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철이면 전후방 지뢰지대 근처에서는 폭우로 유실된 플라스틱 대인지뢰(M14) 폭발 사고로 죽거나 다치는 끔찍한 사고가 그치지 않는다. 올해는 설상가상으로 북한에서 떠내려온 대인지뢰(목함지뢰)마저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지난 7월 말 북한 황해도 일대를 휩쓴 폭우에 북한군이 매설해둔 목함지뢰가 대거 유실되면서 임진강 물길을 따라 남쪽으로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급기야 7월31일 밤에는 연천군 백학면 임진강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주민 2명이 갈대밭에 있던 북한제 목함지뢰를 들고 나오다 1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는 큰 사고를 당했다. 이번 수해로 떠내려온 북한제 목함지뢰는 전례없이 많은 양이다. 겨우 나흘 동안 군이 수거한 북한제 지뢰 분량만도 강화도와 임진강 일대에서 82발이다. 대체 얼마가 떠내려왔고, 어디에서 지뢰 피해자가 또 발생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시사IN 정희상남한산성 도립공원 내 유실 지뢰지대에 설치된 안내문을 읽는 인근 마을 어린이들.

국제사회에서 비인도적 무기의 대명사로 꼽히는 대인지뢰가 민간인을 역습하고 있다. 남북한 모두 국제 대인지뢰 금지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전쟁 이후 60여 년 동안 휴전선 일대에 엄청난 양의 대인지뢰를 매설해온 탓이다. 최근의 사건은 보기 드물게 북한에서 떠내려온 대인지뢰 피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을 뿐이지 실제 대인지뢰의 심각한 위협은 전후방 도처에 널려 있다. 특히 잘못 건드릴 경우 주로 발목이 절단당해 발목지뢰라고 불리는 M14 대인지뢰 피해가 심각하다.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2001년부터 8년 동안 전후방 각지에 매설된 M14 플라스틱 대인지뢰 폭발사고가 32건 발생해 모두 6명이 죽고 35명이 다쳤다. 그중 민간인 피해자가 25명으로 군인(11명)보다 훨씬 많다.

8년간 M14 대인지뢰 폭발로 6명 사망

한반도에서 대인지뢰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때부터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 미군은 중공군(현 중국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휴전선 일대에 수많은 대인지뢰를 매설했다. 국방부는 한국군과 미군이 비무장지대에 매설한 지뢰가 어림잡아 100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수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남한에 주로 매설된 대인 지뢰는 M3, M14, M16A1 따위다.

북한도 휴전 무렵부터 옛 소련제 지뢰를 자체 생산해 북한 쪽 비무장지대에 상당량을 매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 관련 귀순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북방한계선을 기준해 전후방 1m 간격으로 대인지뢰를 두 줄로 매설해두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대인지뢰를 ‘반보병지뢰’라고 부르는데 크게 목재와 플라스틱 두 종류로 나뉜다. ‘목함 반보병지뢰’ 6호와 57호, 그리고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주지재반보병지뢰’ 57호와 74호가 대표적 대인지뢰다. 최근 수해로 유실돼 남한으로 대량 떠내려온 목함지뢰는 ‘반보병지뢰 6호’다.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ICBL)에서는 북한에 매설된 대인지뢰의 양이 남한의 약 30% 수준인 30여 만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폭우로 유실돼 83발이 남한에서 수거된 북한제 목함지뢰(왼쪽)와 물에 떠내려가 곳곳에서 발목절단 피해자를 양산하는 우리 군의 M14 플라스틱 대인지뢰(오른쪽). 큰 사진은 군의 지뢰제거 작업 뒤에도 유실 지뢰가 많아 출입을 통제하는 후방 지뢰지대.

남한의 대인지뢰 매설 지대는 1961년 쿠바사태와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침투사건, 그리고 1978년 판문점 도끼난동사건 등을 겪으면서 후방 곳곳으로 확대됐다. 북한의 특수전 부대 기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후방 각지에 산재한 대공포 진지, 미사일 및 레이더기지 등 군사시설에 대한 경계와 방호 목적으로 M14 대인지뢰를 무차별 매설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전국 39개 방공기지 주변에 대인지뢰 7만5000여 발이 매설됐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을 마지막으로 매설이 중단된 후방 대인지뢰는 이후 집중호우 때면 유실돼 군부대 주변 주민과 등산객의 안전을 크게 위협해왔다.

 문제는 대인지뢰가 현 시점에서 군 작전이나 국가 안보상 목적을 상실한 채 그대로 방치돼 무차별적으로 민간인 살상을 초래하는 비인도적 무기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국내 대인지뢰 가운데 가장 최근에 매설한 시점은 1988년으로 22년이나 경과했다.

