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 전문기자한나라당의 '반북 보수' 이념도, 지난 10년의 남북 관계도 새로운 시대 대북 정책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평양을 무대로 한 새로운 남북 협력 시대의 개막이 필요하다.
이제 당선이 되었으니 수많은 정책 아이디어가 난무할 것이다. 하여, 이렇듯 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노파심에서 첨언한다.

노태우 정권 말기부터 시작해 벌써 여러 정권의 영욕을 지켜봤다. 특히 몇몇 정권은 정권 초반기, 남북 관계 시험대에서 잘못 대응해 남은 기간 내내 고통을 겪었다. 김영삼 정부는 정권 출범과 함께 1차 핵 위기를 겪었고, 노무현 정부는 2차 핵 위기의 와중에 출범했다. 그리하여 미국과 북한이라는 양극단의 까다로운 상대에게 시달렸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앞의 두 정부는 모두 핵 위기라는 험악한 시험에 들었다. 이명박 정부를 기다리는 것은 10년 핵 위기가 끝나면서 격렬한 질서 재편 회오리이다. 구체적으로는 2월이나 3월 중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 서울에 내려오려 할 것이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초기에 북한의 특사 교환 제안을 거부했다. 노무현 정부는 대북 송금 특검까지 단행해, 사실상 남북 관계가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버린 적이 있다.

김영남의 서울 방문은 어쩌면 북한의 3차 시도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앞의 두 정부와 달리 과연 능동적이고 독창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남한의 새 정부에 시간을 주지 않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인 2월26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이 잡힌 까닭이 뭐겠는가. 나는 이렇게 갈 터인데, 당신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미국과의 관계 설정 문제에 대해서도 ‘열공’이 필요하다.

미국이 북한에 급속도로 접근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응은 뭘까? 그런데 바로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딜레마가 있다. 그의 태생인 한나라당 주변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친북 좌파의 10년 대북 정책에 대한 한을 풀 것이다’는 얘기가 떠돈다고 한다. 보수 진영이 지목하는 이른바 ‘친북 좌파’는 이번 대선에서 붕괴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그러니 그들의 다음 한풀이 대상은 미국이 되어야 할까.

선택은 자유이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왜 아베 전 총리가 9월에 시드니에서 부시를 만나고 갑자기 사임했는지,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에 제동을 걸겠다고 호언했던 후쿠다 총리는 왜 방미 후, 제동은커녕 스스로 납치 문제라는 완고한 전제 조건을 슬그머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집권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한나라당과 그 주변의 냉전 보수 세력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햇볕 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으로 일컬어지는 지난 10년의 대북 정책이 정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분단 50년의 남북 대치 국면을 누그러뜨리고 교류와 협력의 실마리를 열었다는 점은 성과일지 모르나, 그 결과가 겨우 개성과 금강산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이 분명히 한계이다.

개성을 넘어 평양으로 진출하려면 북한 측 파트너의 교체 필요하다

 내년 8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면 중국은 그동안의 도상연습을 끝내고 평양으로 물밀 듯이 오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일본 역시 8월 이전에 평양에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목표를 세워두었다. 남들이 모두 평양을 목표로 뛰는 마당에 개성·금강산에 머물 이유가 뭔가. 이제 개성을 넘어 평양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러자면, 파트너 교체가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북한의 대남 파트너였던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원래 남북 대치 시기에 대남 공작을 담당했던 부서다. 그러니 그들을 파트너로 했던 10년의 남북 관계가 정상적일 리 없다. 경제 회생을 위한 대책 마련이라는 북한 내부의 당면 과제와도 유리된 채 오로지 남쪽의 단물 빨아먹기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남한은 남한대로 퍼주기 논란에 휩싸였고, 희망 없는 대북 지원에 북한 내부도 멍들었다.

공작 전문가가 아닌 경제 전문가, 특히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연결된 평양 내부의 진지한 세력과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경제와 실용은 남한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북한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산업·경제 기술을 매개로 한 남북 간 본질 협력 시대, 평양을 무대로 한 ‘이명박표 대북 정책’의 시대를 구상해봄직하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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