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서 자기 계발서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 ‘자기 계발’을 채찍질당한 사람들은 주로 20대였다. 책 제목만 훑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20대에 꼭 해야 할 일 46가지〉 〈20대부터 부자 되기〉 〈20대에 모든 인생의 승부가 결정된다〉 〈열혈 20대 일에 미쳐라〉 〈대한민국 20대, 내 집 마련에 미쳐라〉 〈여자 20대, 몸값을 올려라〉 〈20대 땅 투자로 미래를 준비한다〉….

공모전과 스펙과 부동산과 인테크와 펀드 투자에 미쳐야 하기 때문에 바쁜 20대 앞에, “지금 너희가 처해 있는 상황은 매우 굴욕적이며 이대로 가다가는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라고 말하는 책이 한 권 나타났다. 2007년 8월 출간된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레디앙)이다. 책은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지만, 읽는 이들의 가슴에는 ‘절망’이 ‘희망’보다 더 깊이 꽂혔다. 한 취업 사이트에서 20대 회원 792명에게 가장 마음이 아픈 단어를 물었더니 ‘88만원 세대’를 1등으로 꼽기도 했다.

〈88만원 세대〉가 출간된 지 3년이 지났다. 책이 13만 부(사회과학 서적으로는 경이로운 숫자이다) 팔릴 동안 ‘촛불’이 켜졌다 꺼지고, 18대 총선과 제5회 지방선거가 열리고, 4대강 언저리에 굴착기가 굴러 들어왔다. 프랑스에서는 정부의 연금 개혁안 등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툭하면 거리로 나섰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김예슬 선언’ 외에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20대가 자살을 택했다(지난해 20대 사망 원인 1위). 바뀐 듯 바뀌지 않은 오늘날까지, 20대 담론을 다룬 책들은 어떻게 흘러왔을까?

초기에는 〈88만원 세대〉의 후속편과 같은 책이 주로 나왔다. 2008년 출간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우석훈, 레디앙)가 대표적이다. 〈88만원 세대〉에서 “지금 20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바리케이드와 짱돌이지 토플이나 GRE 점수는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던 저자는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 본격적으로 ‘당사자 운동’을 권했다. 그는 “1만명만 모여보라” “편의점 알바 노조를 만들어라”처럼 ‘진(陣) 짜는 방법’을 알려주고, 노동권·주거권·보건권·교육권 같은 20대 권리 선언을 위한 항목들을 제시했다.

20대 담론이 확산되면서 외국 청년 활동가들과 교류도 이뤄졌는데, 〈성난 서울〉(아마미야 가린·우석훈, 꾸리에)과 같은 책이 그 산물로 나왔다. 록 가수이자 일본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뜻의 합성어) 활동가 아마미야 가린이 기륭전자 비정규직 농성장·백수연대·희망청·연구공간 수유+너머 등을 방문해 한국 청년들과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아마미야와 함께 일본 청년빈곤운동을 이끌어가는 마쓰모토 하지메의 책 〈가난뱅이의 역습〉(이루)도 비슷한 시기에 번역되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해 올해 초까지는 20대가 스스로 말하는 형식의 책이 많이 나왔다. 텍스트 출판사의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시리즈는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말하는 ‘성공’은 아닐지라도, 자기 세계에서 조그맣게 터를 일구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미완의 자서전을 내도록 해 지금까지 16권이 쌓였다. 〈고 어라운드〉(이승환, 라이온북스)·〈요새 젊은 것들〉(단편선 외, 자리)·〈위풍당당 개청춘〉(유재인,이순)· 〈이십대 전반전〉(문수현 외, 골든에이지)·〈청춘대학〉(이인, 동녘)도 모두 20대 저자가 직접 자기 세대가 처한 상황과 사회의 시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 책들이다.
정점을 찍은 책은 올해 초 자퇴 선언 대자보를 써붙이고 대학 문을 나선 김예슬의 〈김예슬 선언: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느린걸음)이다. 저자는 책에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이 체계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라며 대학을 자퇴한 이유를 밝히고, 자신과 같은 청춘들의 삶을 질식시키는 대학과 국가와 시장 시스템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나눔문화 제공지난 3월 고려대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씨(위)는 자퇴 선언문을 발표하고 대학 밖으로 나섰다.
‘조금 더 평범한 20대’ 이야기

