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12월20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오른쪽)를 접견하는 이명박 당선자.
적어도 지난 7월 정형근 의원 주도로 한나라당이 신대북 정책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참신했다. 그러나 원조 보수 이회창씨의 영향 탓인지, 이명박 당선자와 그 주변의 대북관과 외교 정책은 또다시 심할 정도로 우향우했다. 이 당선자 측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12월20일 당선자 기자회견에서부터 약 1주일 사이에 거의 드러났다. 물론 당선자 측근 그룹 내부에서는 일부 언론 플레이에 나선 자문교수들의 발언 내용을 못마땅해한 것도 사실이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그들이 비교적 솔직하게 쏟아낸 말이 새 정부의 대북 정책 및 대외관계의 윤곽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당선자는 12월20일 당선 축하 기자회견에서부터 첨예한 대북 인식을 드러냈다. ‘핵 폐기가 되어야만 진정한 남북 경협이 있을 수 있다’ 라든지, 북한의 비위에 거슬리더라도 할 말은 하겠다며 인권 문제를 그 예로 든 것 등이다. 북한의 핵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가 국제적으로 예민한 관심사가 돼 있는 시점에, 당선 인사 자리에서 굳이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말만 골라서 해야 했는지, 그 깊은 뜻은 알 수 없다. 다만 측근에 따르면, 당선자는 비교적 가벼운 기분으로 이런 기회에 한번 짚고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며 연설문 작성자인 현인택 교수가 써온 원고를 읽었다고 한다.

어쨌건 당선자가 포문을 연 셈이 됐다. 이후 자문교수단 중 주로 김우상 교수(연세대)와 김태효 교수(성균관대) 등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말이 쏟아져나왔다. 마치 작심이나 한 듯,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 한·미 관계는 신동맹 체제로 확대 재편될 것이며,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고 MD(미사일방어)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참여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두고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또한 새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지원 성격의 남북 경협은 중단할 것이라며, 대표 사례로 금강산과 개성공단, 그리고 내년 5월부터 시작하기로 한 백두산 관광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 초기 ‘abC 원칙(anything but Clinton·클린턴이 했던 것만 빼고 다 한다)’과 유사한 ‘abN 원칙(노무현이 한 것만 빼고 다 한다)’이라도 세워둔 양,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의성과를 무시한 역주행 의지가 역력하다. 말로만이 아닌 것 같다. 통일부를 외교부에 통폐합해 외교부 내지는 외교통일부로 하자는 안이 내부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고 한다. 통일부의 역할에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과를 떠나 남북 공조(민족 문제)의 상징처럼 여겨져온 통일부를 한·미 공조(국제 문제)의 상징 같은 외교부에 통합한다면, 이는 곧 이명박 정부의 자아 정체성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될 것 같다.

ⓒAP Photo김영남 북한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위)의 남한 방문 시기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한국·미국 공조 틀 안에서 대북 정책 다룬다?

적어도 지난 7월 정형근 의원 주도로 한나라당이 신대북 정책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참신했다. 그러나 원조 보수 이회창씨의 영향 탓인지, 이명박 당선자와 그 주변의 대북관과 외교 정책은 또다시 심할 정도로 우향우했다. 이 당선자 측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12월20일 당선자 기자회견에서부터 약 1주일 사이에 거의 드러났다.  

한나라당 주변의 자문교수 중에는 북한을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민족 구성원이라기보다는 못살고 귀찮은 외국쯤으로 여기는 극단론자들이 존재해왔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독자적인 대북 정책을 가지려고 애쓸 필요없이, 한·미 공조를 통해 미국의 대북 정책 틀 안에서 북한 문제를 다루면 된다. 지난 10년간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유지해온 민족 문제의 당사자주의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당선자 진영의 이같은 일도양단식 단순 논리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찬사와 우려가 극명히 엇갈리기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은 한마디로 환호작약이다. 특히 12월2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제는 북한에 때때로 채찍을 들 수도 있는 지도자가 나타났다’며, 한국 정부의 향후 행보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주변 국가 중 가장 쾌재를 부른 곳은 일본이다. 그동안 외롭게 대북 강경 노선을 지켜왔던 만큼, 다른 곳도 아닌 한국에 ‘때때로 채찍을 들어줄’ 정권이 등장했으니, 그 아니 반가우랴. ‘다 죽어가던 후쿠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문제는 북한과 중국이다. 당선자 측은 ‘선 한·미·일 공조 강화, 후 대중 대북 관계 설정’이라는 식으로 느긋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는 북한과 중국이라는 상대를 안중에 두지 않은 아마추어적 발상일 뿐이다.

