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아시아인들은 21세기는 ‘아시아 민주화의 시대’가 될 거라는 장밋빛 희망에 차 있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만큼 아시아에서 ‘피플 파워’가 승리하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1992년 태국에서는 잠롱이 이끄는 방콕 시위대가 정부군의 총격을 무릅쓰고 끝내 수친다 장군을 몰아냈다. 1998년 인도네시아 민중은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뜨렸다. 20세기 막바지에 한국과 타이완은 각각 식민지 시대 이후 처음으로 정권 교체를 이뤘다. 아시아 각국은 시기에 차이만 있을 뿐 언젠가는 모두 민주화의 길에 도달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불행히도 2007년 현재 아시아 민주화의 시계는 멈춰 있다. 몇몇 지역에서는 오히려 역사가 퇴보하는 모습도 보인다. 태국은 쿠데타 군부 정권이 정치를 장악했고, 파키스탄의 무사랴프는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헌법을 정지시켰다. 무엇보다 아시아의 민주화 전망을 암울하게 만든 것은 올해 가을 터진 미얀마 승려 시위와 폭력 진압이었다. 21세기 아시아 최대의 민중 봉기가 미얀마에서 벌어졌지만 수많은 희생자만 남긴 채 피플 파워의 꿈은 좌절됐다.
승려들 따라 10만여 군중 거리로 나와
처음 미얀마 시민들을 분노케 한 것은 경제 문제였다. 지난 8월15일 군부 정권이 일방적으로 기름값을 올리자 8월19일 옛 수도 양곤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인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 민생 시위가 정치 시위로 발전한 데는 미얀마 승려들의 용기가 한몫 했다. 민중의 존경을 받고 있는 미얀마 승려들은 9월 중순부터 거리로 나와 침묵 행진을 하며 정권을 압박했다. 승려들의 참여에 자극을 받은 미얀마 시민 10만여명 이상이 거리로 나와 민주화를 요구했다.
전세계인이 미얀마 시민들을 응원했고, 독재자 탄쉐를 규탄했다. 한국인들은 양곤 파고다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 모습을 보며 1980년 광주 금남로와 1987년 서울 시청 앞 광장을 떠올렸다. 미얀마 시위의 결말은 1987년 서울보다는 1980년 광주에 가까웠다. 9월27일 탄쉐 군부는 비폭력 시위를 하던 시민들에게 총을 쏘며 강제 해산시켰다. 언론과 통신이 통제된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승려와 시민이 희생을 당했는지 알 수 없으나, UN은 최소 사망자가 31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 씨도 포함된다.
미얀마 사태에 뒤이어 파키스탄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지만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강제 진압으로 이어졌다. 최근 진행된 일련의 사태를 보노라면, 21세기는 아시아 민주화 시대라기보다는 피플 파워가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노련해진 아시아 독재 국가들은 민중 시위에 대처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얻었다.
그 결과 아시아 곳곳에서 민주화가 정체되거나 역행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중동 왕정국가의 독재 권력은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북한을 비롯한 영세 독재 정권은 교체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까스로 민주화를 이룩한 몇 몇 아시아 나라는 과거 세력이 결집한 정당에 정권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시사IN〉에 미얀마 사태 현지 기고를 했던 김영미 프리랜서 PD는 양곤에서 만난 한 시민의 목소리를 전했다. 그는 한국의 민주화 역사를 이야기하며 “왜 한국은 민주화 운동에 성공했는데 우리는 안 되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 질문에 김 PD는 적절한 답을 해줄 수 없었다. 우리가 미얀마 국민보다 더 열심히 투쟁을 해서라거나 더 큰 희생을 치렀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단지 우리는 운이 좋았던 것일까? 아니 정말 우리가 민주화를 이루긴 이룬 것일까?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승려들과 시민들은 아시아인 모두에 민주화의 보편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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