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한 달 이상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신정아 게이트’는 언론의 과잉 대응과 단순 횡령 사건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부지검을 나서는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가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그녀가 입으면 유행이 됐다. 그녀의 누드는 단연 톱기사였고, 새우깡 먹고 싶다는 한마디가 기사 제목이 됐다. 그녀의 ‘연애편지’는 국보만큼 중요해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그녀의 상품성에 미치지 못한다. 기자들은 그녀의 숨소리 하나까지 쫓았다. 언론으로부터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미술관 후원금 횡령 혐의로 좁혀지는 그녀의 죄목에 비추어보면 더더욱 그랬다.

깊이 모를 추락을 하고 있는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35). 사실 ‘신데렐라 유리 구두’를 신겨 신씨를 구름 위에 올린 것도 바로 언론이었다. 뉴욕에 있을 당시 신씨는 “내가 지난 10년간 언론에 가장 부각된 큐레이터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데에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 그렇게 덕을 본 언론을 통해서 내 35년의 인생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했다. 신씨가 〈시사IN〉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밝힌 내용과 신씨 주변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신정아식 기자 관리법’을 들여다본다.

신 전 교수는 기자를 통해 이름을 알리고 인맥을 쌓아올렸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빨리 크는 방법이었다. 기자의 취재원은 사회 지도층 가운데서도 핵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기자를 통해 사람을 소개받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는 사실을 신씨는 꿰뚫고 있었다. 신씨에게 기자 관리는 모든 업무보다 우선이었다. 자신은 라면을 먹을지언정 기자들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신씨는 당당하게 말했다. “로비가 왜 나쁜가? 우리는 나쁘게만 생각하는데, 세상 일에 로비가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정당한 로비는 필수다. 자랑 같지만, 나는 그 부분에서는 다른 사람에 비해 동물적으로 탁월하다.” 그래서인지 신씨 주변에는 늘 기자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기자를 만나면 신씨는 특유의 붙임성을 보였다. 신씨는 ‘기자님’ ‘선배님’이 아니라 ‘언니’ 혹은 ‘오라버니’라 부르면서 살갑게 대했다. 여기자들과는 ‘삼총사’ ‘사총사’ 하는 식으로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양 아무개 기자는 잠실에 살았는데, 저녁 식사 후면 밤12시고 1시고 간에 집에 태워다줬다. 가까운 모든 여기자들에게 그렇게 했다. 두세 사람이라 하더라도, 좀 돌아서 가더라도 나는 꼭 집에 데려다 주었다.”
신씨는 독신 여성이어서 남자 기자를 관리하기가 힘겨웠다고 했다. 그녀는 큐레이터의 비애라고 했다. “저녁에 술 한잔 하자는 것부터 식사가 끝나면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르며 내 몸을 더듬는 기자도 많았다. 심지어는 자러 가자고 말까지 하는 기자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큐레이터와 내레이터가 구별이 안 되느냐고 했다.”

 신씨 “기자들의 성추행 괴로웠다”

하지만 신씨는 남자 기자를 관리하는 데 특출함을 보였다. 신씨를 미술계 인사들에게 소개한 남자 기자가 여러 명 있었다. 한 사진작가는 “한 기자는 신정아가 자기 애인이니 잘 좀 봐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한 갤러리 관장은 “성곡미술관이 국내 최대 미술관보다 더 크게 조명받은 것은 신정아를 뒤에서 봐주는 유력지 남자 기자들 때문이었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어떤 신문사 기자들보다도 더 많이 나를 매도했던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자기한테만 잘한 줄 알았는데 모든 기자들한테 잘했다며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정말 코미디 중에 코미디다”라고 말했다.

안면을 익힌 후에 신씨는 선물 공세로 기자들을 붙들었다. 처음에는 넥타이와 스카프 등 주로 명품 선물을 안겼다. 명절 때에는 고향인 경북 청송에서 신씨의 어머니가 과일 40상자를 기자 몫으로 보냈다. 주부 기자들에게는 참기름과 고사리 등 맞춤선물을 준비했다. “아줌마 기자들은 내 돈 주고 사기 아까운 작은 것을 오히려 좋아한다”는 것이 신씨의 설명이다. 신씨는 부산이 고향인 기자를 위해서 명절 때마다 비행기 표를 준비했다. 딸 둘을 포함해 4명의 비행기 삯은 60만원에 달했다. 명절 때는 물론이고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 데이에도 신씨는 어김없이 선물을 보냈다.

