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중국 기업은 저임금으로 유명했지만, 최근 중국 노동자(위)의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중국은 겨우 3∼4년 전만 해도 한국 중소기업에게 천국 그 자체였다. 인건비가 워낙 낮고, 은행 융자 이율이 낮으며, 세금 감면 등 각종 혜택을 받았다. 너도 나도 국내 설비를 뜯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붐이 일었다. 현재 중국 전역에 진출한 한국의 크고 작은 중소기업은 8만여 곳에 이른다.

그러나 최근 중국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기업 환경이 1∼2년 전부터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더니 중소기업의 천국이 아예 지옥이 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한국 중소기업은 이런 과정에서 직격탄을 맞고 도산 직전 야반도주를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10월 산둥성 칭다오의 ㅁ가발 회사의 사장과 한국 임직원 10여 명이 공장을 그대로 놔둔 채 야반도주했다. 이들은 인근 웨이하이(威海)와 옌타이를 통해 한국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고임금과 각종 규제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역시 칭다오 액세서리 공업단지에 진출한 ㅅ사는 지난 8월 사장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 회사는 이후 근로자들과 그 가족, 거래업체가 몰려와 아수라장이 됐다. 적자가 누적돼 사업을 접고 싶어도 청산 절차가 복잡한 탓에 사장이 구속을 우려해 도주한 것이다.

베이징과 가까운 톈진(天津)의 ㅎ공예품, 휴대전화 부품 업체 ㅅ사, 전자 부품 업체인 ㄷ사 사장은 올해 들어 차례로 사업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이로 인해 이들 공장 주변은 지금도 채권자가 몰려든다.
이처럼 중국이 한국 중소기업의 무덤으로 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기업에게 직접 부담이 되는 중국 근로자의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해 직격탄을 맞고 있다. 12월 현재 중국 도시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600여 위안(약 19만2000원)에 이른다. 얼핏 보면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의 1인당 GDP가 겨우 한국의 10분의 1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결코 적다고 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 임금은 베이징, 상하이, 산둥성 칭다오, 랴오닝성 다롄 등과 같은 대도시나 한국 업체들이 많이 진출한 도시에서는 최소한 20~30% 정도 높아진다. 한국의 고임금을 피해 중국으로 달려간 중소기업으로서는 ‘악’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새 노동계약법도 중소기업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에 따르면 한 직장에서 10년 이상 근속하거나 연속 3회 이상 계약을 맺은 근로자는 종신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다. 퇴직금 지급도 확대되고 노동조합의 권한 역시 대폭 강화된다. 한국 중소기업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세와 법인세가 내년부터 중국 기업과 똑같아진다거나 폐기물을 의무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규정 등 순환경제법 도입도 한 푼이 아쉬운 한국의 중소기업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몇 년 전부터 그런 조짐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설마 설마 했다. 완전히 뒤통수를 맞았다”라며 한숨을 내쉬는 베이징의 중소기업인 박호상씨의 토로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2조 달러 외환 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의 넘치는 달러, 첨단 산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중국 경제정책 당국의 고압적 자세도 중소기업에게 큰 짐이다. 임금 따먹기에만 골몰하는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로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은 이제 중국 정부의 안중에도 없다는 푸념까지 들린다.

ⓒ연합뉴스지난 11월26일 중국 상하이 방적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한국 임직원들이 임금을 체불하고 야반도주했다며 출입을 막은 채 농성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들의 철수 현황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칭다오를 꼽을 수 있다. 한때 봉제·완구·피혁·가발 업체 등 한국 업체 약 3만 군데가 진출한 곳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하지만 요즘은 각종 특혜 폐지와 임금 인상 따위 여파로 지금은 20% 이상 도산하거나 공장을 베트남 등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말이 이전이지 사실상 임직원들이 몸만 빠져나간 채 탈출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롄, 베이징, 상하이 일원, 광둥성, 광저우 등 한국 중소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곳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분위기는 흉흉하다. 어느 한국 기업이 언제 어디로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번진다. 도산하거나 야반도주하지 않고 무사히 이전만 해도 성공이라는 자조의 소리도 들리고 있다.

“처음 중국에 와서 사업을 할 때는 이곳이 천국인 줄 알았다. 저렴한 인건비부터 낮은 세금, 각종 혜택 등을 누리면서 재미를 봤다. 그러나 이것들이 사탕발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중국이 거대한 블랙홀이라는 말이 진짜 실감났다. 중국 정부의 각종 규제나 인건비 상승이 우리에게 너무 시간을 주지 않았다. 미리미리 대비하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 베이징의 사업가 ㅂ씨의 고백이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그는 요식업에서 출발해 식자재 사업에까지 진출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지만 최근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사업체를 베트남으로 이전할까 고민 중이다.

문제는 도산을 하거나 다른 나라로 업체를 이전하려는 중국 진출 한국 기업의 어려움이 중소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ㄹ 대기업은 한·중 수교 이전부터 중국에 진출, 공격적 전략을 펼쳐 한때 ‘차이나 드림’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 이 기업은 과잉 투자와 중국 내수 시장에서 중국 업체와의 치열한 경쟁, 중국 당국의 특혜 축소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년에는 중국 전역에 있는 지사 한국인 임직원 30여명이 조용히 국내로 철수했다. 지금은 몸집을 최대한 줄여 과거 영광의 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중국 업체의 물량 공세 앞에 고전하고 있다.

베이징 투자기업협의회 회장을 지낸 한성글로벌 강재신씨는 “현재 상태대로 간다면 특별한 기술이나 아이템, 자금력이 없는 한국 회사들은 자연 도태될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8만여 개에 이르는 중소기업이 최소한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 본다. 중국 정부 역시 은근히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10월 공산당 17차 전국대표회의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과학적 발전관’을 제창하며 사회복지 정책과 환경 보호 등을 강조했다. 과거 중국 공장은 저임금·공해 산업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앞으로 중국 정부는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도 향상시키고 환경 규제도 강화하리라 예상된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기업은 이런 중국의 변화에 적응해야 할 것 같다.

기자명 베이징=홍순도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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