지난 대선 기간 북한이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개적 비난을 자제하고 침묵을 지켜왔던 데에는 남한의 새 정부 출범기에 자칫 오해가 생길 경우, 몇 년씩이나 서로 시간을 허비했던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북한은 북한대로 2008년에 대한 자신들의 구상이 있다. 어떻게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뿐 아니라 남한의 새 정부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AP Photo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리라 예상되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원래 1월 중 남한 방문을 추진하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남한 방문 시기를 새 정부 출범 이후인 2월이나 3월로 미루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2월25일 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식에 미국에서는 아버지 부시, 일본에서 후쿠다 총리, 중국에서 원자바오 총리 등의 참석이 거론되고 있는 만큼 북한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참석하면 당선자의 취임식이 그야말로 동북아 정치의 중심 무대로 격상될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전략가가 있다면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활용할 호기인 셈이다.

그러나 당선 축하 샴페인을 터뜨린 지 10여 일도 안 된 지금 상황은 정반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당선자 참모 중에는 대화도 해보기 전에 판이 깨지는 게 아닌가, 우려하는 이도 있다. 그동안 올해 안에 핵 프로그램 목록 신고라는 숙제를 받아들고 끙끙대던 북한이 최근 들어 여유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선자 진영의 인식이 드러난 이후 나타난 변화다. 남쪽 상황이 불투명한데 굳이 우리만 서두를 까닭이 없다는 투다.

따라서 핵 불능화와 신고를 모두 내년으로 미루고, 그 사이 남한 측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시간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내년 4월이면 북한에는 또다시 춘궁기가 시작된다. 가을에 수확한 곡식은 겨울 식량용으로 전부 소진한 터라 상황은 급박하다. 그동안은 핵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를 통해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이를 토대로 미국이나 남한으로부터 식량을 지원받아 위기를 넘길 수 있으리라는 판단을 해왔다. 그러나 남한 새 정부와 관계 설정이 무망하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비록 차선책일지언정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2008년 초가 되어도 남북 사이에 대화 채널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이 당선자의 3월 미국 방문이 ‘용미’를 넘어서, 말 그대로 ‘친미’ 차원에서 진행되면, 김 위원장도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Reuters=Newsis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리라 예상되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
한국이나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늘 ‘시간은 우리 편이다. 급한 건 북한이기 때문에 결국 항복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지난 10년간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는 선입견인데도 그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북한이 늘, ‘결국 손해 보는 건 남한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막가파식 절망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도 그들은 잊고 있다. 당선자 주변 인사 중엔 중국 변수를 간과하는 이들이 있다. 중국이 앞으로 한 발을 어떻게 떼어 놓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풍전등화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을 잊은 것이다.

북한·중국 동맹 강화되면 최악의 상황

최근 국내의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베이징으로부터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베이징 외교가에 ‘이명박은 결국 반중국 성향 같다’는 얘기가 돈다는 것이다. ‘닝푸쿠이 주한 중국 대사가 당선 축하차 만났을 때 당선자에게 여러 가지 설명을 했는데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 끝에 이런 얘기가 돈다는 것을 보면, 중국이 얼마나 예민한지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선 사실이 확정되자마자, 3월 미국 방문과 한·일 간 셔틀 외교 복원 등의 메시지가 즉각 튀어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국제 문제 전문가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이른바 몇몇 자문교수가 무분별하게 MD 참여 가능성까지 언급한 사실에 대해서다. 한국이 MD에 참여한다는 것은 한·미, 한·일 간의 군사 훈련 정례화 등 냉전 시대보다 더한 한·미·일 군사 동맹체로 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국이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문제이다.

