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에세이스트)“아자 아자 파이팅!” 이 구호는 어깨의 짐이 아무리 버거워도 끽소리 말고 분발하라는 주문이다. 국민 개개인이 죽을 둥 살 둥 버티는 어려움에도 공적 논의는 쏙 빼고 노력이나 자질 따위 사적 영역으로 제한해버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애틀랜타를 탈출해 안락한 휴식을 기대하며 타라 농장으로 돌아간 스칼렛 오하라는 뜻밖에도 어머니의 죽음과, 어쩌면 어머니의 죽음보다도 더 끔찍할지도 모르는 노동이 지옥의 문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목화 따기 등 농장일이 그녀에게 그토록 끔찍했던 까닭은 일 자체의 강도보다, 도대체 이 모든 일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깨가 벗겨지도록 짐을 나르고 뙤약볕 아래 뼈 빠지게 목화를 따면서, 그녀는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좋은 시절 흑인들이 일하며 부르던 구슬픈 노래를 떠올린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것도, 며칠만 참으면 돼요.’

출퇴근길의 지하철처럼 사람들의 얼굴이 한결같이 지쳐 보이는 곳은 없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것도, 며칠만 참으면 돼요. 과연 며칠만 참으면, 꾹 참고 영원 같은 며칠과 며칠 같은 영원을 견뎌내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한국에서는 이 노래 뒤에 또 하나의 주문이 추가된다. 그것은 바로 ‘아자 아자 파이팅!’ 이다. 이 주문은 주로 생각하기 귀찮을 때, 머리 굴리기 싫을 때, 입 다물고 일이나 하라며 입을 봉하는 기능을 착실히 수행한다. 힘내자는데, 파이팅하자는데, 더 말 꺼내면 그냥 게으른 인간이 될 뿐이니 대꾸할 말이 없다. 그러므로 이 말 한마디면 모든 고민이나 논의를 종식시킬 수 있다. 힘냅시다, 다시 뛰자, 할 수 있다, 대한민국 부자 되세요, 아자 아자 파이팅! 이런 식이다.

해마다 오르는 등록금에 고민하는 대학생에게도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타면 되지, 아자 아자 파이팅! 직장을 잡지 못해 고민하는 백수에게도 오늘은 한숨지어도 내일은 다시 뛰는 거야, 아자 아자 파이팅! 나이는 먹어가지만 방 하나 얻을 돈이 없는 남자도 아자 아자 파이팅! 어찌어찌 결혼은 했으나 아이와 직장 사이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맞벌이 여성도 아자 아자 파이팅! 늙은 부모를 모시고 있는데 서른 살이 다 된 자식마저 아직 독립을 못해 양쪽으로 샌드위치 부양을 하는 50대 가장에게도 그것 참 힘들겠네요, 뭐 별수 있나요. 아자 아자 파이팅!

ⓒ 난나 그림
개개인의 무거운 어깨, 지금 논의하지 않으면 갈수록 무거워질 것

이 구호가 나에게 음흉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것이 공적 장치나 제도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나 논의 없이 그것을 즉시 마치 판타지에 나오는 순간이동처럼 사적 영역의 개인 노력이나 역량, 자질 등의 문제로 옮아오는 주문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분발도, 그 개인들이 마음껏 분발하도록 보호해줄 사회 장치가 결합되어야만 가능한 것일 텐데도 지금 모두가 파이팅해야 한다면서 달려가고 있는 현재 상황은 국민 개개인의 어깨를 과하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아자 아자 파이팅’이라는 구호는 잠시 쉬게 두고, 잠깐이라도 그만 싸우고 그만 달리고 어깨에 멘 무거운 짐을 차분히 고민해야 할 시기다. 이게 도대체 왜 이렇게 무거운지, 어떻게 운반할 때 최대 효율이 나올지, 과연 이게 어떤 종류의 짐인지, 이것을 개인이 더 잘 지고 가기 위해서 어떤 사회 장치와 합의가 필요한지 지금 고민하지 않으면 그 짐은 갈수록 무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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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김현진 (에세이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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