20대 이야기를 직접 책으로 전한 젊은 저자들은 자신과 또래가 처한 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은 ‘비싼 건 다 고소하고 고소한 건 다 비싼 시대, 인간의 형상을 한 적이 사라진 시대, 그래서 나를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한 범인이 떠오르지 않는 시대’(〈위풍당당 개청춘〉)이다. 한 해 등록금이 1000만원에 육박하는 대학은 더 이상 ‘배움의 전당도, 사회적 담론을 고민할 공간도 아니며’(〈이십대 전반전〉) 그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김예슬 선언…〉)일 뿐이다.   

이렇게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비판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젊은 저자들은 일종의 ‘탈주’를 시도했다. 〈고 어라운드〉의 저자는 “안전벨트를 풀어헤치고 조종실로 달려가 ‘고 어라운드(안전한 착륙이 어려울 경우 다시 가속해 이륙하는 것을 뜻하는 비행 용어)’를 외치며 불안정한 활주로에 착륙하기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예슬 선언…〉의 김예슬은 실제 자신이 가진 ‘명문대생’ 타이틀을 벗어던졌다. 〈요새 젊은 것들〉의 저자들은 키보드워리어 한윤형, 붕가붕가레코드 곰사장, 고대녀 김지윤 등 기성세대가 그다지 인정해주지 않는 분야에서 ‘자력갱생’하는 청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최근 출간된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푸른숲)는 결이 다르다.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20대는 경쟁의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아닌, 그 지옥으로 한번 들어가보는 게 소원인 대학생들이다. 김예슬 선언문을 보고 “와, 이렇게 글을 잘 쓰니 자기 소개서도 잘 쓰겠다”라고 부러워하는 젊은이들이다. 이전까지의 20대 담론 책에서 이런 이들은 비난과 동정을 받는 관찰 대상이었다. 하지만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저자는 연세대 원주캠퍼스·덕성여대 학생들과 함께 글 쓰고 토론한 기록을 모아, 이들이 공동 저자가 되게끔 했다.
이제껏 ‘말하던’ 20대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매끄러운 언어로 표현할 줄 알고 밖으로 탈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이른바 ‘명문대생’이었다는 것을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환기시켜준다. 그러고 보면 김예슬은 그냥 대학이 아닌 고려대를 자퇴했고, 〈이십대 전반전〉은 서울대생들이 썼으며, 〈요새 젊은 것들〉에서 인터뷰하거나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에서 자서전을 낸 젊은이들도 반 이상 서울 소재 명문대를 졸업했다.

반면 ‘어떤 친구는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나갔는데 그보다 더 못한 기득권을 가지고서도 자신은 바들바들 떨면서 그 자리에 남아 있어,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이제껏 피땀 흘리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모욕감을 함께 느끼는’ 20대의 목소리는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이전에 한번도 들린 적이 없었다. 엄기호씨는 “책이 나온 뒤, 책에 글이 실린 학생들은 명문대생도 아닌 자신들의 목소리가 책으로 엮일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며, 자기 목소리가 공공의 공간에 울리는 것을 매우 기뻐했다”라고 말했다.

‘조금 더 평범한 20대’로까지 발언할 기회를 확장시킨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왜 성장하지 않느냐”라고 질책하는 기성세대를 꼬집는다. ‘스펙’과 ‘글로벌’로 성장을 말하는 우파나 ‘저항’과 ‘단결’로 성장을 말하는 좌파나 모두 20대를 지배와 통제의 대상으로 볼 뿐 파트너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젊은이들이 원하는 것은 “너희에 대해 말해줘”라는 요구에 따라 매끄럽게 정리해 전달하는 ‘말할 권리(the right to speak)’가 아니라, 거칠고 울퉁불퉁한 목소리일지라도 경청해줄 사람이 많은 ‘들릴 권리(the right to be heard)’이다. 20대에 대한 책과 20대에 의한 책이, 20대와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책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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