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있는 사람들이 대통령 사면으로 풀려날 때마다 십오 척 담장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보는 이들이 있다. 철거를 반대하다, 파업을 벌이다, 시위에 나서다 구속된 사람들이다. 2010년 한국에서 양심수는 더 이상 국가보안법 위반자나 양심적 병역거부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재소자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인권단체들은 이들을 우리 사회의 ‘양심수’라 부른다.

‘양심수’라는 개념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국제 앰네스티는 ‘정치·종교적 신념, 사회·경제적 지위 등의 이유로 투옥되거나 신체적 자유가 제한된 이들 가운데 폭력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을 양심수라 정의한다. 문민정부 때까지 국가보안법 위반자 및 비전향 장기수의 석방을 주로 요구하던 국내 인권단체들은 2000년대 이후 양심수 개념을 점차 확장하기 시작했다. 모성용 양심수후원회 상근부회장은 “다수·공공의 이익이나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등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것이 국가가 규정한 법에 저촉돼 구금·투옥된 모든 사람을 양심수로 보고 있다”라고 밝혔다.

ⓒ시사IN 조남진2008년 6월 촛불집회에 나선 시민을 경찰이 폭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양심수로 분류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집계한 양심수 현황(8월9일 기준)과 구속노동자후원회의 구속노동자 현황(8월23일 기준) 등을 종합해보면, 8월23일 기준 구속 중인 양심수는 총 58명이다. 이를 구속 사유에 따라 나눠보면 △파업·민중대회 참여 노동자 20명 △국가보안법 위반자 12명 △철거반대 투쟁 참여자 10명 △양심적 병역거부자 7명 △촛불시민 등 집회·시위 참가자 4명 △난민 소송 중인 이주노동자 3명 △기타 2명 등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자 및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 분단국가의 통치이념에 맞선 이들이 기존 양심수의 대표 사례였다면, 이제는 노동자·철거민·이주노동자 등 소외 계층이 33명(57%)으로 대다수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면서 촛불시위 등 집회 참가자(4명)도 양심수 명단에 올랐다. 사회적 약자와 일반 시민이 양심수로 분류되는 시대다.

“함께 살자” 외치다 감옥으로

“상상도 못했죠. 내 새끼가 왜 저기서 고생을 해야 하나.” 서울구치소에서 용산참사 유족 전재숙씨(68)가 말했다. 2009년 1월 이후 그녀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살아보겠다고 망루에 오른 남편 이상림씨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고, 간신히 살아난 둘째 아들은 감옥에 갇혔다. 전씨는 아들을 보러 매일 서울구치소에 온다.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아들 이충연씨는 지난 5월31일 열린 항소심에서도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수면제를 두 알씩 먹어야 잠이 들었다는 전씨는 두 차례 재판을 겪으며 이미 체념을 배운 듯했다. “점점 더, 악한 사람은 잘살고 선한 사람은 못사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시사IN 윤무영. 2008년 6월 촛불집회에 나선 시민을 경찰이 폭행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건 용산만이 아니다. 77일간의 쌍용차 파업이 뒤덮었던 평택도 현재진행형이다. 8월9일 있었던 항소심에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한상균 전 지부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말로 표현 못하죠. 나왔으면 좋았을걸….” 아내 장영희씨(46)는 당시의 무력감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남편을 보러 간다. 안양교도소로 옮긴 뒤에는 그나마 10분이던 면회시간이 6분으로 줄었다. 가장이 된 그녀는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을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울 때 남편의 빈자리를 많이 느낀다고 했다. 그래도 중학교 2학년인 아들과 고등학교 3학년 딸은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에게 한국 법은 차갑기만 하다. 블라 마르셀(Boula Mar cel·45) 씨는 4년째 화성보호소에 수감 중이다. 2007년 1월 이후 제기한 난민 인정 행정소송에서 번번이 졌기 때문이다. 고향인 콩고에서 벌어진 내전으로 그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돌아가면 겪게 될 생명의 위협을 피해 이곳에 남길 원했지만,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대법원은 그의 상고를 기각했다. 난민 신청 사유에 확실한 증거가 없고 일부 사실이 과장됐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완강히 출국을 거부하고 있는 그가 언제까지 보호소 생활을 할지는 알 수 없다.

