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지만 이겼다. 북한과 브라질 경기는 스포츠가 줄 수 있는 모든 감동을 안겨줬다. 양 팀 선수들은 페어플레이를 선보였다. 경기 내내 경고는 한 장에 그쳤다. 특히 경기 시작 전에 텔레비전 화면에 잡힌 ‘인민 루니’ 정대세 선수(27)의 눈물은 한반도를 적셨다. 그 순간 정대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사IN은 일본에 있는 정대세의 형 이세씨를 전화 인터뷰 했다. 이세씨도 현재 축구 선수이다. 정이세 선수는 지난 2008년 국내 내셔널리그 험멜노원에서 골키퍼로 뛰었다. 입단 당시 동생과 함께 뛰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주전 선발이 여의치 않았고 계약이 만료되어 지난 2월 일본으로 돌아갔다. 현재는 FC기후에서 연습생으로 뛰고 있다. 

ⓒ뉴시스브라질 전에서 북한 국가가 울리는 동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인민 루니' 정대세.
정이세 선수(28)는 6월16일 새벽에 열린 브라질과 북한의 경기를 소속팀 기후 FC 경기장 근처의 바에서 누나, 친구와 함께 봤다. 아버지 정길부씨는 나고야 집에서 지켜봤다. 남아공에 가 있는 어머니 리정금씨는 현장에서 직접 아들의 경기를 관람했다.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질 때 입술을 꽉 깨물며 흐느끼는 동생을 보며 이세씨는 그럴 줄 알았다고 한다. 가족들 모두 정대세 선수가 울 거라고 예상했단다. 이세씨는 “(눈물엔) 여러 가지가 한데 담겨있을 것이다. 어렵게 북한 대표로 뛰게 된 것도, 선수로서 월드컵 무대에 선 감격 등 모든 게 다 들어 있다”라고 말했다.  

정대세·정이세 선수 가족사는 아픈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두 사람은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3세다. 할아버지 정삼출씨는 경북 청송군 현서면에서 태어나 경북 의성군 윤곡리에서 자랐고, 1930년대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버지 정길부씨는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지금까지 한국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 리정금씨의 국적은 북한이다. 

ⓒ뉴시스정대세의 형 이세씨. 그는 축구 선수로  2008년 국내에서 잠시 뛰기도 했다.
형제는 한국이나 북한 국적을 선택할 수 있었다. 정대세는 형인 이세씨와 누나와 함께 아버지를 따라 한국인으로 국적을 등록했다. 그러나 정대세는 형, 누나와 함께 학교는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녔다. 재일교포 3세이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조국인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에 나오듯 정대세도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북한 국가 대표로 뛰고 싶었다. 북한은 일본 조선대학교 재학 당시 축구에 발굴의 소질을 발휘하는 그에게 국가대표를 제의했다. 이 제의를 받은 그는 국적을 바꾸려했다. 그러나 일본법상 외국인등록증 국적을 한국에서 북한으로 바꾸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정대세는 일본조선대학교를 졸업한 뒤 2006년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했다. 

일본 프로구단에 입단했지만 그는 또 다른 ‘조국’인 북한의 국가대표가 되는 꿈을 접을 수 없었다. 그는 재일조선인축구협회의 도움으로 국제축구연맹(FIFA)에 한국 국적이지만 북한 국가대표로 뛸 수 있게 해달라며 가족사와 한반도 분단 상황을 담은 청원을 했다. 북한도 ‘통크게’ 국적과 관계없이 정대세에게 여권을 발급하고 국가대표로 발탁했다. 그렇게 재일교포 3세 정대세의 꿈은 이뤄졌다. 꿈을 이룬 정대세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형 정이세뿐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누나는 정대세의 간절한 꿈을 알았기에 눈물을 흘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세씨는 동생이 북한의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기까지 험난했던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이세씨는 “나는 떨어져 있어서 잘 몰랐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대세가 이뤄지지 않을 국가 대표 꿈을 꾸는 게 안타까워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대세는 보란 듯이 꿈을 이뤘고, 어머니는 남아공까지 가서 아들을 응원하고 있다. 일본에 남아있는 가족들 모두 한 마음이다. 

정이세 선수는 북한과 한국을 똑같이 응원한다. 6월12일 열렸던 한국과 그리스 경기는 훈련 시간과 겹쳐서 제 시간에 못 봤지만 녹화해두고 보았다. 정 선수는 한국의 16강 진출을 확신했다. “너무 잘 하더라.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가 만만치 않은 상대긴 하지만 그리스전 전력으로는 16강 진출이 충분히 가능하다.” 

ⓒ뉴시스정대세는 브라질전과 경기에서 비록 골은 넣지 못했지만 과감한 돌파를 선보였다.
그는 한국도 응원하지만 동생이 있는 북한이 특히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달 전, 월드컵에 출전을 앞두고 나고야 집에 들렀던 정대세 선수에게 이세씨는 “골을 넣고 돌아오라”라고 말했다. 정 선수는 자신감 있게 “알겠다”라고 답했다. 두 형제 모두 축구를 하지만 쑥스러워 서로 얘길 많이 하진 않지만 이심전심, 마음으로 통한다. 정이세 선수는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열심히 뛴 동생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세씨는 “출전 팀 중 북한이 쉽게 상대할 수 있는 팀은 하나도 없다. 실력차가 많이 나는데 동생도 그렇고 북한 선수들이 좋은 게임을 했다. 2대1까지 한 걸 보면서 북한이 어쩌면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꼭 한국을 찾고 싶다든 정 선수는 동생 정대세 선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골, 무조건 골을 넣으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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