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50만 대는 팔리지 않겠습니까? 신제품(아이폰4)요? 그건 일단 반응을 보고 결정할 생각입니다.”

2009년 11월28일. 애플 아이폰 3G 및 3GS 출시 행사를 위해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만난 김우식 당시 KT 개인부문 사장(현 KT CS 사장)은 아이폰 예상 판매량을 50만 대 정도로 예상했다.

초기 물량은 6만~10만 대였다. 50만 대는 당시 아이폰 수요량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나온 말이었다. 국내에는 삼성전자·LG전자 같은 글로벌 2~3위 휴대전화 업체가 시장을 80% 이상 장악하고 있고 애프터서비스 망도 잘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애플의 MP3인 아이팟 국내 판매량(약 50만 대)을 기준으로 이 정도는 팔리리라 본 것이다. 더구나 아이폰 3GS는 미국에서 출시된 지 5개월이나 지난 구형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2010년 11월, KT는 아이폰을 1년 만에 160만 대 이상 판 것으로 집계했다. 외국산 휴대전화로는 모토로라 ‘레이저’ 이후 가장 많이 팔린 수치다.
 

ⓒ뉴시스지난해 11월28일 아이폰이 나오자 국내 소비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50만 대 판매 예상을 훨씬 넘어 1년 만에 160만 대가 팔렸다.

출시되는 국가마다 애플 스토어에 줄을 세우며 ‘신드롬’을 이어간 애플 아이폰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시 4개월 만에 50만 대를 돌파한 데 이어 신문사·백화점·은행·게임사 등이 아이폰 앱을 활용한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을 내놓고 생활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아이폰을 홍보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아이폰을 소지하지 않은 이용자는 이 과정에서 ‘아이리스(iless)’라 불리기도 했다.

음성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바뀐 모바일 산업

전문가들은 한국 모바일 산업의 역사가 ‘아이폰 출시’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으로 본다. 한국을 ‘갈라파고스’로 만들어온 모바일 산업 규제가 아이폰 출시로 인해 대폭 풀린 것이 첫째 이유다. 아이폰 출시가 지연되자 아이폰 대기 수요자들은 정부에 한국형 무선인터넷 표준(위피, WIPI) 폐지를 요구했다. 결국 2008년 12월10일 위피 의무화 정책은 폐지되었다. 아이폰의 위치정보 수집(위치정보사업자 허가)이 문제가 되자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애플은 위치정보사업자에 해당되지만 KT가 책임지는 조건으로 출시가 가능하다”라고 예외를 인정하기도 했다.

출시 뒤에는 낡고 표준에서 어긋난 인터넷 환경이 문제로 드러났다. 스마트폰에서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한 규제(전자금융감독 규정)가 아이폰 인터넷뱅킹이나 신용카드 결제를 막자, 정부(국무총리실)가 나서 스마트폰에서 공인인증서 의무화 규정을 없애고 다양한 기술 방식을 허용했다. 아이폰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살아 있을 규제들이었다. 업계 이해관계마저 맞물려 ‘관행’으로 굳어지려 한 상황이었다.

아이폰이 ‘전설’이 되고 있는 둘째 이유는 모바일 산업을 음성 중심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바꿔놓았고, 데이터 폭발을 유도해 새로운 시장을 열었으며 결국 투자까지 유도하는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안형환 한나라당 의원)에 따르면 7월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의 모바일 트래픽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0~300% 증가했다고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아이폰을 출시한 KT는 데이터 트래픽이 465.3테라바이트(TB;1기가바이트짜리 영화 1000편 분량)로 통신 3사 중 가장 많은 데다 전년에 비해 344.1%나 증가했다. 갤럭시S를 출시한 SK텔레콤은 323TB로 KT 뒤를 이었으며 증가율은 232.4%를 기록했다.

이 같은 데이터 폭증은 통화 품질에도 영향을 끼쳤고 통화 중 끊김(콜드롭) 현상이 자주 벌어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사는 경쟁적으로 기지국 증설과 네트워크 확충에 나섰다. KT는 ‘아이폰 효과’에 일찍 눈을 떠 이른바 3W(와이파이(WiFi), 와이브로(WiBro), WCDMA) 망 확보에 적극 나섰다. 아이폰을 보니 기존 망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고 판단해 4G(LTE)도 조기 구축할 태세다.

이 같은 결과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갤럭시S를 출시해 아이폰에 맞불을 놓은 SK텔레콤은 점유율 50.68%로 시장 방어(2010년 3분기 기준)에 성공했으며, KT 점유율은 31.27%에서 31.53%로 소폭 상승했다. 반면 ‘스마트폰 지진아’라는 평가를 받는 LG유플러스는 지난해 2분기 최고 점유율(19.08%)을 기록한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수익성도 나쁘다. 2010년 3분기 당기순이익(72억원)은 지난해에 비해 94%나 줄었다.

갤럭시S가 ‘이순신폰’ 된 사연

통신 3사의 이 같은 실적은 스마트폰과 모바일 데이터 열풍이 만들어낸 결과로 분석된다. 실제로 SK텔레콤과 KT가 갤럭시S와 아이폰으로 시장을 양강 구도로 만들면서 초당 요금제 및 결합상품으로 줄어드는 음성 매출을 데이터 매출로 보충한 반면, 스마트폰 점유율이 6%에 불과한 LG유플러스는 음성 수익 하락을 막지 못해 수익 악화를 초래했다. 이는 국내 모바일 시장의 흐름이 일반 휴대전화에서 스마트폰으로, 음성에서 데이터 중심으로 완전히 넘어왔음을 증명한 것이다.
 

ⓒ삼성전자 제공스마트폰 돌풍에 무심했던 삼성전자는 아이폰 충격을 겪고 난 뒤에야 절박한 심정으로 갤럭시S를 출시했다.


마지막으로 아이폰은 역설적으로 위기에 처했던 삼성전자 모바일의 부활을 이끌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산업의 흐름이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것을 읽지 못했다. 글로벌 아이폰 돌풍을 애써 무시하고 노키아 따라잡기에 전력을 다했다. 그러다가 안방인 한국 시장에서도 아이폰이 무서운 기세로 팔리고, 무엇보다 한국 오피니언 리더의 ‘폰심’을 잡았으며, 트위터 및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장악하자 생각을 바꾸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당시 부문장은 물론이고 마케팅·홍보팀장까지 불러 갤럭시S가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점을 공유했다. 비장하고 절박했다. 회의실에는 ‘임전무퇴, 물러나면 낭떠러지다’라는 구호가 있었다”라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알려지자 일부 언론에서는 갤럭시S에 ‘이순신폰’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이폰에 눈을 뜬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빅5’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며 시장점유율 4위로 올라섰다. 무엇보다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의 판매 호조가 주효했다. 갤럭시S는 6월 출시 이후 전 세계 90여 개국 210여 이동통신사에 공급되며 누적판매량 700만 대를 돌파했다.

이렇게 아이폰은 출시 1년 만에 한국 모바일 산업의 거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1년 후에는 어떨까? 아이폰이 바꾼 시장이 고착될까? 또 다른 플레이어(구글·블랙베리·마이크로소프트·삼성전자·LG전자·팬택 등)가 다시 흔들어놓을까? 예측하기 어렵다. 모바일 산업 변혁 주기는 점차 짧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아이폰만큼 충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기자명 손재권 (매일경제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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