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중국은 올림픽 최다 ‘메달 밭’인 육상에서 고전이 예상된다. 110m 허들의 류샹 선수(왼쪽) 외에는 강자가 없다.
올림픽 때마다 금메달 숫자를 놓고 국가 순위를 정하는 것이 바른 일인지 논란이 일곤 한다.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공식적으로 나라 성적 순위를 발표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여전히 금메달 숫자가 국력이라고 믿는 듯하다. 베이징 올림픽 개최국 중국은 금메달 수에서 미국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할 꿈에 부풀어 있다.

2008년 새해를 앞두고 베이징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올림픽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표어가 ‘1등을 하자’다. 최근 인민일보와 CCTV 등 중국 신문·방송에서 “종합우승을 위해 노력하자(力爭金牌榜第一)”라거나 “중국인의 자존심을 지키자” 따위 구호를 동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에 종합우승 자리를 내주는 일은 굴욕이 될 것이라는 소리가 공공연히 나오면서 선수와 임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분위기다.

지난 6차례의 올림픽에서 중국이 거둔 성적은 일단 상승세라고 할 수 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5개의 금메달을 따 종합 11위를 해 체면을 구겼지만 그 외에는 매번 4위 이내의 성적을 거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3위에 오른 중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32개의 금메달을 획득, 금메달 36개의 미국을 단 4개 차로 바짝 추격했다. 1위 고지가 머지않았다.

중국 신문·방송의 독려와 달리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종합우승’을 목표로 걸지는 않는다. 대회 준비 초기에는 ‘최선을 다해 금메달 1위를’이라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8월8일 D-데이를 코앞에 둔 지금은 오히려 잠잠하다. 베이징 올림픽위원회나 국가체육총국은 목표 금메달 수가 몇 개인지 감춘다. 이를 두고 중국 특유의 속 감추기 전략이라는 말도 있다. 언론이나 체육계 관계자의 보도와 발언을 종합하면 중국의 이번 올림픽 목표 금메달 수는 최소 50개로 예상된다.

얼핏 들으면 금메달 50개는 너무 많다고 느낄 수도 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의 15개를 시작으로 바르셀로나·애틀랜타·시드니 올림픽에서 각각 16·16·28개의 금메달을 땄던 중국이다. 사상 최고 성적을 올린 아테네의 32개와 비교하더라도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현장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50개를 넘어설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선수나 관계자의 말에 넘쳐난다. 인민일보 왕다자오 기자는 “중국 스포츠는 전통적으로 홈그라운드에서 대단히 강하다. 더구나 지난 3년 동안 이른바 ‘밖으로 나가고 안으로 불러들인다(走出去 請進來)’는 정책을 통해 각 종목에서 경험을 많이 쌓았다. 외국의 유명 지도자들도 대거 불러왔다. 경기력이 2004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수준이다. 오히려 예상보다 더 놀라운 결과가 나와 참가국들의 비난을 듣지 않을까 우려된다”라며 금메달 50개 운운은 절대로 과장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금메달 싹쓸이’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금메달 따면 일반 근로자 10년치 연봉 받아

각 종목 하나를 따져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선 전통적 강세를 보이는 탁구의 경우 중국은 4개 분야 모두 우승을 자신한다. 남녀 공히 출전 선수 전원이 강력한 금메달리스트 후보이다. 중국 선수끼리 결승전을 치르는 바람에 눈총을 받을 거라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Reuters=Newsis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배드민턴(맨 왼쪽)·탁구(가운데)에 걸린 금메달을 싹쓸이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다이빙(오른쪽) 부문에서도 강세다.
세계 최강의 여자 역도 역시 4개 체급 모두에서 별 어려움 없이 금메달을 거머쥘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장미란이 출전하는 무제한급의 무솽솽 선수 정도만 위태로워 보이나, 이 역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린다면 반전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선수 저변이 넓어 2진 선수의 득세 가능성도 있다.

전 분야 싹쓸이 종목으로는 배드민턴도 꼽힌다. 5개 세부 종목 우승을 목표로 세웠다는 중국 배드민턴 선수단에는 남녀 단식 세계 랭킹 1위인 린단과 장닝이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남자 복식을 제외하고 나머지 종목을 휩쓸었으므로 전 종목 싹쓸이 목표는 무리한 것이 아니다. 이 종목에서는 악명 높은 중국의 홈 어드밴티지와 텃세도 상당히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테네 대회에서 금메달 6개를 차지한 다이빙 역시 중국의 전략 종목이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대표선수들이 아직 건재한 데다 어린 선수들의 수준이 대단히 높아 아테네 대회에서보다 성적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사격 역시 거론하지 않으면 서럽다. 아테네 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따낸 중국은 230만명에 이르는 인민해방군의 저력에다 일반 아마추어까지 선수층이 넓어 내부에서는 금메달 10개까지도 기대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체조 역시 주목해야 한다. 남자는 확실한 세계 정상이고 여자는 한때 세계를 호령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최소한 7~8개의 금메달을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외에 확실한 금메달 기대주인 110m 허들의 류샹 선수가 있고, 경기력이 무섭게 성장했다는 평가를 듣는 태권도, 유도 등에서도 최소한 2개 이상의 금메달이 유력하다.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딴 종목들이다.

중국의 ‘금메달 50개 프로젝트’를 한국 스포츠인도 한몫 거들고 있다. 여자 필드하키의 김창백 감독과 여자 양궁의 양창훈 전 감독은 각각 해당 종목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중국에 부임, 경기력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여자 필드하키는 라이벌 호주를 이기면 금메달이 가능할 것이다. 여자 양궁은 한국이 만만치 않지만 나름 선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중국이 약세인 종목도 많다. 박태환 덕분에 한국인의 관심을 모은 수영 종목에는 유망주가 없다. 류샹을 빼면 육상에서도 고전이 예상된다. 여자 배구와 여자 축구를 제외한 구기 종목은 참가하는 데만 의의를 둬야 한다. 경기력이 다른 참가국에 비해 워낙 떨어져 메달권에만 들어가도 다행이다.

중국 정부는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20만 위안(약 2400만원)의 포상금을 준다. 은메달과 동메달 수상자에는 각각 15만 위안(약 1800만원), 10만 위안(약 1200만원)이 따른다. 동메달만 따도 일반 근로자 연봉의 5~6년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손에 쥘 수 있다. 여기에 중국 체육총국은 1년 전부터 전지훈련, 국제 대회 참가 등을 통해 경기력 향상을 이끌고 있다. 대다수 대표선수들을 1년에 서너 차례 윈난성 쿤밍 고지의 선수촌에 보내 훈련을 시키고 정신력을 높이고 있다.

만약 중국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50개를 얻으면 중국인은 이를 국력 신장의 표상으로 삼을 듯하다. 스포츠 대국 중국의 시대가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활짝 열릴 것 같다.

기자명 베이징=홍순도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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