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비자금 수사의 초점은 두 갈래다. 하나는 비자금 규모와 조성 방식을 추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비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태광그룹 수사의 경우 전자는 얼추 윤곽이 드러나는 모양새다. 보도대로라면 계열사 주식 헐값 매각이나 내부자 거래 등 과거 수사 대상에 오른 기업들의 방식을 빼닮았다.

문제는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의 사용처다. 그 돈이 순전히 경영권 세습을 위해 쓰였다면 사회적 폭발력은 좀 떨어진다. 하지만 정·관계 로비에 쓰인 정황이 드러날 경우 파장은 예상 외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 사회’를 임기 후반기 화두로 던졌다. 임기 말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치권과 재계를 상대로 세게 한번 군기를 잡을 필요가 있다. 그런 마당에 경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규모의 기업에서 범법 행위가 벌어졌다면 확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검찰은 검찰대로 실적에 목이 마른 상황이다. “검찰이 정·관계 인사 100여 명의 명단을 확보했다더라”라는 미확인 보도에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시사IN 안희태10월22일 국회 문방위 국감에서는 방통위 최시중위원장을 상대로 ‘티브로드의 큐릭스 인수’를 둘러싼 논란과 태광의 로비 의혹에 관한 질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태광 수사의 불똥이 정부와 한나라당으로 튈지, 민주당 쪽으로 향할지는 누구도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도표에서도 알 수 있듯, 태광이 이른바 ‘특혜’를 받았다고 할 만한 사건이 과거 정부 때와 MB 정권이 들어선 2008년 이후에 혼재되어 있는 탓이다.  

민주당, 남기춘 지검장에 기대감?

검찰 수사가 ‘외부 제보’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도 수사의 향배를 모호하게 만든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여권 인사는 “통상 청와대 하명 수사나 검찰 기획수사의 경우 야권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여권 핵심부의 치밀한 조율을 거쳐 시작된 건 아니라고 보인다. 서부지검에서 지난해 성접대 파문 때 이미 웬만한 비자금 내용을 파악해놓고도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해 덮었는데, 최근 내부 고발자가 자료를 통째로 들고 와 수사를 재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사 과정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야권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고위 인사는 “씨앤(C&)그룹의 경우는 참여정부 출신과 호남에 기반을 둔 야권 인사들을 겨냥한 ‘기획 수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태광 건은 어디로 튈지 솔직히 우리도 잘 모르겠다. 남기춘 지검장이 ‘살아 있는 권력을 건드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캐릭터’라고들 하니 그것만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남기춘 서부지검장은 ‘큰 줄기만 잡지 않고 마지막 이파리 하나까지 터는 강력통’으로 소문이 나 있다. 제보자 박윤배 서울 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서부지검을 콕 찍어 수사를 의뢰한 것도 그런 점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여야 정치권은 일단 기 싸움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티브로드(태광 계열사)가 큐릭스 홀딩스를 인수할 수 있도록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준 것은 MB 정권이다. 청와대 행정관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직원을 상대로 한 성 접대도 MB 정권에서 이뤄졌다. 태광의 로비가 ‘성공한 로비’가 된 데는 MB 정권의 비호가 있었다”라면서 그 배후 세력을 캐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나라당은 태광 로비의 몸통은 전 정권에 있다고 반박한다. “태광이 큐릭스 인수를 위해 군인공제회와 이면계약을 체결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이고, 그건 사전에 방송법 규제가 완화되리라는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라는 것. 여권 인사들은 방송뿐 아니라 2006년 태광그룹이 쌍용화재(현 흥국화재)를 인수한 과정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시 태광그룹은 흥국생명을 통해 쌍용화재를 인수하려다 적격성 문제가 불거지자 태광산업을 대신 내세웠고, 금융당국은 ‘흥국생명과 태광산업의 대주주가 같아서 안 된다’는 일각의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도 열흘 만에  인수를 승인해줬다. 대주주 적격 심사에 한 달가량이 걸리던 데 비추면 이례적이었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에서는 “당시 STX 그룹도 똑같은 방식(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쌍용화재 인수를 추진했는데, 금감원이 STX는 반대하고 태광은 승인했다. 누군가 봐주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라고 의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윤증현 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이처럼 수사의 초점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울고 웃는 쪽이 달라진다. 검찰이 함구하는 사이 정가의 눈길은 일단 태광그룹과 혈연·지연으로 얽힌 몇몇 인사에 쏠린다. 여권에서는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과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이기택 부의장은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의 외삼촌이다. 이 부의장의 아들이자 이호진 회장의 사촌인 이성호씨는 티브로드 간부를 지내다 MB 정부 들어 청와대 행정관으로 입성했다(그는 2009년 2월 ‘청와대 이메일 보도지침 파문’으로 사퇴했다). 방송 허가권을 쥔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은 이기택 부의장과 동향에 동년배다.

포항 라인·밀양 라인 등에 주목

이른바 ‘밀양 라인’도 입길에 오르내린다. 티브로드로부터 성 접대를 받아 물러난 청와대 김 아무개 전 행정관과 방송통신위 신 아무개 전 과장이 밀양고 선후배 사이고, 이들을 매개로 티브로드와 한나라당 밀양 출신, 나아가 부산·경남 출신 인사들이 각별한 사이라는 것이다. 방통위 안팎에서는 ‘황사단(방통위 황 아무개 전 국장 사단)’ ‘종방(종합유선방송) 10적’ 등 케이블TV 규제 완화에 앞장섰던 내부 인사들의 이름이 흘러다닌다.

참여정부와 관련해서는 “이병완 전 비서실장과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이 타깃이다” “참여정부 486을 겨냥한 것이다” 따위 얘기들이 나온다. 이병완 전 실장의 경우 방통위 김구동 전 사무총장과 친분이 두텁다는 이유로, 양정철 전 비서관은 방송 정책의 책임자였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친노 486들은 당시 청와대와 정부 부처의 실무 요직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이유에서 주목받고 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방송 정책을 담당했던 한 인사는 관전 포인트를 이렇게 짚었다. “티브로드 관련해서는 작년에 이미 검찰이 참여정부 인사들에 대해 쭉 훑었지만 나온 게 없다. 이번에 주목할 건 두 가지다. 금융권 인수에 참여정부 인사들이 연루됐는지, 방송 인수와 관련해 최시중 위원장까지 관련성이 드러날지. 그게 아니라면 성 접대 파문 등으로 이미 처벌받은 실무자급 몇 명 선에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사건이 커질지 그렇지 않을지의 출발선은 ‘리스트’의 실재 여부다. 그에 따라 ‘태광 수사’의 격이 달라진다. ‘게이트’로 비화할지, 이미 신호탄이 오른 사정 정국의 일개 변수로 축소될지.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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