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시간은 15분. 파란색 죄수복을 입은 초은 씨(19)가 1번 면회실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간 이창언 목사를 보자 얼굴이 환해졌다. “목사님 오랜만이에요. 정말 반가워요.” 크메르인 특유의 두툼한 콧방울, 까무잡잡한 피부색. 초은 씨의 고향은 캄보디아 중부의 캄퐁참이다. 한국에 온 지 2년. 20세연상의 남편은 초호은릉엥이라는 긴 본명 대신 그녀를 초은이라 불렀다. 지금은 ‘초은’ 대신 205번이라는 수감번호로 불린다.
 

ⓒ샐러드TV 제공남편 살해 혐의로 복역 중인 초은 씨(위)는 지난해 8월29일 태어난 딸 윤하를 22일 만에 캄보디아로 보냈다.

나이는 어려도 두 살배기 딸의 엄마다. 초은 씨는 딸 윤하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김 아무개씨를 살해한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녀가 한국에 온 지 9개월째 되던 지난해 1월30일, 남편 김씨와 초은 씨는 대구에 사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취한 김씨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자존심이 상한 김씨는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폭행을 시작했다. 아파트 경비실에서 시댁에 전화를 했지만 시어머니는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자라고 달랬다. 초은 씨가 도움을 청한 게 그날만은 아니었다. 남편이 초은 씨의 배를 가격했다. 뱃속에선 윤하가 3개월째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칼을 집었다. 또다시 옆구리를 차려는 남편에 맞섰다. 남편의 복부에 칼이 꽂혔다. 병원으로 이송된 지 4일 만에 김씨는 죽었다. 남편이 회복 중이라고 알던 초은 씨는 유치장에서 사망 소식을 들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결혼 안 해요”

청주여자교도소를 찾은 7월21일. 한낮의 기온은 35℃를 웃돌았다. 5명과 한방을 쓰는 초은 씨는 요즘 더위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지난 3월부터는 일을 시작했다. 도자기에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이다. 초은 씨의 왼쪽 가슴께, 흰색 이름표에 1공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침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1공장에서 스티커를 붙인다. 적은 돈이라도 벌어야, 출소한 뒤 캄보디아에 있는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점심시간은 낮 12시부터 1시. 30분 점심을 먹고 나면 나머지 30분간, 하루 중 유일하게 하늘을 볼 수 있다. 그 귀한 시간의 절반을 기자가 빌렸다. 검정 플라스틱테 안경을 낀 초은 씨의 빗어 넘긴 이마에 머리선을 따라 솜털이 도드라졌다. 그녀의 나이 이제 갓 열아홉이다.

지난 7월8일, 베트남 신부 탓티황옥 씨(20)가 한국에 온 지 8일 만에 정신병력을 가진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됐다. 그 일을 아느냐고 묻자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고개를 끄덕였다. “잘살려고 왔는데… 너무 안타까워요.” 어눌한 말씨보다 곧 울 듯 일그러진 얼굴 표정이 심경을 대신했다. 초은 씨는 손이 피범벅됐던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한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감옥에서 아이를 낳았다. 콧방울이 초은 씨를 닮았다. 남편 김씨의 얼굴도 읽혔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그녀는 시부모에게 용서를 빌며 정말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국에 와 살면서 힘든 일이 너무 많았다고도 했다. 수감생활도 마찬가지다. 가난이 일상인 캄퐁참에서 노점 일을 하는 홀어머니 곁에서 고되게 살았어도, 파란색 죄수복을 상상해본 적은 없다. “한국에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많은 거 알아요.” 재판을 겪으며 그녀를 도우려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맞선을 보기 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좋은 사람이 많은 한국에 놀러오고 싶지만 절대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시어머니·시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하다. 워낙 연세가 많은 분들이고, 사건이 있기 전까지 그녀를 예뻐했다.

경기도 신혼부부의 10%는 국제결혼

초은 씨를 두고 재판이 진행 중일 때도 그랬다. 시부모와 형은 합의를 원했다. 아들이, 동생이 죽었지만 그 아들과 동생의 아이를 갖고 있는 며느리였고 제수였다. 평소 남편 김씨와 각별했던 시누이는 초은 씨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맞섰다. 여성단체들이 구명운동을 펼쳤다. 김씨가 평소에도 술을 마시면 폭행을 저질렀고, 아이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는 정황을 호소하며 서명운동을 벌였다. 검사는 10년형을 주장했지만 초은 씨는 징역 4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변호를 맡은 박경로 변호사는 “통상 합의를 하더라도 7년인데 4년 선고를 받은 것은 여러 요소가 참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판을 맡기 전엔 상당히 복잡한 구조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들어가 보니 결국 소통의 문제였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고 나이 차이가 스무 살 이상 나서, 남편 입장에서 어린애를 대하듯 종속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초은 씨는 항소를 포기했고, 아기는 생후 22일 만에 어머니 우숙렝 씨 편에 안겨 캄보디아로 보냈다. 가끔 아이 사진을 받아본다. 한국으로 캄보디아 신부가 들어온 건 2000년, 춈스레이마우 씨가 처음이었다. 9년 뒤, 초은 씨는 캄보디아 신부로선 첫 수감자가 됐다.
 

ⓒ시사IN 조남진7월20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여성 단체들이 정신병력이 있는 남편에게 살해당한 탓티황옥 씨(20)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0년 5월 기준, 우리나라 결혼 이민자는 17만9854명이다. 이 중 귀화하지 않고 외국인 신분을 유지한 이가 12만5800명이다. 여성이 87%를 차지한다. 국적별로 중국이 49.1%(6만6635명)로 가장 많았고, 베트남 23.5%(3만1918명), 일본 7.5%(1만126명), 필리핀 5.0%(6802명) 등이 뒤를 이었다.

