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시사IN〉에는 면면히 이어져온 전통이 있다. 그것은 권력(자)의 분위기를 전혀 맞출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술자리에서 들으면 언제나 유쾌 통쾌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전통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 정치부장을 지냈던 김재일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토씨 하나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실어 ‘전설’이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답변은 거의 암호 수준이기 때문에 측근들은 인터뷰 내용이 기자의 각색을 거치지 않고 실리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따라서 당시 언론은 모두 알아서 말이 되게 고쳐주곤 했는데 그런 금기를 어긴 것이다. 그 뒤 김영삼 전 대통령 측이 우리 기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싸늘해졌음은 말할 나위 없다.

지금은 작가로 더 유명한 김훈씨는 편집국장 시절 김종필 전 총리와 인터뷰를 하다가 그가 구사한 고사성어 중 한 글자가 틀렸다고 지적해 기자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김종필 총재가 누군가. 그는 누구보다도 한문 원전에 밝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김훈 선배는 김 전 총리가 불쾌해하는데도 굽히지 않았는데, 나중에 김 전 총리는 원문을 찾아보고 자기가 틀렸다며 사과의 뜻을 전해오기도 했다.

편집장을 지낸 서명숙씨는 김대중 총재라면 누구나 하늘처럼 떠받들던 평민당의 출입 기자였을 때 김대중 총재가 얘기하는데 자꾸 졸아서 당직자들의 눈총을 맞기도 했다.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지루하게 몇 시간씩 얘기를 혼자 끌어가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서명숙씨는 한나라당의 절대 권력자였던 이회창 전 총재와 인터뷰하면서 끝내 “기자에게 창새기를 뽑아버리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느냐”라고 물어 주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기도 했다. 취재총괄팀장을 맡았던 이문재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인터뷰를 하면서 “장충동에 ‘라이방’을 끼고 자주 갔느냐”라고 물어 측근들을 아연 실색하게 했다. 그는 정몽준씨에게 정신병력이 있느냐고 직접 물어 대답을 들으려고 밤낮없이 이틀이나 쫓아다니기도 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하고 나서 온 나라는 지금 미래를 얘기하고 있다. 이 당선자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포부를 듣자면 절로 마음이 새 희망으로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입이 간질거려 견딜 수 없다. 왜 이 당선자는 광운대에 가서 BBK를 자기가 설립했다고 말했을까. 이 당선자는 이 의문에 대해 아직 직접 답하지 않았다. 전통이란 무섭다.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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