‘함께 살자’고 외치는 일에 앞장선 이들은 여지없이 창살에 갇혔다. 기아자동차 하청업체 해고 노동자 이동우씨는 2007년 비정규직 파업을 이끌다 이듬해 11월 구속돼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2009년 6월 보석으로 석방됐으나 두 달 만에 다시 구속됐다. 기아차 파업과 이랜드·이젠텍 연대투쟁에 가담했다는 이유였다. 업무방해·폭력·공무집행방해·건조물침입 따위 죄목이 줄줄이 붙었다. 2008년 촛불시위에서 전경과 충돌하다 사진 채증을 당한 일은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돌아왔다. 모두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수감 중이던 8월24일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의 암 투병 사실을 안 것은 지난 7월. 더는 숨길 수 없던 동료들이 사실을 알려왔다. 치료를 중단한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눈에 담으려 아픈 몸을 이끌고 마지막 면회를 왔다. 임종 한 달 전부터 동료와 가족들이 특별귀휴를 호소했지만, 춘천교도소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결국 임종이 오고 말았다. 그를 옆에서 지켜본 이상욱 기아차 구속해고 현장대책위원장은 “관이란 게 힘없는 사람한테는 정말 매몰차더라”고 말했다.

ⓒ뉴시스2010년 이주노동자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회원들.
정부, 양심수 존재 부인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5번에 걸쳐 이뤄진 사면에서 노동자·철거민 등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사면뿐 아니라 가석방에서도 이들 양심수가 배제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생활태도가 우수한 이들의 명단을 교도소에서 올려도 법무부 심사를 거치면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이충연 위원장의 아내 정영신씨는 “이번 8·15 사면 전에도 교도소에서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사람 2명을 명단에 올렸지만 단 한 명도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양심수를 봐줄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는 양심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시사IN〉이 질의서를 보낸 결과, 법무부는 “양심수는 대한민국의 법률용어가 아니며, 양심수라는 용어가 ‘정치적 신념 때문에 감금되거나 구류되어 있는 자(정치범)’라는 의미라면 그런 사람은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공식 답변을 보내왔다. 심사 과정에서의 차별 의혹에 대해서도 “양심수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면·가석방에서 배제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기본권을 제약하는 법의 종류가 많고, 구속과 재판 및 사면·가석방이 차별적으로 이뤄지는 한국의 법 현실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나온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에서 “정부는 양심수는 없고 실정법률 위반자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문제의 실정법률이 ‘민주주의 일반’의 내용을 채우지 못한다면 실정법률 위반자도 양심수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뉴시스2009년 파업 중인 쌍용자동차 노조원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통치 이념이 됐다”(양심수후원회 임미영 사무국장)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만큼 국가는 힘 있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무딘 칼을 휘두른다. 이렇다보니 〈김대중 자서전〉 〈정의란 무엇인가〉 등을 통해 최근 불고 있는 ‘정의’ ‘양심’ 열풍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반증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우리 정부는 불법을 엄단하는 하위 가치에 혈안이 돼 있다. 설령 양심수들이 실정법을 위반하고 공동체의 질서·권익을 침해했다 하더라도, 더 많이 가진 이들이 저지르는 잘못에 비해 미미하다. ‘형벌의 과잉’이다”라고 말했다.

정의가 죽어버린, 그래서 더 정의를 갈구하는 2010년의 한국 사회에서 양심수와 그 가족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뎌내고 있다. 전재숙씨는 오늘도 아들을 보러 구치소에 갈 것이다. 장영희씨는 사춘기를 겪는 아들을 보며 또다시 남편의 빈자리를 느낄 것이다. 블라 마르셀 씨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까지 화성보호소에서 아침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면회실에서 무력감에 몸을 떨어야 할 것이다. 1999년 비전향 장기수들이 대거 석방됐지만, 한국은 여전히 양심수의 나라다.

 
기자명 전혜원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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