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단 다 추스려보자. 지자체건, 공기업이건 대한민국이 진 부채가 대체 얼마인가? 정부가 공식 발표하는 부채는 407조원(201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97.4%)에 비해 무척 낮은 수준이다.

오건호(오):정부가 말하는 공식 부채는 과소 추계되었다. 국제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1986년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이다. IMF는 2001년 변화된 재정 상황을 반영해 ‘GFSM 2001’을 발표했는데 우리 정부는 새 지침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내가 IMF 새 기준을 ‘보수’적으로 적용해봤더니 2007년에 대략 540조원이 나오더라. 여기에 잠재적 정부 몫으로 간주되는 통화안정증권 150조원, 공기업 부채 146조원, 연금부채(미적립금) 600조원을 포함하면, 광의의 부채는 1400조원. GDP 대비 150%이다.

정창수(정):그 중간 버전으로 한국은행 자료가 있는데 약 650조원이다.

:나는 20·30대 미래 세대의 부담을 기준으로 계산해봤더니 1100조원이 잡히더라. 여기에 가계부채 700조원을 포함하니까 1800조원.  문제는 이들이 40·50대가 되었을 때(2035∼205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고 일자리 증가율이 0%에 근접한다는 점이다. 후세대에게 엄청난 고통을 전가하는 거다. 그래서 ‘폐허 세대’라는 표현도 썼지만.

ⓒ시사IN 백승기경제위기 이후 엄청난 재정투입으로 수출 대기업은 성장 혜택을 누렸지만 서민경제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위는 수출용 자동차를 선적하는 모습.
MB 정부 들어 ‘복지비’ 꺾였다

:부채 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아직은 작다고 안심할 수 없는 게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다. 2002∼2007년에 80%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OECD 국가들의 평균 증가율 7%보다 무려 11배 이상 높다. 유럽은 증가 속도가 정체되어 있는 데다, 사회복지로 인한 부담금이 이미 부채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복지를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서 심각한 거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복지비 증가는 필연이다.

:게다가 우리는 조세부담률(GDP 대비 21%)이 낮기 때문에 부채 문제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가 더 어려운 구조이다.

ⓒ시사IN 백승기“재정건전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지출 통제로 이어지고 복지 축소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오건호(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2000년대 중반부터 부채가 급격히 느는데, 따져보면 1998년 외환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투입한 공적자금이 한 바퀴 돌아 노무현 정부 때 와서 채무로 잡혔다. 채권기금으로 전환되어서. 그리고 이명박 정부 들어 가파르게 증가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고 지출을 늘린 데다 부자 감세가 겹친 때문이다. 정리하면 한국 자본주의 축적 체제가 갖는 위기 대응 비용이 채무를 증가시킨 구조적 요인이고, 부자 감세와 같은 정치적 요인이 채무를 증폭시켰다.

:나는 부동산 요인도 크다고 본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할 것 없이 공기업을 동원해 대규모 개발사업을 벌였는데 이때 예산에서 나간 토지보상비가 상당하다. 매년 40조원에서 60조원 정도.

:그런데 나는 국가 채무가 과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대로 계속 방만하게 가면 위험해지지만 현재 수준은 관리 가능하다고 본다.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두 축이 있는데, 진보나 야당 계열에서는 정권의 실정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깔려 있고, 보수 진영이나 여당 일부에서도 나라 망하게 생겼다고 하는데 전혀 맥락이 다르다. 보수 쪽이 노리는 정치적 효과를 경계해야 한다. 결국은 과도한 재정건전성 논의가 지출 통제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복지이기 때문에 진보 진영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거다.

사회:복지 얘기를 해보자. 정부는 역대 정부 최대 지출이라 하고 보수 쪽에서는 재정 적자의 원인으로 복지비 증가를 주장하는데 과연 그런가?

:2010년 복지예산이 81조원인데 공적연금·고용보험·보훈·주택 관련 예산이 다 포함된 돈이다. 보건복지부 예산만 하면 19조원이고 그중에서도 5조원은 건강보험 지원액이다. 그러면 14조원 남는다.

:정부가 말하는 ‘복지비 역대 최고’라는 주장은 정부 총지출 대비 복지 지출을 말하는 건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어떤 정권이 되더라도 역대 최고일 수밖에 없다. 복지에는 제도적 자연증가분이 있기 때문이다. 수혜자 처지에서 보면 GDP 대비로 보는 게 맞다. OECD 평균 20%인데 우리는 7%가 조금 안 된다(41쪽 그래프 참조). 최하위이다. 주목해야 할 건, GDP 대비로도 매년 조금씩은 증가해왔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 처음으로 꺾였다는 점이다. 대단히 중요한 변화인데 정부는 자꾸 총지출 대비로만 얘기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감춘다. 가령 내년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는 163만명으로 동결했다. 제도적 자연증가분만 반영하고 기초생활비를 현실화하거나 수급자 확대 요구는 외면했다는 얘기다.

