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복지국가 운동의 일환으로 ‘진보 대통합’이 시도되어왔다. 민노당·참여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 간의 연대 내지 통합은 엄밀히 말해서 그들의 일이다. 민주당을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스스로 ‘야권 재편 없으면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들이 알아서 연대든 통합이든 할 거다. 복지국가 운동가들이 그들의 거래를 주선하는 거간꾼이나 연락병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한다.
‘우리의 일’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
그렇다면 진보 성향 정당들의 통합은 이제 필요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진보 정당들의 연대와 통합을 갈망한다. 그러나 통합만이 문제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냥 민주당에 들어가면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결국 문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때때로 진보적 주장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지역 기반과 대북 정책을 빼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정말’ 정권을 교체하고 싶다면 ‘정말 다른’ 야당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야 4당이 통합해서 전체 판을 흔들고, 이에 따라 민주당을 심각하게 압박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범야권의 구도가 바뀌고, 적어도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이념적 기반으로 하고 ‘역동적 복지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하는 중도진보 야당이 나타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정권 교체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되더라. 결국 무엇을 위해 뭉칠 것이냐는 대의명분, 공동의 목표를 우뚝 세우는 것이 야권 재편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라고 본다.
야 4당 때문에 속상한 일이 꽤 많았나보다. 아니다. 야 4당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러나 더 길게 보는 역사적 안목이 절실하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시민정치포럼은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통합 협상에 끼어들기보다, 진보진영 모든 정당들이 앞으로 공통적으로 내걸어야 할 대의, 국가 비전과 정책 다발을 시민의 일상생활 속에 퍼트리고, 시민 누구나 소속 정당을 넘어서서 함께 모여 ‘수다’를 떨 수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 비전이 ‘역동적 복지국가’인가. 많은 사람이 그 용어를 어려워한다. 우리는 복지정책 몇 개를 실행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회경제 체제로서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현존하는 국가 중에서는 북유럽 모델과 가장 비슷하지만, 한국의 현실적 조건과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로 귀결될 것이다. 사실 ‘역동적’이란 부분이 이해 안 된다고 하기에 ‘활기 넘치는 복지국가’로 표현을 바꿔볼까 고민도 했다. 간단히 말하면 ‘역동적 복지국가’란 ‘보편적 복지’와 ‘사회·경제적 활력’을 겸비한 나라를 만들자는 거다. 지난 10여 년 동안 경제성장률은 높은 편이었다지만, 나라의 활력이 크게 시들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것 같다. 이를 되살려내는 게 역동적 복지국가의 역할 중 하나다.
그렇지만 유럽 복지국가들이 미국 같은 ‘시장국가’보다 활력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나라에서 기본생활을 보장하니 활발히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할까. 시장주의자들은 유럽 복지국가들의 경우 소수만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는 나라 돈이나 받으며 빈둥거린다고 주장한다. 이런 나라에는 활력도 없고 복지병이 판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역동적 복지국가는, 모든 국민이 자기 실현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며 노력하는 사회다. 이런 개인들은 공정한 경쟁에 참여해서 사회적으로 정당한 대가를 얻는다. 그동안 한국은 전 국민이 (어느 정도까지는 공정성이 보장되는) 경쟁 시스템으로 나름의 활력을 누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갈수록 빈부격차가 커지고, 계급이 고착되면서 공정한 경쟁 기회가 오히려 극도로 제한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를 복지국가 노선으로 교정해야 한다.
진보 쪽 사람에게서 ‘경쟁’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듣기는 꽤 오랜만이다. 경쟁과 시장 없이 우리 사회의 존속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더욱이 한국인들은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편이며, 스스로 (일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의식도 매우 강했다. 이게 한국의 생활 방식이자 국민 정서이다.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식을 기르며 경쟁에 참여해왔다. 문제는 이런 경쟁의 공정성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거다. 가정환경에 따라 아이들의 경쟁 조건이 너무 차이 나고, 한번 패배하면 재기할 수 없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경쟁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게 문제이지, 경쟁 자체를 악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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