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영이라고 합니다. 스물일곱 살이고요. 〈시사IN〉이라는 주간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 소개가 끝나자 감탄사가 나왔다.  “확실히 다르다” “잘한다”라며 감탄하는 수강생들 사이에서 영문을 몰라하는 기자에게 김서원씨(34·가명)가 “나는 긴장하니까 혀가 더 까부러 들어가서 못하겠던데”라고 말했다. 김필수 원장이 곧바로 지적에 들어갔다. “까부러 들어가서가 아니라 말려 들어가서죠.” 수강생들이 쓰는 단어와 억양이 생경했다. 10월19일 서울 신림동 한 텔레마케팅 학원을 찾은 날, 탈북자(새터민)를 대상으로 한 억양·발음 교정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정착한 지 8년이 된 탈북자에게조차 간단한 인사말은 쉽지 않은 듯했다. 한 달 과정이 매주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왜 시간과 돈을 들여 이런 걸 배우는 걸까. 정혜민씨(40·가명)는 “여기 왔으니까 여기 말을 배우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답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이 탈북자임을 알아보는 게 끔찍이 싫다는 게 정확한 답이었다. “뭐라고 하지 않아도 북한 말투가 나오면 위축감이 든다. 발음을 고치면 적응도 더 잘할 것 같다.”

 
김씨는 백화점에 취업했다가 하루 만에 그만두어야 했다. 탈북자인 걸 묻지 않기에 말하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 첫날 상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나라 분이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김씨는 앉은 자리에서 몸이 벌벌 떨리고 홍당무가 되었다. 탈북자인 게 잘못은 아니지만 밝히지 않은 게 흠이 될까 싶었다. 더듬더듬, 사실대로 말을 하자 사장은 일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때 기억이 크게 상처가 되었다.

정씨는 미용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미용사 교육 과정을 졸업할 때는 반에서 1등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할 때가 되니 난감했다. 자신보다 실력이 없는 사람도 손님을 받는데 자기에게는 없었다. 머리를 만지다 자신이 탈북자인 걸 손님이 알아채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움츠러들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네 살 난 딸은 북한 억양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발음·억양이 헷갈릴 때면 아이에게 한 번 더 말해보라고 한다. 혹시 부모의 말을 배울까봐 집에서 함부로 말도 못한다. 김씨에게 한국어는 외국어나 마찬가지다.

김필수 한국텔레마케팅학원 원장은 수강생들에게 발음·억양 교정에 더해 일상 문화를 가르치고 자신감을 기르는 교육도 함께 한다고 밝혔다. “문화를 잘 몰라서 탈북자 스스로 위축되는 부분도 크다. 한 수강생이 미용실에서 일하는데 신입인 자기한테는 바닥 청소를 시키고 사장은 거울을 닦았다. 본인이 탈북자라 차별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다 똑같이 일을 하니까.” 억양 교정의 필요성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만 개인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김 원장의 말에 김서원씨가 “거기에서 내가 좀 더 자신감 있고 당당했더라면 인생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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