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왼쪽)는 부시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통화하면서 한·미 공조를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이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남북 관계의 속도 조절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대선 기간에 이명박 당선자의 대북 정책 기조를 가늠해볼 수 있었던 내용은 ‘MB 독트린’과 비핵·개방·3000의 두 가지 슬로건이었다. 외교 정책 전반을 다룬 MB 독트린은 △전략적 대북 개방 정책 △국익을 바탕으로 한 실리 외교 △전통적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한 한·미 동맹 △아시아 외교 확대 △국제사회 기여 확대 △에너지 외교 극대화 △상호 개방과 교류를 바탕으로 한 ‘문화 코리아’ 지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북 정책의 근간인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 정책을 추구할 경우 북한의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 슬로건에 기초할 때 기존 대북 정책과 차별화되는 사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미 공조 우선이며, 다른 하나는 경제 우선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 실용주의가 깔려 있다.

먼저 북한이 변해야 경제 지원한다?

한·미 공조 우선은 핵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일 뿐만 아니라 외교 정책의 근간을 이룰 전망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한·미 공조를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이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남북 관계의 속도 조절이 가능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존 대북 정책과는 분명히 차별화한다.

경제 우선은 주목해봐야 할 사안이다.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남북 관계를 활용한다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면에는 대차대조표에 따라 손익이 분명히 계산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북한을 지원하다보면 북한이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변해야 지원하고 협력한다는 점도 기존 대북 정책과 차별화되는 사항이다.

ⓒAP Photo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위)은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대북 정책은 쟁점이 되지를 못했다. 물론 다른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국민이 이명박 당선자에게 50%에 가까운 지지를 보낸 것은 원칙적으로 이명박 당선자의 정책을 지지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두 가지 사항도 힘을 받고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인수위 활동 과정에서 좀더 분명한 정책 방향이 설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에 몇 가지 제언을 해본다.

첫째, 현실에 기초한 정책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10년 동안의 대북 정책은 포용 정책, 평화번영 정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결국 햇볕정책으로 대변된다. 햇볕정책은 많은 비판도 있었지만 북한이 남한에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성과를 거뒀다. 이제 북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물론 평양에 가는 일을 그다지 특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문은 열렸지만 아직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으로 열린 문을 이용해 이제는 안으로 들어가서 북한이 변할 수 있도록 적극 견인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 이는 현실을 부정하고는 출발하기 어렵다. 북한이 문을 다시 닫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수위 활동 과정은 물론 내년 총선까지 정치 국면이 계속되는 것은 불가피하므로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에 기초한 정책 방향이 설정되기를 기대해본다. 한 가지만 상상해보자. 지난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 새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서울에 오는 방안을 추진해보는 것은 어떨까.

북한의 '일방적인 태도' 바뀌어야

둘째, 갑과 을이 정상적으로 자리 잡는 정책을 기대한다. 일반적으로 남북 관계, 특히 남북 경협은 갑과 을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돈을 받고도 대접을 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 있는데 바로 평양이다. 투자를 하는데도 ‘통이 작다’는 말을 하는 곳이 북한이다. 철도를 연결하는데 우리 측에서 모든 비용을 다 부담하고도 개통하자고 매달려야 하는 곳이 북한이다. 북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합리화는 이제 그만두었으면 한다.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다. 남북 관계도 지금 속도로는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북한 눈높이에 맞추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것 또한 절실하다. 북한은 남북 경협을 단일 창구에서 다룬다. 다른 부문에 있는 기업과 계약을 하더라도 반드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를 통해 거래해야 한다. 얼마나 모순인가. 중국 등 다른 나라에는 적용되지 않는 원칙이다. 개성공단의 3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이 협의 중이다. 처음 시작부터 3통 문제는 당연히 해결됐어야 했다. 북한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갑과 을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셋째, 통일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통일이라는 용어가 은근슬쩍 자취를 감췄다. 우리가 통일을 이야기하면 바로 흡수통일로 이어지며, 북한의 반발과 통일비용 부담이라는 문제에 부딪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매일 통일을 외친다. 남북한이 말하는 통일은 서로 다른 것인가? 비핵·개방·3000은 이런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통일비용은 남한 경제의 몇 퍼센트 수준까지 북한 경제를 끌어올리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남북간 경제력 격차는 100배 이상이 난다. 당연히 통일비용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분단비용이라는 개념도 나왔다. 분단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통일하는 비용보다 많이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용은 마찬가지이다. 북한도 통일을 외치니 북한이 스스로 통일비용을 분담할 수 있도록 하자. 북한 경제를 남한 경제의 몇 퍼센트 수준으로 올리는 상대개념이 아니라 북한 경제가 3000달러까지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는 절대개념으로 바꿔보자. 그리고 우리 경제는 통일비용이 부담되지 않도록 국민소득이 3만달러, 4만 달러에 이를 수 있도록 파이를 키워보자. 이 과정에서 다양한 통일 방안에 대한 논의가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연합뉴스북한 당국 처지에서는 주민들 삶의 터전인 시장(위)이 확대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남북 간에 CEPA(경제협력강화약정·Closer Economy Partner Arrangement. 2003년 중국과 홍콩 간에 체결된 일종의 FTA)을 제안한다. 전세계적으로 FTA의 열풍이 거세다. 남북 간에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남북 간에는 무관세 제도가 정착했다. 북한의 대외무역은 연간 30억 달러 정도이다. 남북한 교역은 15억 달러를 상회한다. 북한 대외 무역에서 남북 경협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제 일정한 제도 틀을 가지고 남북 관계를 미래 지향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상황에 따라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제도를 만들고 거기에 맞춰 우리 기업도 보호하고 북한도 제도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견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내부 변화를 정확히 인지한 정책을 기대해본다. 북한에는 현재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공존한다.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 붕괴와 함께 북한의 계획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주민은 나름으로 살아가기 위해 시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시장이 주민 삶의 터전이 되었다. 북한 당국 처지에서 시장의 확산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앙의 공급 능력을 강화하면서 시장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북한 내 시장 기능 더 강화되어야

대표 예가 경공업 원자재 지원 문제이다. 북한은 신발·비누·의류를 만들 수 있는 8000만 달러 상당의 원자재를 남한에 요구했다. 남한 측은 그 대가로 지하자원을 받기로 했다. 이 거래는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런데 북한 내부에서는 시장의 확산을 억제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경공업 원자재를 받아서 계획 기능의 일부를 회생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기초한 듯하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 등을 통해 유입될 자금을 염두에 두고 있기도 하다.

이 와중에 힘든 것은 북한 주민이다. 또한 주목해야 할 사항은 계획 기능·시장 기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사각지대에 놓인 북한 주민이다. 인도적 대북 지원은 바로 이 계층에 들어가야 한다. 북한 내 시장 기능은 더욱 강화되고, 북한은 시장으로부터 세금을 받아서 재정을 충당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대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 내부의 변화 흐름에 역행하는 데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는 정책을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은 대선 기간에 침묵을 유지했다. 예년과 비교해볼 때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마도 새로운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부터 분명한 원칙을 보일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다소 서먹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좀더 신뢰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자명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