미국 국방부 자료에는 ‘지뢰는 20년이 경과하면 방어무기로서의 군사 전술적 기능을 상실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는 30~50년씩 묵은 지뢰가 널려 있다. 군 당국은 그동안 비인도적 대인지뢰 제거 여론이 일 때마다 국가안보 기능을 강조했지만 이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군 작전상 지뢰가 필요하다면 주로 민간인을 불구로 만드는 고물 지뢰 대신 새로 매설하는 것이 맞을 터이다. 이처럼 군사적 기능을 상실하고도 방치된 채 민간인과 아군 병사에게만 피해를 주는 비인도적 살상무기가 M14 대인지뢰의 자화상이다.

〈시사IN〉은 여름철 집중호우 시기를 맞아 유실 위험이 산재해 있는 대표적 전후방 대인지뢰 지대를 찾아 그 아찔한 실태를 점검해보았다. 전국에 산재한 39곳의 후방 지뢰지대는 사람이 많이 찾는 대도시와 명산을 끼고 있는 곳이 많았다. 서울 강남 우면산, 경기도 성남 남한산성 자락(사기막골), 부산 태종대와 중니산, 포항 호미곶, 인천 문학산이 대표적이다.

현장을 둘러본 결과 이들 후방 지뢰지대는 군에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지뢰 제거 작업을 했지만 회수하지 못하고 유실된 지뢰가 많아서 서둘러 철조망을 확대해놓고 ‘과거 지뢰지대’라는 신조어 표지판을 설치해둔 곳이 많았다. 먼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바로 뒤에 위치한 우면산 지뢰지대를 찾았다. 예술의전당에서 10분쯤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바로 지뢰지대가 나타난다. 이곳 지뢰지대는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 명소’라는 간판과 함께 사시사철 서울시민이 북적이는 곳이다. 소망탑에서 아래쪽 등산로 경사면을 따라 철조망을 쳐놓고 각종 지뢰 안내판과 경고문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곳곳에 삼각형 붉은 표지로 ‘과거 지뢰지대’라는 간판을 설치했다.

ⓒ시사IN 안희태유실된 M14 대인지뢰를 밟아 발목을 잃은 강화도 주민(왼쪽)과 연천군 백학면 지뢰 피해자(오른쪽).

근처 군부대 안내문에는 “이곳은 과거 지뢰 매설 지역으로 2000년대 군에서 지뢰 제거를 실시했으나 유실 또는 제거하지 못한 지뢰로 인한 사고발생 위험이 있어 출입을 금지하며 지뢰 발견 시는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서로 신고 바랍니다”라고 씌어 있다. 서울 양재동에서 왔다는 한 등산객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하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유실 지뢰를 못 찾았으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이런 경고판을 언제까지 걸어두고 방치할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라고 말했다.

제거 기술 부재 드러낸 ‘과거 지뢰지대’

서울과 수도권 주민이 즐겨 찾는 관광지인 경기도 성남 남한산성에도 대규모 지뢰지대가 자리하고 있다. 남한산성 유원지에서 ‘사기막길’ 쪽으로 5분가량 등산로를 걸어 올라가면 곳곳에 지뢰 표지판과 함께 유실된 지뢰지대가 남아 있다. 등산로는 바로 지뢰지대와 인접해 오가는 이를 오싹하게 만든다. 이곳은 경사가 완만한 숲길이라 어린이와 노인이 산책하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는 지뢰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일상이 된 듯 지뢰 경고 표지판 앞에서 유치원생들이 뛰놀고 있었다.

부산의 대표 관광지인 영도구 태종대도 사정은 비슷했다. 영도구 동삼동 산 159번지 일명 나이키 방공포대가 자리했던 이곳을 부대가 이전하면서 시민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여론에 직면했다. 게다가 2000년 11월에 이곳 ‘자갈마당’에서 유실된 대전차지뢰 1발과 대인지뢰 2발이 발견되면서 지뢰 제거 요구가 거셌다. 이에 따라 군에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대인지뢰 제거 작업을 벌였지만 유실 지뢰가 너무 많아 철조망을 오히려 확대해서 둘러친 채 시민을 들어가지 못하게 할 뿐이다. 3년 전 산불이 났을 때도 헬기 30대를 동원해 불 끄는 과정에서 소방관이 지뢰를 밟아 다리를 절단하기도 했다.

 포항 호미곶의 한 방공기지의 경우 매 시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이 지역은 지뢰가 매설됐으니 접근하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라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흡사 과거 비무장지대 GP에서 남북한 간에 나오던 선전방송을 연상케 한다. 이곳은 2009년 4월9일 산불이 발생해 민간인과 포항제철소 직원 등 3000여 명과 소방차 40대가 출동했으나 유실 지뢰 폭발 위험 때문에 화재 진압에 실패했다. 결국 불길은 사방의 산으로 번져 큰 피해를 냈다. 지역 주민들이 올봄 불에 탄 나무를 베고 식목을 하려 했지만 유실 지뢰 문제로 군부대가 접근을 금지하는 바람에 현재 이 일대 산악은 황무지처럼 방치된 상대다. 인근 주민들은 나무가 없다 보니 큰비가 오면 더 많은 유실지뢰가 마을로 떠내려올 것이라며 불안에 떨고 있다.

