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6일 아프가니스탄(아프간) 북부 지역 바다크샨 주와 누리스탄 주의 접경 산악 지역. 미국인 안과의사 톰 리틀 씨(61)는 다른 의료 봉사단원 10명과 함께 2주일 동안 아프간 산간 오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리틀 씨는 지난 40년간 아프간에 살면서 의료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이곳에서 온갖 험한 일을 겪으며 환자들을 진료했다. 그는 아프간 구호단체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대부이며 현지어도 능숙하게 구사했다. 2주간의 진료는 그가 40년간 늘 계속해온 일정 중 하나였다. 그의 사무실은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있다. 카불 사람들은 언제든 그의 진료를 받을 수 있지만, 산간 오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카불까지 오가기가 힘들었다. 이 때문에 그는 더 많은 가난한 환자를 스스로 찾아나섰던 것이다. 이번 일정에는 영국·미국 등지에서 온 단기 자원 의료봉사자들도 동행했다.

그런데 그들 일행 앞에 두건을 쓰고 총을 든 괴한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다짜고짜 의료진을  숲으로 끌고 간 뒤 한 줄로 서게 했다. 리틀 씨는 침착하게 “우리는 의사이다. 아프간 사람들을 진료하고 오는 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끔찍한 총성이 울렸다. 그는 자신이 평생 봉사한 아프간 사람들의 손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 이날 피살된 의료 봉사단원은 여성 3명을 포함해 미국인(6명)·영국인(1명)·독일인(1명)·아프간인(2명) 등 모두 10명이었다.

ⓒReuter=Newsis아프간인들이 8월7일 아프간 북부 산악 지역에서 피살당한 의료 봉사단원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탈레반은 왜 의료봉사자들까지 살해하나

이 사건은 아프간 전쟁이 일어난 뒤 발생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전해진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자국민을 도우러 온 의사들을 살해한 것은 아프간으로 봉사를 온 모든 구호단체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숨진 리틀 씨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아내와 세 딸까지 데리고 40여 년을 아프간에서 살아온 훌륭한 의사인 그를 살해했다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이날 숨진 영국인 외과의사 캐런 우 씨(36)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또 다른 희생자 토머스 그램스 박사는 치과 장비를 야크에 매달고 에베레스트 산 중턱까지 올라가 환자를 치료한 열혈 의사이자, 아프간에서는 부르카를 입은 여인의 이를 치료하기 위해 협상하는 법도 배운 능숙한 치과의사였다. 미국 콜로라도 주 두랑고에서 잘나가는 치과 전문의였던 그가 병원을 그만둔 것은 글로벌치과구제(GDR) 설립자 로리 매슈를 만나면서였다. 그로부터 치통에서 풀려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숱한 사연을 전해 들으며 그램스 박사 또한 이에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AP Photo의사 톰 리틀·캐런 우·토머스 그램스(맨 윗줄 왼쪽부터)와 일행 7명은 영문도 모른 채 피살당했다.
이가 아파도 치료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평생을 고통에 허덕이며 겨우 아편이나 먹어야 치통을 잠재울 수 있었던 아프간 사람들에게 그램스 박사는 새 희망이었다. 라힘 〈카불 프레스〉 기자는 그를 취재했던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진료 가방을 풀면 이가 아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그는 그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했다. 사람들은 이를 치료하는 의사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 치통은 이들에게 인간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을 따름이다. 그램스 박사에게 진료를 받은 사람들은 인간이 이를 아프지 않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신기해했다. 그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훌륭한 치과의사였다.”

아프간으로 의료 봉사를 온 의사는 모두 ‘인류애’라는 큰 뜻을 품고 이 험악하고 살벌한 땅에 왔다. 자국에서도 의사라 하면 그래도 먹고살 만할 텐데 이런 전쟁터에 진료 가방을 들고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는 충분히 증명된다. 아프간 사람에게 의사는 생명을 살리는 대단한 사람이다. 의료 시설이 전무하다고 할 만큼 열악한 아프간에 온 서구 의사들의 뛰어난 의료 기술은 아프간 사람들을 살리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렇게 아프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의사인 톰 리틀 씨와 그 일행은 왜 살해당했을까?

ⓒReuter=Newsis유니세프(위)와 세계보건기구 등도 탈레반의 협조 아래 의료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프간인들, 외국인을 ‘스파이’로 인식

첫째는 이 의사들이 아프간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온 선교사라는 편견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8월7일) 자비훌라 무자헤드(아프간 탈레반 대변인)는 “어제 오전 8시쯤 우리 순찰대가 스파이 활동을 하던 외국인 기독교 선교사들을 발견해 모두 사살했다”라고 AP통신에 밝혔다. 그는 또 “사살된 자들은 다리어로 쓴 성경과 탈레반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 등을 소지하고 있었다. 스파이들에게 합당한 처벌은 죽음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무장 괴한들이 탈레반 병사였다는 이야기이다. 탈레반은 리틀 씨와 그 일행을 ‘성경을 들고 다닌 스파이’라고 규정했다.