ⓒ시사IN 백승기“선진국에 비해 부채 규모는 작지만 증가 속도는 세계 최고다. 게다가 복지는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다.”정창수(좋은예산센터 부소장)
:올해 지자체 복지 예산을 2조4000억원 늘렸다고 하지만 많은 게 아니다. 다른 부분은 더 많이 증가했다. 청사 신축 비용이나, 공무원 인건비 증가분 등 각종 행정·관리 비용이 3조4000억원 늘었다. 특히 나는 앞으로 유지관리비가 재정을 크게 갉아먹을 거라고 보는데 서울시만 해도 도로·건물 등 시설을 유지·관리하는 데 1년에 5000억원이 들어간다. 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5년 뒤면 1조원이 된다고 한다. 공공 부문에서 토목사업을 벌인 후과가 이렇게 큰 거다. 앞으로는 뭘 건설하는 걸 반대하는 투쟁뿐만 아니라 있는 걸 없애자는 투쟁도 같이 해야 한다.

:나는 신중히 평가해야 한다고 보는데 유지관리비가 많다고 비판하기 전에 유용성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

:수요 관리를 해야 한다는 거다. 도로를 2배 늘린다고 교통체증이 사라지나? 차만 더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통행세를 올리자는 얘기도 있지만, 서울시민이 다 반대할 거다(웃음).

:난 올릴 수 있다고 본다. 서울시에서 자가용 이용하는 사람이 23%이고, 77%는 대중교통 이용한다. 그래서 서울시는 적자를 보더라도 지하철을 운행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대구 같은 곳은 사정이 다르다. 최근 사정은 확인 못했는데 2006년 기준으로 이용률이 3%였다. 그러면 차라리 지하철을 묻고 다른 공공 교통수단에 쏟아부으면 엄청난 공공복지가 생겨날 거라는 거다. 지하철 노조는 반대하겠지만(웃음).

:2010년 전체 지방정부 지출 139조9000억원 중 사회복지비는 26조5000억원인 데 비해 국토 및 지역개발, 수송 및 교통예산이 29조3000억원에 달한다. 여전히 ‘콘크리트 비용’이 더 많다.

:서울시의 경우 순수한 건설비는 3조3000억원. 복지비는 4조원. 사실 복지비에도 건설비가 많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건설비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사회:경제 얘기를 해보겠다. 최근 참 아이러니한 게, 한쪽에서는 국가 부채로 적신호가 켜졌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올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7.6%로 ‘확장기’에 들어섰다는 긍정적 신호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경제위기 극복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가 돈을 제일 많이 썼다. 이걸 잘했다고 하는 건 착각이다”라고 경고했다. 빚으로 경제성장을 했다는 건데, 실제로 OECD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GDP 대비 미국에 이어 한국이 제일 많이 빚을 냈다. 지자체나 공기업을 포함하면 아마 미국보다 많을 거라는 얘기도 일리가 있어 보이는데 어떤가?

ⓒ시사IN 백승기“경기가 회복되면 빚을 갚으려고 해야 하는데 정부는 고성장 수혜는 누리면서 빚은 후세대에 전가하는 식이다.”홍헌호(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홍:2009년 정부가 30조원의 추경을 편성하면서 그중 20조원을 풀었을 때 추가 경제성장률은 2%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내가 보기에는 1% 정도다. 2000년대 후반 통계들을 보면 1년에 소비·투자·수출이라는 3대 수요가 해마다 100조원씩 늘어서 4∼5%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지난해 금융경제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환율효과가 GDP 대비 -0.1%(1981∼2008년)로 나타났다. 1981∼1997년에는 GDP 기여도가 0.23%였다. 무슨 말이냐면,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국민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율 효과가 마이너스라는 거다. 굉장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본다. 그런데 정부는 걸핏하면 외평채(외화자금의 수급 조절을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를 통해 환율방어에 나선다. 수출 대기업은 정반대 효과를 누렸다. 2009년(1∼9월) 환율상승 효과가 29조3000억원이었는데 그중에서 내수기업으로 돌아온 건 4조4000억원이고 나머지 24조9000억원은 소수 대기업에 집중되었다. 삼성 9조원, LG 5조1000억원, 현대 2조8000억원. 환율 효과의 3분의 2를 3대 그룹이 누렸다.

:정리하면, 외평채도 우리나라 부채를 늘리는데 톡톡히 기여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전체 국민경제에 골고루 나눠진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한 특정 집단에 지원되었다는 거다. 부채가 가지는 계급적 효과랄까?

:2008년 상반기에는 강만수 장관이 의도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썼지만 그해 하반기와 2009년에도 정부가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2008년 하반기 이후에는 한국 경제 신인도가 떨어져서 환율이 올라갔기 때문에 정부의 고환율 정책 탓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나는 오히려 최근의 정부 정책을 문제 삼고 싶은데 상반기 우리 경제는 투자가 20% 이상, 수출이 15% 이상 늘어서 7.6% 성장을 기록했는데 여전히 서민경제는 어렵다고 한다. 국가 부채도 늘고. 근본 원인은 감세정책에 있다.

