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무샤라프(왼쪽)는 부시(오른쪽)의 우군이었다.
부토의 암살로 인해 타격을 받은 것은 파키스탄의 민주화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야심찬 중동 전략도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미국은 8년간의 해외 유배생활을 끝내고 2007년 10월 파키스탄에 귀국한 부토가 나라를 안정시키고, 파키스탄을 친미 민주국가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했다. 이를 위해 그녀를 위한 특별한 시나리오까지 준비해 뒀다. 하지만 그녀가 암살당하면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부토가 암살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파키스탄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려는 극단주의 살인범의 비겁한 행동’이라며 맹비난하는 한편 무샤라프 정부의 민주화 노력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보였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대파키스탄 전략을 어떻게 다시 짜야 할지 고민이 깊다. 칼 인더퍼스 전 국무부 남아시아 담당 차관보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부토를 파키스탄이 (군사 정부에서) 민간정부로 넘어가는 가교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녀 없는 파키스탄의 불투명한 미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부토 암살 이후 파키스탄의 국내 정정이 극도로 불안해지는 상황이다. 그럴 경우 알 카에다 등 테러 조직은 물론이고 극단주의적 이슬람 세력까지 활개를 쳐 사태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다. 미국은 파키스탄에서 사고가 날 때마다 항상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에게 넘어가지 않을까 걱정해왔다.

앤 패터슨 파키스탄 주재 미국 대사는 각 정파는 물론 시민단체 지도자들에게 냉정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은 극단 세력과 연계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나와즈 샤리프 전 파키스탄 총리의 입국을 반대해왔는데 지금은 정국 안정을 위해 그에게 협조를 구하고 있다. 미국은 부토의 암살에도 불구하고 1월8일로 잡힌 파키스탄 총선거가 예정대로 치러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만약 무샤라프 대통령이 정정 불안을 이유로 선거를 연기한다면 그래도 좋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파키스탄의 민주화를 앞당길 지도 모를 선거보다는 내심 정국의 안정을 더 바라고 있는 것 같다.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게 더할 나위 없는 우군이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한 파키스탄은 알 카에다와 탈레반과 전쟁을 치르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거점이다. 파키스탄 민중이 무샤라프를 원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이 무샤라프를 버리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무사랴프가 헌법을 부정하고 민주화를 탄압하고 있을 때에도 노골적인 비난은 삼갔다. 가능한 한 부토와의 협력을 통한 점진적 사태 해결 방법을 모색해왔다.

미국이 상상했던 이상적 해답은 2008년 1월8일 총선을 계기로 무샤라프와 부토가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친미·온건 내각을 짜게 한다는 안이었다. 미국이 보기에 부토는 민주화 투사일지는 몰라도 반미 투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미국은 부토가 파키스탄으로 떠나기 훨씬 이전부터 연립정부 구상을 무샤라프와 부토 양측 모두에 타진해 어렵사리 동의를 끌어낸 것으로 알려진다. 무샤라프가 가진 안정감,  부토가 가진 민주화 투사로서 국민적 지지,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시나리오였다. 파키스탄이 점진적으로 민주화되는 것이 지방에서 준동하는 극단주의 탈레반을 토벌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미국은 믿었던 것 같다. 탈레반은 무샤라프에 등을 돌린 민심을 모아 세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부토가 성공한다→무샤라프와 연립정부를 세운다→친미 온건 내각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본격적인 탈레반 토벌에 나선다. 대략 이런 시나리오였다. 이 모든 꿈은 부토의 암살로 산산조각이 났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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