ⓒReuters=Newsis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리라 예상되는후쿠다 일본 총리.
이 경우 중국의 선택지도 분명해진다. 한국과 협력을 중단하고 북한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길이다. 중국은 그동안 올림픽 이전에 주변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극구 꺼려왔다. 북·중관계에 대해서도 미국의 오해를 살까 우려해 자제해온 측면이 있다. 그런데 남한의 새 정부 등장을 계기로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면 중국도 북·중 관계 강화를 늦출 이유가 없다. 지난 10월29일 류윈산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 방북 때 후진타오 주석이 이미 김정일 위원장에게 방중 초청장을 전해놓은 상태다. 춘궁기가 시작되는 4월을 앞두고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겠다고 한다면 중국도 이를 막을 이유가 없다.

북·중 관계가 일단 이런 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미 그때는 상황 끝이다. 한국의 신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우선 북한이 그동안 보여온 행태로 볼 때 남한 새 정부에 대해 어떤 식이든 징벌적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북측이 남북 대화 중단 및 개성공단 폐쇄 등의 강도 높은 조처를 할 경우, 한나라당이 이때도 국민의 지지를 받으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예측 불허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중국이 그동안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 북한에 핵 포기를 종용하는 처지였으나 한·미·일 공조에 맞서 북·중 동맹을 강화하게 되면 북한에만 일방적으로 핵개발을 포기하라고 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부시 행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인 내년에 펼치려 했던 화려한 외교 쇼도 사실상 모두 물 건너갈 수 있다. 북한은 부시 임기를 건너 뛰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 그때 다시 대화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 미국에 민주당 정권이 등장하면 이명박 정부와 미국의 허니문 기간도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한국 정부의 선택지가 좁아진다는 얘기다.

후쿠다 일본 총리가 겪은 수모

또 한 가지 가능성은 미국이 한국과의 관계와는 별도로 북한과 관계 개선 조처를 계속 밀고 나갈 가능성이다. 미국은 이미 대북 관계에 대해서는 한국이나 일본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둔 바 있다. 2007년 12월 초 미국을 방문한 후쿠다 총리에게 라이스 장관은 ‘북·미 관계 개선은 대세이다. 일본이 좌우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일본도 북·일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훈계해 후쿠다 총리를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그리하여 12월에 베이징에서 열린 북·일 간 비밀 회담에서 일본은 북한에 더 이상 납치 문제 해결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하지 않고, 다만 북한의 성의 표시를 바란다는 수준으로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역시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새 정부가 남북 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한·미 관계를 강화하고 북한 핵 해결에 매달리겠다면 미국은 아마 ‘생큐 베리 머치’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이 맡아왔던 북핵 폐기 압력이라는 악역을 한국이 대신 맡아주겠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한·미 관계를 통해 북·미 관계를 조정하겠다는 이명박 당선자 주변의 어설픈 상황 인식은 곧바로 난관에 처할 것이다. 미국은 이미 남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대하겠다는 것을 대한반도 정책의 대원칙으로 설정한 상태이다. 더구나 임기 중 역사에 남을 업적으로 북·미 관계 정상화를 꼽는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새 정부 때문에 자신의 마지막 목표를 포기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결국 후쿠다 총리가 라이스에게 겪었던 것과 같은 수모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에 대해서는 계속 테러 지원국 해제를 내세워 관계 정상화 노력을 밀고 갈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 그렇게 되면 일본 역시 미국의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베이징 외교가에는 ‘북한이 앞으로 통미소남(通美疎南·미국과 통하고 한국과는 소원하게 지낸다)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은가. 바로 10년 전 김영삼 정부 때의 풍경이다.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통하고 남한은 봉쇄한다)으로 남북 관계는 중단되고 북·미, 북·일 관계만 살아 있었다. 대북 정책에서 실패한 김영삼 정부는 결국 경제 파탄을 맞았다. 남북 관계에서 실패할 경우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 역시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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