:사실 경제성장은 말뿐이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써버린 것 아닌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최근 트위터에 쓴 말이 인상적이었다. 4대강 이포보 공사 현장에서 쓴 것인데 “3200억원 공사인데 현장인력이 총 30여 명이랍니다. 엄청난 고용창출입니다”(일동 웃음).

사회:정부가 최근 서민정책이라며 대기업·중소기업 상생론을 들고 나왔는데 어떻게 봐야 할까.

:위기관리다. 서민들이 죽겠다고 하는데 대기업은 사상 최대 실적 운운하는 상황이니 이런 상황을 방치했다가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높아질 테니까. 그런데 정작 하청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대기업 감세 철회는 안 하고 몽둥이 들고 다니면서 투자하라고 강요하는 건, 마치 강도가 100만원 빼앗고 나서 10만원은 차비하라고 던져주는 식이다. 2008년에도 전례가 있었다. 강만수 장관이 고환율 정책을 쓰고 난 뒤 물가가 오르자 대기업들에게 투자하라고 몽둥이 들었다.

:좋은 방법이 있다(웃음).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경제를 합리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경로 한 가지. 지금 주식 시장에서 국민연금이 5% 가까운 지분을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추구하다보니 주로 대기업 지분을 가지게 되었는데 삼성, 포스코, 효성, 현대차 등 주요 기업은 5%도 넘는다.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와 총수 일가가 가지고 있는 평균 자사 지분율 4.5%보다 국민연금 지분이 더 크다. 앉아서 배당금만 챙기지 말고 주주권을 행사하라는 거다. ‘중소기업과 대등한 거래를 해라, 채용을 늘려라, 의사 결정에 참여해라’ 이런 주문을 하라는 것이다. MB가 백날 상생 외쳐봤자 소용없다. 정책은 이사회에서 결정하니까. ‘안 해? 그러면 우리 돈 뺀다!’ 그러면 투자 안 하고 배기겠나? 진보 진영도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전략을 새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연금으로 주식투자 하지 말라고만 하기엔 한계가 있다. 발상을 전환해 ‘국민연금 대주주로서 개입하자’ 이렇게 나가야 한다.

ⓒ뉴시스경제위기 이후 엄청난 재정투입으로 수출 대기업은 성장 혜택을 누렸지만 서민경제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위는 시장 한편의 노점상.
:매년 기업에 혜택이 돌아간 2조원가량의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도 없애려고 하는 판국인데 투자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법인세 감면은 왜 그냥 놔두는지 모르겠다.

사회:부채 얘기를 하다보니 나 역시 30대 후반의 ‘미래 세대’로서 답답하고 화가 난다. 어떤 50대 중반의 학자는 자기 세대에 대해 산업화 혜택은 누렸지만 그걸 순환시키지 못하고 미래를 착취한 ‘악귀 세대’라며 자탄했는데.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출산율이다. 서울시 출산율은 급기야 1명(0.96명)이 안 된다. 세금 내는 사람 자체가 주는 거다. 저출산 관련 예산을 다 긁어모아도 2조3000억원. 전체 예산의 0.7%밖에 안 된다. 중기 재정운영계획에도 별 변화가 없다. 사실상 의지가 없는 셈이다. 정부와 보수 세력은 5년간 20조원(지자체 예산 포함)을 쏟아부었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항변하는데 그래도 GDP 대비 0.4%다. 프랑스는 좌우가 합의해 GDP 대비 3%를 20년간 지원했다.

:사실 경제위기가 심각하면 후세대에게 미안하지만 곶감 빼먹을 수 있다(웃음). 문제는 지나치게 많이 가져다 쓴 것, 그리고 후세대에게 도움이 안 되는 비생산적인 곳에 쓴 것이다. 그리고 경기가 회복되었으면 빚을 갚으려 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그럴 의도가 없는 것 같다. 빚은 후세대에게 전가하고 자신들은 흥청망청 고성장의 수혜를 누린다. 1990년대 일본이 경기를 회복시킨다면서 불필요한 토목·건설 쪽에 너무 많은 예산을 낭비했다. 그 결과는 저성장, 국가부채 급증으로 나타났다. 국가 부채는 국민의 미래 불안감을 부추겨 지갑을 닫는 사태를 초래했다. 그것은 악순환이 되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산을 대학교육 개혁과 직업 재교육, 사회안전망 구축에 주로 투입했다. 그것은 고성장과 미래 안정감을 가져왔다. 미래가 불안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지갑을 연다. 그럼 소비가 살아나고 경제가 성장하고 세수가 늘어난다. 그게 바로 북유럽식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처럼 대중으로부터 복지 요구가 거세게 올라온 적이 없다. 복지가 확보된다면 돈을 더 낼 용의도 있다는 여론이 중간계층을 중심으로 조금씩 형성되고 있는데, 한국의 반세기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화이다. 조세 저항의 효과는 사실 보수가 바라는 거다. 비슷한 의미에서, 기금 고갈 여론이 커져버리면 결국 이득을 보는 건 민간 생명보험회사다. 시민사회나 진보 진영은 과세 형평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 사회보험에 대한 과도한 불신이 결국 시장에 복지를 맡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박형숙 기자 다른기사 보기 ph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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