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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묵은 얘기가 되겠지만, 한국 문단에서 표절과 관련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이인화 지음)라는 작품이 발표된 1992년인 것으로 기억한다. 작고한 문학 평론가 이성욱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이 논쟁 덕분에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요한 창작 기법인 혼성모방)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했고, 이후 〈살아남은 자의 슬픔〉(박일문 지음)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표절했다는 작가 장정일씨의 문제 제기와, 단편집 〈딸기밭〉(신경숙 지음)에 실린 단편 ‘딸기밭’과 재미 유학생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에 실린 서문 내용이 일부 똑같다는 최재봉 기자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비교적 가까이는 ‘김윤식 교수가 일본 문학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을 표절’했음을 지적한 ‘이명원 사건’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은 ‘어떻게 끝이 났는지 모르게’ 끝이 났으며, 해당 서적은 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새삼 이렇게 서두를 시작한 이유는, KBS 2TV 드라마 〈경성스캔들〉(사진)의 원작 소설인 〈경성애사〉(이선미 지음, 여우비 펴냄)에 대한 표절 논란 때문이다. 2007년 12월23일, ThemeBox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한 네티즌이 프로게이머 랭킹 사이트(www.pgr21.com)의 자유게시판에 ‘표절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며 올린 글이 발단이었다. 이 글에서 ThemeBox는 〈경성애사〉의 일부 내용이 “도저히 베꼈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태백산맥〉(조정래 지음)과 닮았다며 두 책의 쪽수와 해당 문단을 밝혀 예로 들어 놓았다. 12월26일, 디시뉴스(www.dcnews.in/news)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논란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놀랍게도 이 기사가 나가고 약 한 시간 후, 한국로맨스소설작가협회(www.lovepen.net) 자유게시판에 이선미 작가의 공식 해명 글이 올라왔다. “먼저 불미스러운 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한 맘 가눌 길이 없다”라는 말로 시작된 작가의 글은, 〈경성애사〉가 7년 전에 쓴 글이라는 점, 당시에는 무지했으며 “소설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흥분한 나머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점,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참고하리라 생각하고 기록해둔 것들과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정리해뒀던 것들을 분간하지 못하고 마치 제 것인 양 착각을 했다”라는 점을 들어 사과했고,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으며, 현재 이와 관련해서 출판사와 상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출판사 측도 공식 견해를 표명했다. 같은 사이트에 약 네 시간 후 올라온 ‘〈경성애사〉에 대한 여우비 편집부의 공식 입장’이라는 글에서 출판사 측은 “개정판을 출간한 여우비 편집부 역시 당시 작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글을 썼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책을 발행했다”라는 점을 들어 사과했으며, 서점에 남은 재고를 전량 회수해 폐기 처분할 것을 약속했다. 현재 해당 사이트에는 독자의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기자명 김홍민 (출판사 북스피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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