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이후 월드컵 거리응원은 한국 축구의 상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전 계급·계층이 참여하는 광장문화의 가장 유력한 형식이 되었다. 2002년 6월 거리에서의 대폭발은 그해 겨울의 두 정치 이벤트(대통령선거와 미선·효순 추모 시위)로 이어져, 한국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큰 꽃으로 만개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꽃이 2006년에 어떻게 시들고 변질되는지도 보았다. 거리응원은 의례화됐고 ‘대~한민국’ 구호는 별 매가리가 없는 맹목처럼 보였다. 특히 광장을 차지한 대기업 마케팅은 두근거림도 짜증으로 바꿔놓곤 했다. 올해 6월의 거리는 어떻게 될까?

2010년은 2002년, 2006년과 또 다르다. 출범하자마자 촛불에 세게 데어 가뜩이나 좁은 가슴 용적이 2㎟ 밑으로 줄어든 정권 담당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거리에 모이고 즐거워하는 걸 싫어하는 듯하다. 그들은 도덕적이지도 금욕적이지도 않으면서 〈개그콘서트〉도 〈무한도전〉도 싫어한다. 게다가 거리 민주주의에 관한 그들의 공포심은 거의 일제 총독부 수준이 아닌가? MB표 공안통치로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공권력이 거리응원에 어떻게 대처할지 뻔하다. 폴리스라인 안에 사람들을 가둬놓고, 혹시 ‘응원이 시위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쥐새끼들처럼 바쁘게 쫓아다닐 것이다. 

ⓒ사진공동취재단공권력이 거리응원(위)에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

그리고 거리응원의 메카인 광화문과 청계광장이 있는 서울. 서울 행정을 책임진 전시행정의 초인·달인들은 그간 공공의 공간인 서울광장 사용 방법을 두고 끝없이 잡음과 논란을 빚어왔다. 시민의 광장 사용권을 제멋대로 제한하거나, 광장을 온갖 돈벌이 행사에 ‘봉헌’해왔다. 이번에도 광장 사용권을 통신 대기업에 팔았다는 혐의를 받는다. 만약 서울광장에 나가서 ‘대~한민국’ 외치는 일이 서울시가 그어놓은 금 안에서, 특정 통신사 광고에 무료로 엑스트라 출연하는 일이 된다면 심히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가지 말아야 할 일이다. 2002년에도 그랬듯이 차라리 우리끼리 동네 놀이터에서 텔레비전 켜놓고 이웃들과 둘러앉는 게 훨씬 마음도 편하고 한갓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구호는 외쳐지고, 초여름 밤을 즐기기 위해 많은 젊은이가 대로로 나올 것이다. 그들이 단세포적인 ‘국대 축구팬’이거나 멍청한 소비자여서가 아닐 것이다. 거리의 파티와 공동성을 체험하기 위해서, 그리고 혼란과 풀림 자체를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올 것이다. 아니, 나와서 놀아야 한다. 그들은 직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노동하고, 학교·학원에서는 초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감금되어 보내지 않는가. 숨막히는 개인주의와 불안·처절한 경쟁을 잊고 나와서 놀아도 된다. 〈개콘〉 박성광의 말대로 “국가가 해준 게 뭐가 있냐?” 청춘들이 제대로 난장을 노는 꼴을 보고 싶다.

기자명 천정환(성균관대 교수·국문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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