의 성장세를 보니, 1990년대쯤 되면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의 힘이 역전되겠구나 싶더라. 선진국 선례가 다 그렇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법 같은 시장질서 관련법을 만들 때 재벌이 재산권 침해라며 위헌 신청을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경제 권력이 언론과 법률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법조인들이 헌법 취지를 제대로 살린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헌법에다 국가의 시장 개입 권한을 아예 명문화했다.

반발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전경련은 내가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이 됐을 때부터 발칵 뒤집혔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한테도 이런 조항을 만들자는 얘기를 종종 했던 걸 용케 알고 ‘반재벌 인사’로 찍어뒀더라. 전경련이 주최한 토론회에 가서 정주영 회장 면전에서 “자본주의라는 게 기업가 멋대로 하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전두환 대통령도 개헌안을 보더니 그런 조항이 필요하냐고 묻더라. 프랭클린 루스벨트 예를 들었다. 루스벨트가 만든 뉴딜 관련법 대부분이 나중에 미국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이 났다. 그런 걸 방지하는 조항이라고 설명해 관철했다.

이 인터뷰를 진행하던 바로 그 시간 국회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문어발 확산을 규제하는 ‘상생법’을 통과시켰다. 어찌 보면 대형 마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제한하는 법이지만, 위헌 논란은 일지 않는다. 헌법 119조 2항이 이런 입법이 가능하다고 밝히기 때문이다. 헌법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보수 진영은 ‘FTA 협정 위반’이라고 공격 방향을 비틀 수밖에 없었다. 119조 2항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유다.

지난해까지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자문위는 권력 구조 개편 방향에 대해 1안으로 대통령과 총리의 이원 정부제, 2안으로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제시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내놓은 이원 정부제는 내용상 내각제에 가깝다. 내각제에 대한 거부감이 많아서 그렇게 ‘포장’을 한 거다. 분권형이라는 건 현실 정치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 예를 자꾸 드는데 한국에 아주 잘못 알려졌다. 거기는 차라리 제왕적 대통령제다. 정치 원리를 잘 모르는 법학자들이 제도만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며 분권형 얘기를 한다.

ⓒ뉴시스김종인 국회 헌법연구자문위원장이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오른쪽)에게 개헌안 최종보고서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개헌 논의가 너무 법학자 중심인 것 같다. 법학자들만 모여서 법을 만들면 정치를 법률화한다.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을 그렇게 만들었다. 정치를 법률로 규정해버린 거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그래서 어떻게 됐나? 히틀러가 나왔다. 그 교훈을 얻은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정치하는 사람들과 승전국 자문단이 다 모여 헌법을 만들었다. 지금 독일 민주주의가 유럽에서도 가장 탄탄한 이유다.

우리도 지금 개헌을 주장하는 정치인이 있다. 이재오 장관 같은 사람이 개헌을 이슈로 내세워서 뭘 좀 하려는데, 정권 초기에도 못한 사람들이 정권 말에 이벤트 비슷하게 해가지고는 개헌할 수 없다. 그리고 설사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국민투표에서 되지도 않는다. 그런 쓸데없는 망상에 정력 낭비할 필요 없다.

권력구조 원 포인트 개헌론은 어느 정권이든 꺼내들고 싶은 것 같다. 정 임기 말에 원 포인트 개헌을 하려면 “저 대통령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라는 국민 여론이 있을 때 고쳐야 한다. 그런데 지금 여론은 “1년만 하고 그만뒀으면” 이거 아닌가. 청와대에서는 지지율이 60%라고 하던데. 웃기는 소리다. 지지율이 60%라면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왜 그렇게 망했겠나.

