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나이지리아 학생 페버(10)·러블린(11) 남매와 김진한 교사(왼쪽부터).
김진한 선생(서울 이태원초등학교)은 필자에게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의 ‘나이지리아’ 학생 러블린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말과 음식은 물론 정서까지 오롯한 한국인인 러블린은 학기도 다 마치지 못한 채 강제 출국당할 처지가 되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사기 등 혐의로 재판을 받고 지난해 5월 강제 출국된 데다 어머니가 신청한 비자까지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러블린은 학기 초에는 검은 피부색 때문에 놀림도 많이 당했다. 하지만 전국 무용대회에서 1등을 한 뒤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스타’가 되었다. 학교 생활도 아주 잘해서 김 선생의 보람은 한층 더했다. 김진한 선생의 바람은 러블린이 한국에서 초등학교만이라도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반 아이들과 함께 법무부에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러블린이 강제로 쫓겨나면 러블린은 물론 반 아이들도 상처를 크게 받아서이다.

명색이 인권운동가이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길은 별로 없었다. 신문사에 취재를 부탁하고 지인들을 통해 법무부에 선처를 바란다는 말을 넣은 것이 내가 한 일의 전부였다. 다행히 이런저런 관심이 모아져 지난 12월23일로 예정되었던 강제 출국이 올해 2월29일로 연기됐다. 이 소식을 들은 김 선생은 뛸 듯이 기뻐했다. 만약 러블린이 한국에 남게 된다면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도 김 선생일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제일 좋은 김 선생님

김진한 선생은 러블린에게만 훌륭한 교사는 아니었다. 학교 공사로 급식 배급이 중단되었을 때 맞벌이나 살림살이 때문에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세심하게 챙기는 그의 모습은 책에서 보던 ‘선생님’ 그대로였다.

초등학교에 남성 교사가 드물다 보니,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데도 김 선생은 싫은 기색이 없다. 교감·교장이 되기 위한 디딤돌을 쌓는 것도 아니다. 그는 주변 교사들이 교직 경력을 쌓을수록 교감·교장 될 생각만 하고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불만이다. 자신도 어느 틈엔가 윗사람에게 잘 보이며 경력 관리에나 몰두하게 될까 늘 걱정이다. 교사로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그런 김진한 선생의 관심이 온통 아이들에게 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재미난 일을 벌일까 장난꾸러기처럼 궁리하고, 주말이면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야영도 한다. 아이들과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그는, 천상 ‘선생님’이다.

요즘 그의 불만은 집과 학교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얼마 전 금천구 시흥동으로 이사하면서 학교가 있는 이태원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집중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그는 결국 전근을 신청했다. 물론 아이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이사한 곳에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 ‘방과 후 학교’ 활동 등에 뛰어들 생각을 하니 설레기도 한단다. 학원에 다니기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공부를 가르쳐주고, 학부모를 대신해서 아이들도 돌봐주면 좋겠단다.

이명박 당선자는 언젠가 교육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전교조든 교총이든 아이들 교육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럼 교육을 잘하는 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를 족집게처럼 알려주거나 효율적인 강의로 성적을 쑥쑥 올려주는 선생님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네들이 잘되는 것을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선생님일 게다. 내가 아는 김 선생은 거기에 꼭 들어맞는 ‘좋은’ 선생님이다.

기자명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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