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혜림에서 푸릇푸릇한 20대의 고현정이 연기한 〈모래시계〉의 윤혜린을 떠올렸던 20·30대 시청자들이나, “있잖아. 걔네들은 데모하는데, 나는 배고파서 쌀 사왔다”라는 윤혜린의 대사에 가슴이 먹먹했던 486 아저씨들도 괴물이 되어가는 〈대물〉에 고개를 내저었다. “서혜림을 다시 돌리도”라는 성화에도 제작진은 ‘변신은 무죄’라고 강변한다. 정말 〈대물〉이 괴물로 끝날지는 ‘60초 후에, 아니 8주 후에 공개된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변신의 귀재가 또 있으니 태광그룹 왕(王)상무 이선애씨가 장본인이다. 검찰의 압수수색에 딱 맞춰 왕상무가 종합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이제 이씨의 화려한 변신이 시작되었으니, 휠체어는 기본이고 환자복은 덤이다.
재벌 회장님들은 검찰 수사 선상에만 오르면 멀쩡하다가도 필수 코스인 병원으로 향한다. 이런 변신의 원조는 ‘한보 게이트’ 장본인 정태수씨이다. ‘한보 청문회’에서 환자복을 입고 나온 정씨는 “머슴이 어찌 알겠노”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법정에서도 마스크까지 끼고 자물쇠 입을 강조했던 정씨는 지금은 카자흐스탄을 거쳐 키르기스스탄에서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2008년 도피 생활을 하던 중 김윤옥 여사의 사촌 김옥희씨를 만나 사면 로비를 했던 정씨를 안 잡는 것인지 못 잡는 것인지, 그의 명언을 빌리면 ‘국민이 어찌 알겠노’.
정씨에 이어 내로라하는 회장님들이 환자복 패션쇼를 줄줄이 선보였으니 김우중·이건희·정몽구·심지어 자신의 아들이 맞았다며 “아구를 몇 번 돌렸다”라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까지. 오죽했으면 외신은 한국의 재벌 회장은 ‘체어맨(chairman)이 아닌 휠체어맨(wheelchair man)’이라 비꼬았을까.
‘그들만의 변신’을 시작한 이선애씨의 다음 스텝도 뻔하다. 주차장 수입까지 챙긴다는 꼼꼼한 왕상무, 그러나 검찰에 소환되면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는 모르쇠 모드로 돌입할 것이다. 입원 나흘만에 병원에서 퇴원하기는 했지만 이선애씨의 변신이 맞을지 틀릴지는 ‘60초 후에 아니 그녀가 소환되는 2~3주 후면 공개된다’. 그나저나 한화나 태광그룹 비서실은 또 휠체어 구하느라 바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