김종인은 개헌론자다. 하지만 제대로 못할 바에는 아예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특히 지금은 제대로 할 수가 없는 때라고 본다. 김종인은 세종시 반대론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세종시가 다시 논란이 된 상황에서는, 현재 진행상황을 되돌리며 소모적 논쟁을 하느니 원안을  추진하는 게 낫다는 의견을 냈다. 1970년대로 얘기를 돌려보자. 김종인은 부가가치세 도입에 반대했다. 부가세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고 본다. 하지만 1980년 신군부가 부가세 철폐를 검토해달라고 한 데 대해 “4년 실행한 세제를 다시 되돌리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더 크다고 판단해, 내가 반대했던 부가세 지키려고 정치판으로 들어왔다”라고 말한다. 원리주의자와는 거리가 멀고, 언제나 ‘지금 시점’에서 비용과 편익을 새로 계산한다. 보수 진영에 몸담아 오면서도 학문과 정치 인생 내내 시장 원리주의자와의 대립은 필연이었다.

강만수 경제특보와는 35년 전에 부가세 도입을 두고 부딪쳤고, 요즘은 감세 문제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세금이라는 게 원래 정치적인 거다. 경제만 공부한 사람들은 이걸 모르는데 세금의 역사는 정치의 역사, 혁명의 역사다. 박정희 정권이 말기에 저항에 부딪힌 것도 본질적으로는 조세 저항이었다. 부가세를 얻어맞은 소상인 계층이 저항 세력에 합류하니 이게 폭발해버린 거다.

‘세금이 정치’라는 표현을 경제학자에게 듣다니 신선하다. 학자들은 자기 이론의 원리를 가장 먼저 놓고 그 다음에 현실을 본다. 끼워 맞추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정책하는 사람은 그런 도그마에 빠지면 안 된다. 이런저런 경제 이론을 두루 머리에 집어넣고 있다가, 상황에 따라 어떻게 조합해서 나라를 이끌어갈지를 생각해야 한다.

시장주의자는 그 기준을 맞추기 힘들 것 같다. 시장에 맡겨놓으면 다 된다?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은 너무 단순하다. 장하준 교수가 정통파 시장주의자를 비판하니까 책이 엄청나게 팔리지 않나. 시장주의란 옛날부터 이론가들 얘기고, 현실에서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그걸 믿고 따라가면 사회가 폭발해버린다. 길게는 수백 년간 자본주의를 하면서 별별 모순을 다 겪고 그걸 이렇게 저렇게 해결해서 만들어놓은 사회, 그게 오늘날 유럽이다. 미국도 역사가 짧아서 그렇지 곧 따라갈 것이다. 이런 실사구시 덕에 큰 꿈을 품은 사람이 좌우 양쪽에서 찾아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고,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지금은 박근혜 전 대표와 한 묶음으로 거론된다.

ⓒ뉴시스김종인 전 경제수석은 박근혜 의원(위)에게 “독일 메르켈 총리를 벤치마킹하라”고 조언했다.
어느 평론가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김종인이냐 이헌재냐의 선택에서 이헌재로 간 순간에 결정됐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노무현 정권의) 초대 총리, 초대 재경부 장관, 다음 재경부 장관까지 하마평만 계속 나던데, 정작 나는 대선까지 도와주고 대선 후에는 이미 정권이 성공하리라는 기대를 접은 상황이었다. 2001년 1월인가에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노 대통령이 날 보자고 하더라. 그때는 ‘이런 사람이 하면 나라가 좀 바뀔 수 있겠다’ 생각했다. 서민적으로 사고하고, 재계의 힘이 세지는 흐름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더라. 그래서 ‘도와주마’ 하고 약속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이기고 후보가 되고 나서 몇 마디 충고를 했는데, 얼굴이 확 굳어지더라. 이미 구름 위에 떠 있었던 거다. 그 뒤 몇 번 더 실망하고는 기대를 접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에 비해 ‘좋은 학생’인가? 에이, 나이 70 먹은 내가 캠프를 가고 그런 건 전혀 아니고…. 서너 번 얘기했는데,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면에서는 좀 낫다. 사실 내가 박 전 대표를, 지난 17대 국회의원 할 때 박 전 대표가 독일 가면서 독일 상황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해서 만났다. “이번에 독일 가면 메르켈을 보고 벤치마킹하시오”라고 이야기했다. 메르켈이란 사람이 과감하면서도 참을성 있고, 설득력이 있다. 동독 출신에, 여성에, 이혼 경력까지, 악조건만 가진 사람이다. 메르켈이 국회의원 한 지 15년 만에 수상이 됐는데, 박 전 대표도 2012년에 얼추 15년이 된다. 벤치마킹할 게 많다. 사실 독일 사민당의 포지션을 이상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게 메르켈이다. 메르켈이 기민당에서 어떤 식으로 했느냐 하면, 사민당의 정책적 에센스를 자기가 확 다 받아버렸다. 그러니 오히려 사민당이 뭘 해서 차별화를 할지 모르게 됐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이런 능력이 없다.