신씨는 “아이가 있는 집의 경우에는 어린이날·추석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렇게 1년에 세 번씩 아이 옷을 보낸다. 그렇게 10년이 쌓이니 때가 되면 사야 하는 아이 옷이 60여 벌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한 미술 담당 기자는 “신정아가 미술 기자들에게 선물을 유난히 잘 챙기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메이저 신문과 일부 기자에 해당하는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미술 담당 기자가 자리를 옮겨도 신씨는 최선을 다했다. 끝까지 인연을 유지했다. 그 중 한 명이 최근 신씨와 전화 인터뷰를 한 중앙일보 안아무개 기자다. 신씨와 안 기자는 10년간 친구처럼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신씨는 “안 기자는 내가 광주 비엔날레를 맡았다고 하자, 그걸 왜 맡았냐고 중앙일보에서 큰 아트 페어를 하는데 그걸 좀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 기자는 “회사에서 아트 페어를 준비하면서 누가 능력이 있느냐고 묻기에 신정아를 꺼낸 적은 있다. 신정아에게 전화로 이야기한 것도 맞다. 하지만 내는 아트 페어의 책임자를 결정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고 진행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안 기자는 “나는 신씨 집에 울면서 전화한 적이 없고 인터뷰 내용이 거칠게 기사화됐다는 것도 신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안 기자와의 친분 덕분에 신씨는 2003년께 서울대 출신들이 주축인 정·재계 인사들의 사교 모임 ‘포야’의 일원이 되었다. 여기서 신씨는 윤재승 대웅제약 부회장, 김승수 CJ그룹 부사장, 왕윤종 SK텔레콤 상무, 조선일보 강효상 부장 등을 만났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도 ‘포야’에서 신씨와 친분을 맺었다. 나 대변인은 신씨에게 소개팅을 주선할 정도로 친분이 깊었다.
신씨는 “나경원 의원은 변호사 시절부터 모임을 함께했다. 지난 6월에는 (나경원 대변인의) 집에 그림을 걸어주기도 했다. 7월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이 되자 축하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비난하는 나경원 대변인의 논평에 대해 신씨는 “대변인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말이었겠지만 나하고의 관계를 생각하면 저럴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신정아 전 교수의 언론 로비는 철저히 조선·중앙·동아일보, 이른바 메이저 신문사에 맞춰졌다. 그 다음이 국민·한국·문화일보 차례였다. 신씨에 따르면 방송사와 한겨레·경향신문 등은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적었다고 한다. 신씨는 “내가 언론과 친하게 된 것에는 조선일보 박 아무개 기자의 역할이 컸다. 박 기자와 조선일보 정 아무개 기자와 나는 삼총사처럼 지냈다”라고 말했다. 또 신씨는 “동아일보 이 아무개 기자는 나를 아주 귀여워해주며 맨 처음 기사를 써줬다. 중앙일보 조 아무개 기자는 어디 다닐 때마다 나를 애인이라고 소개했다”라고 말했다. ㅈ일보의 한 기자는 “미술 기자 치고, 신정아 문제에서 비켜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로비는 철저히 ‘조중동’에 집중

2000년 7월 신씨가 언론에 얼굴을 내밀자 조선·동아를 비롯한 중앙 일간지들은 신씨에게 문화 칼럼을 내주었다. 신씨의 경력이나 글 솜씨는 신문 이곳저곳에 칼럼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럼에도 학계로 진출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신씨의 최종 학력은 미국 캔자스 주립대학 중퇴. 이 학력으로 신씨가 이화여대·한양대·국민대·중앙대·상명대 대학원에서 강의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한양대 한 관계자는 “신씨가 주류 언론에 유명 큐레이터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채용했다”라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 신분 상승에 성공한 신씨. 학력 세탁을 거쳐 이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만나면서 아찔한 고공비행을 하다 결국 학력 위조에 덜미를 잡히고 만다. 언론은 그녀에게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이며 추락을 재촉하고 있다. 신씨는 언론에 몸서리치고 있다. “언론의 표현대로라면 오히려 명품과 비싼 식사에 넘어온 기자들이 더 문제 아닌가? 한 인간의 인권까지도 무참히 짓밟아버리면서까지 언론의 권력과 독자의 흥행만을 주도하는 것은 언론의 본분이 아니다. 그들(언론)은 악마들이다. 악마보다 더 악한 이름이라도 있으면 붙여주고 싶다.” 신씨는 거짓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신씨가 언론을 향해 외치는 절규를 외면할 수만은 없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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