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일(문화 평론가)미국 실용주의와 달리 한국에서 캐스팅된 ‘실용주의’는 경제주의·성장주의·효율주의의 완곡어법이 아닐까. 이명박 당선자의 실용주의가 더한층 경제주의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퇴근길에 청계천을 한참 걸었다. 인산인해다. 군데군데 구세군이 종소리를 울리며 자선을 호소한다. 냄비에 지폐를 넣는 사람들의 표정이 전시용 조명만큼 밝다. 나도 천원짜리 한 장을 넣는다. 거리의 주인이 된 기분이 든다. 참 싸다!

내친김에 인사동까지 걸었다. 거기서도 누군가 자선을 호소한다.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한가운데서 두 다리가 무말랭이처럼 오그라든 40대 남자가 도르레 달린 썰매 위에 엎드려 동냥을 한다. 행인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피한다. 동냥 소쿠리에는 동전 몇 닢뿐이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그 남자의 그 몸짓이 행인의 진로를 자꾸 방해한다. 거리 한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켜보는 동안 아무도 그에게 적선하지 않았다. 가장 명백한 자선의 대상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말이다.

자선도 믿을 만한 대행사를 통하는 게 대세

그날 밤 꿈을 꾼 듯하다. 자선 냄비에 천원을 넣어서일까. 난데없이 산타가 등장했다. ‘자선 전문가’인 그에게 물었다. “인사동 거리의 그 남자는 왜 영업에 실패했을까요?” 산타 왈, “사람들은 적선하는 돈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라는 걸 인정받기 원하고, 이왕이면 적선의 효과가 분명하길 원해. 그런데 그자의 끔찍한 육체는 죄의식을 자극하고, 돈을 줘봤자 사태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절망감을 줘. 그런 데다 그 자가 앵벌이 조직에 고용된 플레이어가 아닐까 의구심을 품기도 하지. 그래서 요즘은 적선도 믿을 만한 대행사를 통하는 게 추세야”.

산타는 구세군 냄비가 경쟁력이 있는 건 자선의 자기 만족을 방해하지 않는 유서 깊은 대행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어느 이름 모를 소녀 가장이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꿈을 한번 꿀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자선 마케팅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래서 요즘은 산타업계에서도 도덕적 의무감을 자극해서 기부금을 쥐어짜는 정통 ‘리얼리즘 기법’은 한물갔다고 한다. 대신 자선 속에서도 이기심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고 기부금을 얻기 위해 종합 이벤트를 구사하는 노선이 대세이다. 최근에야 그 노선에 이름을 붙였는데 ‘실용주의’란다.

ⓒ난 나 그림

아침에 눈을 뜨니 크리스마스다. 간밤에 실용 산타가 한반도를 누볐나 보다. 신문마다 이명박 당선자의실용주의에 각주를 다느라 분주하다. 퍼스·제임스·듀이·미드 등이 주도한 미국 실용주의(pragmatism)는 물질주의·현세주의·상대주의 따위 오해를 받았지만, 핵심 정신은 삶을 현실의 문제를 중심으로 통합적으로 사유하자는 것이다. 비과학적인 신앙도 개인의 정서에 도움을 주면 ‘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 사유라면, 노동의 안정과 사회복지도 경제적 생산에 결과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볼 것이다.

뒤늦게 한국에서 캐스팅된 ‘실용주의’가 과연 그런 모습일까? 혹여 경제주의·성장주의·효율주의의 완곡어법은 아닐까. 내가 알기로 역대 정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경제를 강조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번 정권에서 실용주의일까? 그럼 이전 정권들은 실존주의였나? 이명박 당선자의 실용주의가 더한층 경제주의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기를 빈다. 기부의 수혜 대상 선정보다 기부금 모금 액수를 더 중요한 자선사업의 가치로 여기는 천박한 실용 산타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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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남재일 (문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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