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 사찰,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 비호,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개입, 선진국민연대의 인사 전횡…. ‘영포 라인(영일·포항 인맥)’을 둘러싼 내밀한 얘기들이 양파 껍질처럼 벗겨지자 청와대 주변에서도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권력의 정점에 포항 라인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힘이 쏠리는 곳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대구의 한 국회의원은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문제가 터지고야 말았다. 대통령의 가장 큰 정치적 기반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친이계 정두언 의원은 “2년 전부터 문제 제기한 내용인데 바로잡지 못했던 게 후회된다”라고 말했다.
 

ⓒ뉴시스7월13일 귀국한 이상득 의원(가운데)은 “영포회를 범죄 집단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말했다.

검찰은 신속히 특별수사팀(오정돈 형사1부장)을 꾸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수사에 나섰다. 파문이 일던 7월6일 영포 라인의 대부 격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했다. 리비아 국가원수도 만나지 못하는 이상한 특사였다.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정인철 전 기획관리비서관 등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측근이 속속 옷을 벗었다. 몸통으로 지목받는 박영준 국무차장이 스스로 물러서는 선에서 마무리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었다.

영포 라인의 대반격 시작되나

하지만 영포 라인의 반격은 곧바로 시작됐다. 7월13일 리비아에서 귀국한 이상득 의원은 “영포회가 무슨 범죄 집단처럼 취급받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영포회와 선진국민연대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이 의원은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혹의 핵’ 박영준 국무차장도 “모두 사실무근이다. 물러나는 일은 없다”라며 완강히 버티는 모양새다. 2008년 6월 박 차장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권력 사유화’의 장본인으로 지목하자 이틀 만에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에서 물러났었다. 

박영준 차장은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메리어트 호텔에서 공기업 인사에 관여한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박 차장이 일군 선진국민연대 출신인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은 “선진국민연대가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외에도 인사에 개입한 건이 100건은 더 있다”라고 발언한 정두언 의원을 비난하고 나섰다.

영포 라인이 정면돌파를 선언한 셈이다. 정권 후반부로 접어든 이상 지금 물러나면 영포 라인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이 ‘영포 라인 버티기’의 이유로 꼽혔다.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한 사업가는 “대통령은 자신의 최대 기반인 그쪽(영포 라인) 사람들을 포기할 수 없다. 공동운명체와도 같다”라고 말했다.

‘권력 사유화’ 논란과 친이계의 격돌 속에서도 이상득-박영준 라인은 힘을 보였다. 이번 청와대 개편에서 대통령실장에 임명된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이상득 의원의 정치적 양자로 불릴 만큼 가까운 사람이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친이계 의원은 “임태희 장관은 이상득 의원의 양아들이라는 말이 걸맞을 정도로 복심 중의 복심이다. 둘이 지원 유세도 함께 다닌다. 국회 회의장에서 이상득 의원과 임태희 의원이 귀엣말을 주고받는 장면은 매우 익숙한 장면이다”라고 말했다. 김두우 기획관리실장은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이상득 라인으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안상수 의원도 이상득 의원 쪽 사람이다.
 

ⓒ뉴시스영포 라인의 핵으로 지목되는 박영준 국무조정실 국무차장.

박인주 사회통합수석은 경북 칠곡·고려대 출신으로 박영준 차장과 고향과 학맥이 겹친다. 홍보수석에 임명된 홍상표 YTN 상무도 박 차장과 가까운 사이다. 전 YTN 고위 관계자는 “홍 상무가 보도국장 시절 박영준 차장과 절친한 윤 아무개 기자를 정치부장에 앉히려고 여러 차례 무리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YTN의 한 관계자는 “윤 아무개 정치부장은 박영준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선진국민연대 행사마다 카메라 기자를 내보내 노조와 마찰을 빚었다”라고 말했다.

‘TKK의 적자’ 서울지검장 유임 이유는?

청와대 인사보다 더 주목할 부분이 검찰 인사다. 7월9일 검찰 수뇌부 인사가 있었다. 법무부는 이례적으로 검찰 요직 ‘빅4’ 자리를 유임시켰다. ‘스폰서 검사’ 파문 등으로 흔들리는 검찰 조직의 안정에 중점을 두었다고 했다. 눈여겨볼 점은 ‘TK 황태자’로 차기 검찰총장 1순위로 꼽히는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성’이었다. 한 검찰 고위 인사는 “이귀남 법무부 장관과 김준규 검찰총장이 들고 간 인사안을 청와대에서 하나도 반영하지 않았다. 인사를 하지 말라는 소리는 나가라는 소리 아니냐”라고 말했다. 다른 검찰 간부는 “노 지검장은 경북 상주 출신 ‘TKK(대구·경북·고려대)’의 적자로 영포 라인과 특별히 가까운 관계다. 총장보다 힘이 더 센 자기 사람을 수사 선상에 두어 앞으로 수사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비선 라인과 선진국민연대 수사는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첫 번째 수사다. 믿을 만한 사람을 포진시키는 것은 정권을 잡은 이상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청와대 조직 개편에서 민정수석 산하였던 치안비서관을 정무수석 밑으로 옮긴 점도 눈에 띈다. 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권력기관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실에서 경찰을 빼낸 것은 90% 검찰을 압박하는 카드다”라고 말했다.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속도는 더디다. 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이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종익씨가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몰랐고, 국민은행에 김씨의 사직을 강요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민간인 불법사찰 자료를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삭제한 사실을 확인했다. 증거인멸죄를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수사팀 한 관계자는 “전문가의 손이 컴퓨터 저장물을 훼손한 흔적이 보인다. 실세 수사라 눈치가 보이고 증거를 들이밀어도 부인하는 경우가 있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실세 중에 실세에 대한 수사다. 확실히 잡지 않으면 수사팀 자신이 죽는다는 게 이 바닥 생리다. 대충대충 넘어갈 수만은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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