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창립자 존 버드 씨(64·사진)는 영국 런던 빈민가에서 태어나 거리와 감옥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는 30대 후반 한 후원자의 도움으로 뒤늦게 대학에 진학한 뒤 자신을 동등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가 예전의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빅이슈〉를 창간하게 된 것은 ‘더 바디샵’ 창립자인 아니타 로딕·고든 로딕 부부의 재정적 도움이 컸다. 존 버드는 경찰에 쫓겨 영국 에든버러로 숨어든 스물한 살 때 히피족 생활을 하던 고든 로딕을 처음 만나 친구가 됐다. 그로부터 20년 뒤, 존 버드는 텔레비전에서 세계적인 기업의 CEO가 된 그를 다시 보고 당장 찾아갔다. 당시 잡지 산업에 매료돼 있던 존 버드와 사회환원 사업을 고민하던 고든 부부의 뜻이 합쳐져 1991년 〈빅이슈〉가 탄생했다.

ⓒ시사IN 윤무영
잡지 이름을 왜 ‘빅이슈’라고 정했나? ‘거리 신문’이라든가 ‘빈민가 뉴스’와 같은 이름으로 지을 수도 있었다. 미국 뉴욕에 그런 이름의, 노숙인 문제와 같은 어두운 사회 이슈로 가득 찬 잡지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잘 팔리다가 얼마 후 완전히 망해버렸다. 독자에게 억지로 ‘노숙자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만들면 안 된다. 노숙인은 자랑스럽게 팔고, 독자는 기쁘게 사서 읽을 수 있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기에 ‘빅이슈’로 이름을 정했다. 〈빅이슈〉의 성공을 확신했을 때는 언제인가? 창간한 지 1년쯤 뒤, 거리에서 〈빅이슈〉를 팔던 노숙인에게 경찰이 커피와 도넛을 건네는 것을 봤을 때다. 영국에서는 경찰과 노숙인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 경찰에게 내 신분을 밝혔더니 “당신이 한 일 덕분에 이 사람이 사회 속으로 들어오게 됐다”라며 고마워하더라.

곧 거리에서 ‘빅판’을 만날 서울 시민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나? 중요한 건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가 아니라, 노숙인과 대중이 만난다는 것이다. 빅판들은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시민들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다. 기회만 있으면 잘살 수 있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다보면 서울 시민들도 어느새 그에게 신뢰를 느끼는 ‘고객’이 돼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존 버드 씨가 7월6일 〈시사IN〉과 한 인터뷰와, 7월6일 공개 강연회, 7일 ‘함께 일하는 재단’(이사장 송월주) 주최 ‘사회적 기업 열린포럼’에서 밝힌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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