경기도에서는 최근 결혼하는 커플 10쌍 중 한 쌍이 다문화 가정이다. 경기 가족여성연구원이 7월5일 발표한 ‘시군 동향분석-가족편’에 따르면 2008년 경기도에서 결혼한 7만8000여 부부 중 국제결혼이 8123건으로 10.4%를 차지했다. 특히 2007년에 혼인한 농어촌 지역 남자의 40.0%인 3172명이 외국 여자와 결혼했다.

국제결혼이 늘면서 동시에 이혼·가정폭력 등 사회문제도 늘었다. 맞선을 통한 국제결혼이 3~4일 내 급하게 이뤄지는 데다, 언어장벽과 나이 차이를 극복하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가정폭력은 이주여성이 한국에 정착하는 1~3개월 내에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김은정 청주이주여성쉼터 소장은 “남자가 나이가 많더라도 초혼인 건 마찬가지다. 둘 다 결혼생활이 미숙한 상태다. 스무 살 이상 나이 차이에 언어까지 달라 소통이 안 된다. 한국 남편의 경우, 미숙하고 힘든 상황에 대응하는 가장 쉬운 방식으로 폭력을 택한다. 가부장적으로 길들이려는 과정이다”라고 해석한다.
 

ⓒ뉴시스지난 7월15일 한국을 방문한 탓티황옥 씨의 부모가 딸의 관을 붙들고 통곡하고 있다.

2008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발간한  백서 〈적응과 폭력 사이에서〉에 따르면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주여성 470명의 53.6%가 응답하지 않았고, 경험이 없다고 명확히 답한 경우는 24.2%에 그쳤다. 22.2%가 어떤 형태로든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건을 던지거나 부쉈다’(10.1%)가 가장 많았고, ‘모욕적이거나 비하하는 말로 괴롭혔다(9.8%)’ ‘손으로 때리거나 발로 찼다(6.1%) ‘신원보증을 해지하여 본국에 돌려보내겠다고 위협했다(5.8%)’ ‘때리겠다고 위협했다(5.2%)’ 순이었다. ‘원하지 않는 성행위 강요’와 ‘변태적 성행위 강요’도 3.8%를 차지했다.

“본국에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하는 남편들

국적이 불안정한 이주여성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말이다. 국제결혼중개업소에서도 여권을 여성 본인이 관리하지 못하도록 남편 쪽에 신신당부를 한다고 한다. ‘도망 방지’를 위해서다.

청주여자교도소 1번 면회실에서 초은 씨를 만나던 시각. 옆방 2번 면회실에서 몽골 출신 에르헴체첵 씨(33)가 같은 몽골인 바이갈 씨(37)를 만나고 있었다. 바이갈 씨도 6년여 지속된 결혼생활 동안 본국으로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속에 살았다. 2006년 3월 회식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던 그녀는 몸싸움 끝에 결국 남편을 살해했다. 동네 사람들이 신고해 경찰이 출동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바이갈 씨 부부는 운영하던 중국집이 잘 안 되면서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었다.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몽골로 돌려 보내겠다”라고 협박하던 남편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이 심했다. 손찌검도 동반됐다고 한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청주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상근 간사로 일하는 에르헴체첵 씨는 이날 바이갈 씨를 처음 만났다. 유리벽 하나를 두고 모처럼 모국어의 향연이 펼쳐졌다. 에르헴체첵 씨는 바이갈 씨 외모가 상상했던 것과 달라 놀랐다고 한다. 남편을 살해했다기에 골격이 크고 덩치가 좋은 여자를 상상했다. 그런데 체구가 몹시 작았다. 보자마자 대뜸 언니라고 부르는 말씨도 고왔다.

그녀는 지난 일을 다 잊고 싶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건 이후 자신과 관련된 뉴스를 보고 사실과 달라 속이 상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결혼 직후 낳아 올해 열 살이 된 그녀의 아이는 시댁에 맡겨져 있다. 바이갈 씨와 마찬가지로 결혼 이주여성인 에르헴체첵 씨는 15분의 면회 후 눈물을 쏟아냈다. “남편의 폭력에 맞서다 한순간에 저지른 일인데. 잘 살아보려고 왔던 건 나와 똑같다.”

바이갈 씨는 초은 씨와 한방을 쓰는 5명 중 한 명이다. 이주여성단체는 청주여자교도소에 이주여성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초은 씨도 1공장에서 외국인과 종종 마주친다고 했다. 법무부는 이주여성의 정확한 복역 현황 공개를 거부했다.

언어폭력과 성폭력·손찌검이 맞물려 일상화되면서 초은 씨와 바이갈 씨처럼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섞이는 사례도 발생한다. 아직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이들은 출소와 동시에 본국으로 강제추방당할 확률이 높다. 고은영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여성폭력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한국 여성과 결혼한 이주남성들도 폭행에 시달린다. 사는 형편에 따라 국적별로 갑과 을의 관계가 설정돼 있는 천박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문제 해결은 어렵다”라고 말했다.

청주여자교도소 면회실은 유리벽 사이로 정말 딱 15분간만 서로의 음성이 들렸다. 분 단위로 면회시간 종료를 알리는 숫자가 내려가는 걸 지켜보며, 마음이 절로 급박해졌다. 숫자가 0을 가리키는 순간. 초은 씨의 어색한 한국어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초면이었던 기자를 두고 다시 1공장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