리틀 일행이 소속된 단체는 국제 지원단으로 ‘인터내셔널 어시스턴트 미션(IAM)’이라는 기독교계 구호단체다. IAM은 1966년부터 이 단체 소속 각국 의사들과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아프간에서 의료·교육 봉사활동을 해왔다. IAM은 아프간 내 여러 구호단체를 대표할 만큼 노하우가 풍부한 단체이다. 이 단체의 더크 프랜스 사무국장은 “봉사단은 진료를 했지 스파이 활동은 하지 않았다. IAM이 비록 기독교 배경을 가졌지만, 아프간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카불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판슈를 교수는 “아프간은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에게 사형을 내릴 만큼 엄격한 샤리아(이슬람 법)로 통치하는 이슬람 국가이다. 사람들은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위협을 느낀다. 톰 리틀 일행이 아무리 도와주러 온 의사들이라 하더라도 기독교적인 작은 상징이 그들을 적대적으로 돌아서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프간 사람들에게는 외국에서 온 그 누구라도 스파이이자 적으로 보인다. 외국인들은 ‘탈레반이 아무리 나빠도 설마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는 사람인 의사들까지 죽이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당신들 생각이다. 아프간 사람들은 의사라고 고마워하지 않는다. 물론 당신들 앞에서는 고맙다는 제스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의사들이라 하더라도 외국인이면 스파이이자 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리틀 씨처럼 40년을 헌신한 의사에게도 총구를 겨누었던 것이다.

리틀 씨 일행이 살해된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속한 IAM의 또 다른 치명적인 약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의료 봉사활동을 하면서 주된 협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탈레반이 아닌 아프간 지방정부와 지역 원로들이었다. 아프간을 움직이는 대세가 탈레반으로 가고 있는 상황인데 IAM은 이를 간과한 것이다.

사건 이후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단체들 사이에서는 IAM이 탈레반과의 유대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이런 비극이 벌어졌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 단체들이 목숨을 지키고 안정적인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탈레반과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옳고 그름을 떠나 구호단체들이 신변 안전을 도모하면서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탈레반과 일정한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 필수라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아프간에서는 얼마 전부터 구호단체와 탈레반의 유대 관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양측의 협상 테이블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탈레반도 자신들을 아프간 정부와 동등한 위치에 두고 협상을 벌이려는 구호단체들과 만나고 있다.

탈레반, 도움 요청하자 경호원까지 붙여줘

안전을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한 구호단체의 외국 의사는 최근 탈레반 고위 관료나 그 가족들까지 진료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탈레반과 손잡기 시작하면서 진료하기가 편해졌다. 그동안 탈레반을 적으로 여기고 그들을 상대하지 못한 것이 리틀과 그 일행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탈레반을 테이블로 불러들이자 오히려 우리 의사들의 안전을 위해 경호를 해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우리는 기독교와 상관없이 순수한 인도주의 차원에서 의료 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탈레반에게 이해시킬 기회를 얻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단체도 신변 안전을 위해 탈레반과 회합을 갖고 활동 내용을 상의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2004년 소속 의사 다섯 명이 살해된 뒤 전면 철수한 가슴 아픈 전력이 있다. 그러나 아프간에서의 의료 행위를 중단할 수 없었던 이들은 2009년 봄 다시 아프간에 지부를 설립했다. 5년 만에 국경없는의사회가 안전을 위해 선택한 방법은 탈레반과 손을 잡는 것이었다. 탈레반 지역사령관과 대면 협상을 벌이며 진료 일정을 상의하고, 탈레반을 아프간 정부를 대하듯 대우했다. 이들이 아프간 사람들을 진료할 때는 탈레반이 지시한 대로 반드시 ‘국경없는의사회’라는 문구가 앞뒤로 적힌 조끼를 입는다. 이 조끼는 탈레반이 이들에게 진료를 허락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의사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증표나 다름없다.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WHO)도 탈레반 협조하에 의료 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이들은 현재 아프간 남부와 동부에서 소아마비 백신 접종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탈레반 협조 아래 진행된다. 아프간에는 서구 사회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는 소아마비가 많이 생긴다. 접종 한 번이면 영구적으로 막을 수 있는 소아마비를 많은 어린이가 앓는다. 하지만 아프간 사람들 사이에는 백신 접종 활동이 이슬람 어린이들의 씨를 말리려는 음모라는 루머가 널리 퍼져 있었다. 이로 인해 접종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 단체는 탈레반과의 협상을 통해 소아마비 접종의 중요성을 알리고, 이것이 인체에 안전하다는 사실을 각인시킨 뒤 아이들을 대상으로 접종할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 뒤 의사들은 “소아마비 백신 접종 활동을 허락한다”라는 탈레반 최고 지도자 뮬라 오마르의 편지를 가지고 다니며 접종을 시작했다. 아프간 사람들 또한 비로소 의사들을 믿기 시작했다.

아프간 당국에 신고된 국제 구호단체는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를 비롯해 252개에 이른다. 이들 단체는 아프간 주민 수백만명에게 의료·식량·건설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오늘도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아프간 사람들을 구호하고 있지만 이들은 과거 어느 전쟁보다 아프간전에서 더 많은 희생을 치렀다. 더구나 아프간의 치안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이들의 활동 범위는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이번에 리틀 씨와 그 일행이 희생되었음에도 국제 구호단체들은 아프간 구호 활동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IAM은 “이번 비극으로 아프간인을 돕는 우리 활동이 위축되지 않기를 희망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 구호단체인 월드비전도 “구호 요원 250여 명 대부분이 아프간 서부에서 활동하고 있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리틀 씨는 희생되었지만 구호단체 의사들은 그 때문에 아프간을 떠나지 않고 안전하게 아프간 사람들을 진료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기자명 김영미 분쟁지역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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