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요정’이 누운 관 위로 그의 손때 묻은 기타도 함께 누웠다. 바람은 스산했다. “진원아, 가지마. 미안해”라고 한 지인이 울부짖었다. 숨죽여 훌쩍이던 가족‧지인의 울음소리가 점차 커졌다. 11월8일 오전 12시 원맨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씨의 발인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올해 서른 일곱. 그는 갔지만 목소리는 남았다. EP(Extended Play) 앨범을 포함해 모두 여섯 장의 앨범이 남았다. 

이진원씨는 11월1일 반지하 자취방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10월30일에도 공연을 했었다. 다음 앨범도 준비하고 있었다. 지인들이 집에 찾아가 쓰러진 그를 발견한 11월1일은 녹음스케줄이 잡혀 있는 날이었다. 병원에서는 그가 뇌출혈로 쓰러진지 30여 시간이 지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있던 이씨는 잠시 상태가 호전되는 듯 했으나 결국 11월6일 오전 숨졌다. 살아있는 누구에게 어떤 말도 남기지 못했다. 

2003년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첫 앨범 〈인필드 플라이(Infield Fly)〉가 입소문만으로 1,599장이 팔렸다. 방송에서는 금지곡으로 묶였지만 ‘스끼다시 내 인생’ ‘절룩거리네’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며 2004년 재발매까지 이끌었다. 이후 2006년 2집 〈스코어링 포지션〉, 2008년 3집 〈굿바이 알루미늄〉을 내놨다. 가장 최근 내놓은 앨범에서 달빛요정은 ‘전투형’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올해 3월 내놓은 EP 앨범 〈전투형 달빛요정〉에 수록된 ‘나는 개’의 가사(“왜 날 광장으로 내몰아/왜 널 상대하게 만들어/나는 개 너는 쥐…나의 혁명은 시작됐어/너의 삽질은 끝날 거야”)는 의미심장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노래는 2012년까지 유통기한이 있는 노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11월8일 '달빛요정' 이진원씨의 장례식이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열렸다.

이씨의 사망 직후 누리꾼들 사이에 ‘도토리 사건’이 알려지면서 음원 수익 배분 문제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씨의 3집 〈굿바이 알루미늄〉에 실린 노래 ‘도토리’는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음원값으로 도토리를 제안했고, 이를 거절했던 경험을 담은 노래로 알려졌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노래지만/무겁고 안 예쁘니까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어/일주일에 단 하루만 고기 반찬 먹게 해줘/도토리 싫어/라면도 싫어/다람쥐 반찬 싫어”)

“도토리 싫어, 라면도 싫어, 다람쥐 반찬 싫어”

논란이 일자 SK커뮤니케이션즈는 11월8일 트위터(@Cyworld_BGM)를 통해 “도토리로 지급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싸이월드는 인디밴드와 직계약을 맺어 수익이 아티스트에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논란은 도토리를 넘어 번져가고 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음원 수익 배분과 유통에 관한 토론이 활발해졌다.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는 이씨의 사망 이후 트위터(@GrooveCube)를 통해 “(SK‧KT 등 음원 유통 플랫폼들이) 판을 깔아 놨다는 이유로 매출의 절반을 가져가는 것이 더 문제다. 이마트가 자체 브랜드로 하청기업을 착취하는 것보다 더한 비율이다”라고 말했다. ‘도토리’는 상징적 사건에 불과하며 좀 더 판을 키워 전반적인 음원 수익 불균형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였다. 

ⓒ한향란원맨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씨
서른 일곱 '달빛요정' 이씨의 죽음은 또 다른 ‘가난한’ 인디 뮤지션들의 팍팍한 현실을 다시 한 번 돌아볼 계기를 만들었다. 그의 트위터 ID는 ingigasoo(인기가수)였다. 그는 누군가의 가슴에 잊지 못할 위로의 노래를 남기고 갔다. 누군가에는 인기가수고, 슈퍼스타였다. 이씨의 시신은 11월8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된 후 장지인 충북 음성 생극 추모공원에 묻힌다. 그의 홈페이지 하단에 늘 적혀있는 문구는 “언제나 웃으며 다시 만나요, 네트는 광활하니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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