자유로 남쪽 후방으로 파주 LG필립스 단지 인근에 있는 보현산 자락도 지뢰 약 2000발이 매설된 지대였다. 이곳에서는 주민의 민원이 끊이지 않자 2007년 10월께 공병부대가 대대적으로 지뢰 제거에 나섰지만 1300여 발만 발견됐다. 나머지 600여 발은 못 찾은 채 산을 개방했다. 그동안 이곳에서는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주민 6명이 지뢰 사고로 죽거나 다쳤다. 보현산 자락인 파주시 탄현면 금산리 마을 앞에는 파주시가 설치한 표지판이 있었다. 표지판에는 ‘M14 대인지뢰 68발 중 9발을 제거했고 9발은 사고로 터졌으며 50발이 미확인되었기에 차후 이 지역에 대한 개발 등 행위 시 반드시 군 부대에 문의해 승인 하에 시행하기 바란다’라는 요지의 글이 씌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군장병들이 장마철 폭우로 인해 유실된 지뢰를 찾으려고 탐지 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청 뒤편에 자리한 장릉산도 대인지뢰 지대다. 장릉산 정상에 위치한 방공기지는 1984년 폭우로 울타리 철조망이 넘어지면서 유실 지뢰가 폭발해 산사태를 불러 산 아래 고등학교를 덮쳐 대형 참사로 이어진 일이 있다. 현재 김포에는 당시 유실 지뢰 폭발로 실명한 주민과 발목을 절단한 주민 2명이 생존해 있다.

한반도 지뢰 제거에 367년 걸려

해마다 장마와 폭우로 유실되는 M14 대인지뢰 피해의 심각성을 인정한 군에서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해마다 후방 지뢰지대 39개소에서 M14 대인지뢰 제거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취재진이 주요 후방 지뢰지대를 탐방한 결과 ‘과거 지뢰지대’라는 표지판이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또 시민 품으로 돌려주었어야 할 후방 지뢰지대는 오히려 군의 지뢰 제거 작업 후 출입금지 면적이 종전보다 3~5배는 늘어났다. 유실된 지뢰가 많다는 이유로 반영구적 출입금지 지대를 확장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대인지뢰를 제거할 때 원칙은 제거 작업 뒤 ‘지뢰해방지구’로 선포하게끔 되어 있다. 국제인도적지뢰제거센터(IMAS)가 규정한 ‘국제지뢰활동표준’에는 지뢰를 제거할 경우 반드시 8g 이상의 어떤 금속물도 발견돼서는 안 되게끔 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군은 그렇게 철저히 지뢰를 제거하지 않았다. 실제 지뢰를 제거했다는 현장 곳곳은 철조망과 철사줄, 지뢰 묶는 끈 등 온갖 금속 물질 파편이 여기저기 방치돼 있었다. 취재진과 동행한 한국지뢰제거연구소 김기호 소장이 휴대한 M14 지뢰 탐지 장비로 군이 제거한 지뢰지대를 탐색해보니 곳곳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실제 지뢰가 남아 있는 것인지 지뢰 제거 작업을 했다는 공병대가 금속 조각들을 여기저기 흩어놓은 채 철수해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김기호 소장은 “이런 식으로 지뢰 제거 작업을 한 뒤 유실 지뢰를 방치할 것 같으면 오히려 군에서 손대지 않는 게 나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군은 M14 플라스틱 대인지뢰 탐지 장비와 기술이 없는 데다 투입 군병력도 의무 복무 중인 일반 사병들이라 지뢰 제거 노하우가 없어서 매설한 그대로 남아 있는 지뢰만 제거했다고 한다. 수많은 유실 지뢰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현재 대인지뢰 매설 지대가 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비영리 민간기구(NGO)로 하여금 국가사회 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지뢰 제거를 담당토록 한다. 그러나 한국은 플라스틱제 M14 대인지뢰에 대한 탐지 기술이 없는 군부대에만 제거 임무를 맡김으로써 부실한 지뢰 제거를 자초한 꼴이다. 현재 국내외에는 M14 대인지뢰에 대한 탐지 및 수거 전문 기술을 갖춘 지뢰 제거 전문 NGO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한국은 아마추어 공병에게만 지뢰 제거 작업을 맡겨두고 있다. 2008년 국방부 용역으로 발간된 〈미확인 지뢰지대 현황과 제거기간〉이라는 자료집에 따르면 현행 공병의 지뢰 제거 기술과 속도라면 민통선 이남 후방 지뢰지대 613만㎡는 총 8년, 민통선 내 지뢰지대 2억9370만㎡를 제거하는 데는 367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완벽한 제거가 아니라 유실 지뢰를 남긴 채….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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