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초등학교 7개교와 중학교 4개교를 1개교로 통폐합해야 하는 도시, 시립종합병원과 시립도서관을 폐쇄하고 각종 공공서비스 이용료를 50% 더 부담해야 하는 도시, 공무원 수를 60% 줄이고 급여도 50~70% 삭감해야 하는 도시. 이것이 바로 일본 지자체 파산의 대명사로 알려진 홋카이도 유바리 시의 최근 모습이다.

유바리 시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크게 다섯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관광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관광 투자. 둘째, 관광 수요를 무시한 고집스러운 시설 유지. 셋째, 수익성 없는 민간 관광시설을 지방비로 인수한 무모함. 넷째, 분식회계를 통한 부적절한 재무 처리. 다섯째, 시의회의 집행부 감시·감독 기능 결여와 의원의 전문성 부족.

중앙정부의 책임도 크다. 지나치게 느슨한 재정건전성 감독체계가 이런 비극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바리 시는 정부의 느슨한 감독체계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악화되는 재정 상황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지방공기업 부문에 부채를 전가해 숨기는 ‘꼼수’를 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파산으로부터 안전한가. 최근 경기도 성남시가 5200억원 지불유예(모라토리엄) 선언을 한 것을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들은 지자체 금고 동향을 살피느라 부산하고 전문가들도 잇달아 경고성 발언을 내놓는다.

ⓒ연합뉴스국제판타스틱 영화제가 열리는 유바리 시 시민회관 모습. 무리한 관광 투자도 파산의 한 원인이 되었다.
‘유바리 시의 비극’ 한국에서 재현되나

반면 정부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반응이다. 지표상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현재의 재정건전성 감독체계가 유바리 시 파산을 초래한 일본 체계만큼 느슨하다는 점, 또 우리나라 지자체들의 재정력이 파산이 속출하는 일본에 비해 더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신뢰도 낮은 지표 몇 개에 의지해 안이한 태도를 보일 경우, 유바리 시의 비극은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행정안전부가 활용하는 몇 개 지표는 결코 신뢰도가 높은 것이 아니다. 상당수 지자체장이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치적을 부풀리기 위해 지방공기업 부채를 늘리는 방식으로 불필요한 토목·전시행정을 남발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행정안전부가 활용하는 지표들은 실질적인 지자체 부채인 지방공기업 부채 상황을 전혀 반영해내지 못한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의 재정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필자가 최근 감사원과 행정안전부 자료를 검토해본 결과 일본의 유바리 시보다 재정력지수가 낮은 기초자치단체가 무려 4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2007년 〈일본의 지방재정 개혁 및 재정분석·평가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일본 유바리 시의 재정력지수가 0.23이라고 소개했다. 또 행정안전부는 자치구를 제외한 우리나라 160개 기초자치단체 중 재정력지수가 0.23 미만인 지자체가 무려 76개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상태를 나타내는 재정력지수는 지자체 소속 공무원 인건비 대비 지방세의 백분율로 표시되는 지수인데, 1보다 크면 자체 세입으로 지자체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재정력지수 하나만으로 지자체 재정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기관의 자료는 우리나라 재정건전성 평가 기준이 일본보다 훨씬 더 엄격해야 함을 시사한다. 지금의 행정안전부처럼 단순히 양국의 ‘채무상환비율’이나 ‘채무잔액지수’만 비교하며 아직은 괜찮다고 자위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유바리 시 파산 이후 기존 재정 분석 지표로는 재정건전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2007년 지방재정건전화법을 제정해 재정규율을 강화했다. 이 법은 모든 지자체가 재정건전성을 판단하는 실질적인 4대 지표(실질적자비율·연결실질적자비율·실질공채비비율·장래부담비율)를 의무적으로 작성해 총무성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또 이 법은 지자체가 이들 4대 지표 중 어느 하나라도 조기 재정건전화 기준보다 악화될 때 ‘재정건전화 단체’로 지정해 재정건전화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해당 지자체가 조기  재정건전화에 실패해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재정재생 단체’로 지정해 재정재생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지자체가 재정재생 단체로 지정되면 지방채 발행은 물론이고 일반공공사업체 채권 발행에도 제한 조처가 취해진다. 전문가들은 이 단계를 ‘실질적인 파산 단계’라 규정한다. 현재 일본에서 파산 상태에 놓인 지자체는 유바리 시를 포함해 모두 40개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자체·공기업 부채 급증해 ‘불안’

우리나라 지자체의 부채는 어느 정도 될까. 행정안전부는 2009년 지방채 잔액이 25조5531억원, 지방공기업 부채는 57조7879억원이라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런 자료를 근거로 우리나라 지자체의 재정이 일본에 비해 양호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최근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부채에 주목한다. 2008년과 2009년 사이 지방채 잔액은 무려 32.9%나 증가했고 공기업 부채도 심상치 않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공기업 부채는 2006년 50.2% 증가한 데 이어 2007년 15.5%, 2008년 14.6%, 2009년 22.1% 증가했다. 정부의 별도 대책이 없는 한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필자는 일차적으로 우리나라 지자체의 재정력이 일본보다 훨씬 더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해 재정건전성 규율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또 유바리 시와 같은 비극을 막으려면 일반회계와 특별회계 이외에 공기업 부채를 감시 대상에 포함해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또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되는 낭비성 토목·전시 행정에 대한 감시도 철저하게 해나가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호화 청사에 문제를 제기하는데도 지자체장들이 이 사업에 몰두하는 것은 이들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는 증거다. 정부는 이런 지자체의 지방교부금을 대폭 삭감해서 단체장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지자체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기자명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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