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 의원(민주당 비례대표) 사무실에는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실에서나 볼 만한 초계함 모형이 있다. 탁자 유리 아래에는 지역 연고도 없는 백령도 일대 해도가 깔려 있다. 모두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된 물건이다. 국회 천안함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합류한 뒤로, 천안함 문제는 최 의원의 ‘본업’이 됐다. MBC에서 기자·노조위원장·사장을 모두 거친 언론 전문 의원이 “하반기에는 국방위로 갔어야 했나”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요즘 최 의원은 천안함에 ‘꽂혀’ 있다.

아무리 봐도 국회의원보다는 기자 같다. 2002년 2차 연평해전을 취재하면서 군의 거짓 보고를 파헤쳤던 경험, 2005년 MBC 사장으로 있으면서 황우석 파동을 겪었던 경험이 그를 천안함 침몰 의혹에 꽂히게 만들었다. ‘기자의 직감’이 빛을 발할까, ‘얘기 안 되는’ 아이템을 잘못 문 것일까.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 때 언급한 ‘400쪽짜리 보고서’, 진짜 없나? 없다는 것 아닌가. 특위에서 국방부에 제출 요구를 했더니 “없다. 클린턴한테 물어봐라”고 해놓고서는 부랴부랴 251쪽짜리 보고서를 만들어 미국 대사관에 전달했다더라. 그러면 클린턴 장관은 뭘 봤다는 건가? 모르겠다. 그래서 뭘 봤다는 건지 공개질의서도 보냈다.

특위 위원이 갖고 있는 정보란 게 어떤 건가? 일반인이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절단면 현장검증을 가기는 했는데, 사진도 못 찍고 분석용 시료 채취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게 해서 눈으로만 봤다. 감사원 감사 결과 상세 보고서도 받기는 했다. 그런데 여기는 새로운 팩트가 있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합참의장이 어디 가서 잤다던가 하는 내용이 상세하게 더해진 것이다. 진상 규명에는 도움이 안 된다. 감사원 감사는 사건의 원인이 북한 어뢰라고 단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져 오히려 진상 규명에는 혼선을 빚었다. 어쨌거나 인공적인 폭발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 아닌가? 합조단은 있었다고 주장하는 거고, 우리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거고. 핵심 쟁점은 어떤 것들인가? 합조단이 핵심 증거로 내어놓았는데 어뢰 폭발로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몇 있다. 대표적인 게 파란색 ‘1번’ 글씨다. 이건 살인 현장에서 칼이 발견됐는데 거기서 내 지문이 발견된 게 아니고 ‘최문순’이라고 잉크로 써 있는 꼴이다. 그게 무슨 증거가 되나? 잉크는 150℃가 비등점(끓는점)인데 어뢰 폭발이라면 이 온도가 훌쩍 넘어 녹아 없어져야 한다. 합조단이 내놓은 흡착물질 성분분석 결과도 오히려 폭발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기둥 문제도 있다. 군이 처음에는 없었다고 하다가 번복한 것인데, 번복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더라.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정황으로, 어뢰라면 해일이 일어 해안까지 해일과 흙탕물이 덮치고 물고기 떼죽음이 일어나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

ⓒ시사IN 윤무영최문순 의원이 천안함 모형을 들고 침몰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
흡착물질 성분분석 결과는 ‘바다에서 건진 그 어뢰’가 일으킨 ‘폭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세 요소를 연결하는 핵심 증거로 합조단이 제시한 것 아닌가? 복잡하게 하면 어려운데 쉽게 얘기하면 이런 거다. 합조단은 천안함, 어뢰, 그리고 합조단 모의실험 때 폭발 결과로 나온 가루(흡착물질) 세 개를 채취해서 분석했다. 이게 다 같으면 그 어뢰로 폭발이 있었다는 게 증명된다. 그런데 합조단 분석 결과에서도, 천안함과 어뢰에서 나온 가루는 성분이 같은데 모의실험 결과에서 나온 가루는 성분이 다르다. 앞의 두 개에는 알루미늄이 없고 뒤의 폭발실험 결과에서만 알루미늄이 나온다. 알루미늄은 어뢰에 반드시 들어가는 성분으로, 안 나오면 안 되는데 천안함과 건져올린 어뢰에서는 안 나왔다는 거다. 나온 거라고는 폭발과 상관없는 모래와 소금뿐이다(합조단 발표를 보면, ‘에너지 분광기 분석’에서는 셋 모두 알루미늄이 검출된 반면 ‘엑스선 회절기 분석’에서는 셋 중 모의실험 결과에서만 알루미늄이 나온다. 합조단은, 어뢰 폭발 수준의 큰 폭발이 있을 경우 알루미늄이 전량 산화되는데, 이는 ‘에너지 분광기 분석’에는 잡히지만 ‘엑스선 회절기 분석’에는 잡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물리학자인 버지니아 대학 이승헌 교수는 이 차이에 대한 합조단의 설명과 상반되는 실험 결과를 발표해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 편집자 주).

