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17일, 미국 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은 웹페이지를 통해 웹의 죽음을 선언했다. 도대체 인터넷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느닷없이 멀쩡한 웹에 대해 죽음을 선고했을까? 최근 아이폰·아이패드·애플 TV 등 ‘스마트 하드웨어’가 줄줄이 등장하면서 인터넷 디지털 콘텐츠를 사용하는 방식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패드로 이메일을 읽고, 식사를 하는 동안 페이스북과 트위터·뉴욕타임스를 훑어보고, 회사 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팟케스트를 듣고…. 집에 돌아와 넷플릭스(Netflix)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본다.”(〈와이어드〉, ‘The Web is Dead’, Chris Anderson).

위 예시문에 등장하는 아이폰·아이패드를 통해 스티브 잡스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콘텐츠로 구성되는 미디어의 세 가지 레이어를 통합한 강력한 솔루션을 선보였다. 초기 인터넷의 디지털화는 미디어의 세 가지 레이어를 분리하는 작업이었다. 디지털화를 통해 하드웨어로부터 분리된 콘텐츠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사용될 수 있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미디어의 세 개 레이어를 다시 결합하는 사업적 혁신을 단행했다. 스마트 기기와 앱(애플리케이션)의 결합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상업화를 촉진한다. 앱의 시대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연결하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연결해 집 나간 디지털 저작물들을 회수함으로써 저작권을 강화한다.

ⓒhttp://obamatacman.com애플의 하드웨어-앱 결합방식을 통한 콘텐츠 유료화 모델은 옛 미디어 업계에게는 그야말로 복음이었고, 스티브 잡스(가운데)는 구세주였다.
크리스 앤더슨은 이러한 앱의 출현에서 인터넷의 성숙한 미래를 본다. 이제 인터넷이 사춘기를 지나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에 초기의 호환성에 입각한 웹의 세계가 폐쇄적 상업화를 위한 앱의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 트래픽 비율을 표시하는 그래프 한 장에 기대어 과감하게 이런 주장을 전개한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인터넷의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던진다는 점이다. ‘웹은 죽었다’는 〈와이어드〉의 진단은 인터넷 초기의 자유주의적 윤리를 버리고 신자유주의 사업 모델로 가치관을 전환하겠다는 태도 표명이다. ‘인터넷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혼돈은 사업 모델이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 제국이 디지털 세상에 질서를 세우고 이윤을 안겨주고 있다”라고 답한다. 이 같은 자세는 인터넷의 구조와 성격,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웹 사망 선언’은 지난 15년간 변화된 인터넷 지형을 반영한다. 초기 인터넷에서는 디지털화한 콘텐츠 사용을 중심으로 관련 기술이 개발되었다. 웹의 탄생 자체가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기 위한 시도였고, 웹 브라우저와 검색 기술 또한 디지털화한 콘텐츠를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디지털화한 콘텐츠는 PC의 유연성 덕분에 여러 가지 형태로 혼합되고 재활용될 수 있었고, 상호 호환성에 입각한 인터넷 프로토콜(통신 규약)과 망중립성의 원칙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를 큰 장애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와이어드 9월호웹 사망 선언을 주장하는 데 활용된 그래프(〈와이어드〉 9월호). 웹 트래픽이 차지하는 상대적 비율은 2000년 초반에 최고치를 기록한 후 점차 감소해, 2010년 현재 23%로 떨어졌다. 크리스 앤더슨은 이를 근거로 웹 사망 선언을 내렸으나 웹의 절대적 트래픽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등, 상업주의자들은 ‘대환영’

그러나 앱과 스마트 기기의 결합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복제되던 디지털 콘텐츠를 회수해간다. 회수된 디지털 콘텐츠는 특정한 스마트 기기를 통해서만 제공된다. 이미 애플은 아이팟(하드웨어 기기)과 아이튠스(앱)를 결합해 콘텐츠의 유료화에 성공한 바 있다. 애플은 광고 수입이 아닌 콘텐츠 판매를 통해 수익구조를 창출한 매우 드문 사례를 제공해주었다.

옛 미디어 업계나 인터넷 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올리려는 업체는 항상 수익 모델 부재로 골치가 아팠다. 애플의 하드웨어-앱 결합방식을 통한 콘텐츠 유료화 모델은 상업화 면에서 볼 때 가히 혁명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 모델은 옛 미디어 업계에게는 그야말로 복음 그 자체였고, 스티브 잡스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애플의 인터넷 진입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애플 하드웨어-앱 결합체는 디지털 콘텐츠의 상업화를 앞당길 것이고, 그것이 인터넷 공간의 상업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사람들은 줄서서 아이폰을 기다리고, 애플은 그들을 줄줄이 엮을 것이다.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상업화의 돌파구를 연 ‘새로운 거인족’은 강력한 이윤 동기 때문에 폐쇄적 독점 체제를 원하게 되고, 그러한 이윤 동기의 기술적 발현이 속속 다양한 앱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2010년은 유료화와 상업화가 거대 독점 기업들에 의해 본격 추진되는 시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와이어드〉는 트위터·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의 급속한 성장과 애플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인터넷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인터넷이 ‘활짝 열린 웹(wide-open Web)’에서 ‘반쯤 닫힌 플랫폼(semiclosed platforms)’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선언 속에는 개방적인 웹을 죽이고 인터넷을 앱과 상업화의 닫힌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사업가의 바람이 숨어 있다. 〈와이어드〉 기사 타이틀 “웹은 죽었다. 인터넷이여 영원하라”는 ‘수평적이고 분산적이며 열린 아키텍처(컴퓨터 구성 방식)로서의 웹은 죽었다. 하지만 새롭게 전개될 폐쇄적이고 독점적이며 상업화된 인터넷(앱)은 영원하라’는 주문(呪文)이다.

이러한 주문의 뒤에 서서 박수치는 집단은 엄청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옛 미디어계의 군주들이다. 이제 앱은 콘텐츠 해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제공한다. 더 이상 해적질을 당하지 않으려면 빨리 기존 웹 환경이 정리되고 새롭게 상업화된 앱 환경이 재정비되어야 한다. 그런 참에 인터넷 디지털 문화의 첨병 노릇을 했던 상징적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이 손수 ‘웹 사망’을 선언하고 나섰으니, 박수를 안 칠 수 없다. 스티브 잡스를 위시한 모든 닫힌 체제 옹호자와 상업주의자들 또한 쌍수를 들고 이 선언을 반길 것이다.

웹 사망 선언은 수많은 독립 자영 생산자와 소비자를 현혹할 수 있다. 앤더슨의 ‘롱테일론’을 잘못 해석하면 마치 모든 생산자·사용자가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 도래했다고 오해하게 된다. 웹 사망 선언은 수많은 평범한 사용자에게 돈벌이의 허위의식을 심어주어 그들이 수평적이고 열린 웹을 버리고 앱이라는 닫힌 체제로 들어오도록 만들 수 있다. 현명한 이용자라면 공룡도 아닌 개미이면서 박수 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기자명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사회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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