정치권에서 박 전 대표는 유연성과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는 편이다. 지난 대선 때 박 전 대표가 ‘줄·푸·세’라고 감세 공약을 냈는데, 그때는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상황 인식이 잘못된 거다. 참모가 그래서였을 거다. 시대 기류가 바뀌고 모든 정치사회 현상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그걸 인식하고 감세 철회를 주장하며 자기 사고를 바꿨다는 건 용기다. 긍정적으로 봐줘야 한다. 18대 국회 상반기에 보건복지위로 가서 복지 공부 2년 했고, 이제 국가재정을 보러 기획재정위에 왔다. 자세가 좋다.

김 전 수석의 소신과 비슷한 코스다. 조언을 해준 건가? 그런 건 아니고, 언젠가 강연에서 만났을 때 재정 파탄으로 혁명을 맞은 루이 16세 얘기를 하면서 대통령 될 준비가 뭔지 그런 얘기는 했다. 2012년 대선의 화두가 뭐라고 보나. 양극화다. 지방선거를 통해 유권자가 복지와 양극화 해소를 원한다는 목소리를 냈는데, 그걸 부정하면 큰일 난다. 성장해서 돌파하자, 토목 사업으로 어떻게 해보자는 이명박식 논리는 이미 파산했고, 이제 다음 대안은 뭐냐고 유권자가 정치권에 묻고 있다.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인 저출산 문제도 따지고 보면 양육 부담 문제 아닌가. 결국 양극화와 연동한다. 우파 후보라고 불리할 것만은 없는 게, 복지제도의 원조가 독일의 보수 정치인 비스마르크다. 복지가 좌파의 전유물이라는 건 역사적으로 틀린 소리다. 조금 이르지만, 선거 전망은 어떤가. 여야를 놓고 보면 50대50 싸움인데, 만약에 야당에서 단일 후보가 나오면 그쪽이 조금 더 유리해 보인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나라당이 흥분하겠지만 현재로는 한나라당이 불리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동영이 아니라 노무현을 꺾고 대통령이 된 것처럼, 야권 후보가 여당 후보가 아닌 이명박을 꺾고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박 전 대표와의 관계를 물을 때마다 김 전 수석은 “자주 조언하는 사이는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최근 경제·복지 이슈와 관련된 박 전 대표의 행보에는 ‘김종인 스타일’이 적잖이 배어 있다. 박 전 대표가 한두 번 조언도 잘 흡수하는 ‘말 잘 듣는 학생’이든 ‘그저 우연’이든 흥미로운 대목이기는 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가볍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가 뜻밖에 새로운 사실을 들었다. 

광주 출신으로 보수 진영에 오래 몸담았다. 광주가 아니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온라인이고 출판물이고 모든 프로필이 잘못돼 있고, 기사도 다 틀렸다. 조부(김병로 초대 대법원장)가 전북 분일 뿐 부친도 서울 분이고, 한국전쟁 때 광주에 피난 가서 1년 반쯤 있었던 게 전부다. 인사철마다 ‘호남 몫’이라며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좀 우습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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