어뢰가 아니라면 왜 침몰했다는 건가?

그 단계까지 가기에는 근거가 없다. ‘어뢰에 의한 폭발’이라는 것은 아직 확정된 진실이라 할 만큼 검증을 견뎌내기 이전 단계라는 것이다. 다만 현장에 가봤더니 수심이 매우 깊어서 좌초할 데가 별로 없더라. 천안함의 항적을 완전히 속인 것이 아니라면 좌초는 가능성이 낮다. 의심이 가는 정황은 있다. 함미하고 함수의 가라앉는 속도 차이를 보면, 함미는 3분23초 만에 가라앉은 반면 함수는 1시간 이상 떠서 표류를 했다. 열상감지장비(TOD) 동영상을 보면 함미는 가라앉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다. 분리 이전에 이미 물이 차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이 큰 구조물이 3분 만에 가라앉을 수가 없다. 어뢰로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난 것이라면 함미가 공간이 더 많아서 오히려 오래 떠 있는 게 정상이다. 만약 조작이라면 곧 제대할 사병과 수백명의 가족을 모두 입막음한다는 건데, 그것은 너무 무리한 가정 아닌가? 그것 때문에 설마 사실이 아니겠냐고 믿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솔직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여러 설을 검토 중이지만, 현재까지는 ‘합조단 발표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확립된 것은 아니며 해소되지 않은 반론들이 존재한다’까지 말하고 있는 거다. 엄밀한 표현으로 ‘아직 사실로 확립되지 않았다’는 건데, 자꾸 언론에서는 그게 아니라면 뭐냐는 식으로 양자택일을 요구하니까. 2002년 2차 연평해전 때 기자로 일했다. 사회팀 데스크였다. 그때도 교전 발생시간을 군이 속였다. 처음에 오전 9시인가로 군이 발표를 했는데 취재를 해보니 교전은 새벽 6시에 시작했더라. 6시부터 꽃게잡이 조업을 풀어주기로 했는데, 꽃게잡이 배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50척이 일제히 몰려 올라간 거다. 참수리호는 이걸 잡으러 쫓아가고. 이렇게 되니까 저쪽에서도 맞대응을 하다가 충돌했던 거다. 그런데 북한이 일방적으로 먼저 때렸다는 시나리오가 나와야 하니까 발생시간을 속인 거지. 그때는 이 사실이 어떻게 취재가 됐냐면, 병원에 가니까 병사들이 얘기를 해줬다. 부상병들 취재가 그때는 자유로웠던 반면 지금은 생존자 접촉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다. 지금이 2002년 연평해전 때랑 비슷한 느낌이 든다. 사건발생 시간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서부터 그랬다. 시간을 속이면 장소도 속이고 원인도 속여지는 거다. 시간이 왔다 갔다 한다는 건 사건이 재구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황우석 사건 때는 MBC 사장이었다. 나는 천안함 사건을 제2의 황우석 사태라 본다. 설사 이것이 북한 어뢰 공격이라고 밝혀지더라도 정부의 대응 탓에 이미 내부의 상처가 더 큰 상황이다. 그때는 황 박사가 난데없이 수염을 기르고 입원해 누워 있는 사진이 나오면서 ‘아 이거 이상하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는데, 이번에는 ‘1번’이 그 역할을 했다. 결정적 증거라기에 뭔가 하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순 허탈한 거지. 얼마나 길게 갈 문제인가? 정권 말기까지 갈지 모른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