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가 북극을 강대국들의 영토 분쟁 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북극 빙산이 머지않아 사라질 것으로 걱정한다. 북극 빙산은 1987년 750만㎢였는데 10년이 지난 올해 410만㎢로 45% 이상 줄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추세로 빙산이 녹아내릴 경우 2040년께는 더 이상 북극에서 빙산 구경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북극은 지구 자전축의 북쪽 꼭짓점인 북극점을 중심으로 북위 66°30' 북족 지역을 이른다. 하지에는 낮이 24시간, 동지에는 밤이 24시간 지속되는 북극은 그린란드·스발바르 제도 등의 섬과 북아메리카,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이 에워싸고 있다.

쓸모없는 지역으로 여겨지던 북극은 20세기 중반부터 주목되기 시작했다. 비행 항공로는 물론 지하자원·삼림자원이 풍부한 곳으로서, 또 기상학 연구기지·무선통신 중계기지 등으로 그 가치를 재조명받았다. 여기에 최근 지구 온난화로 북빙이 해빙되자 북극이 새로운 영토 격전지로 떠오른 것이다. 먼저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천연자원의 채굴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지질연구소는 북해 해저에 지구상 석유· 천연가스 매장량의 25% 정도가 묻혀 있다고 추산했다. 또 얼음이 녹아 바닷길이 열리면서 북해-대서양-태평양을 연결하는 새로운 항로 개통이 현실로 다가왔다. 더불어 어로권이 확장되어 수산업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런 막대한 이권을 놓고 러시아·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미국 등 북극권 인접 5개국은 서로 신경전을 벌이면서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Reuters=Newsis북극해 탐사를 지휘한 아르투르 칠린가로프 러시아 하원 부의장이 북극점 바다에 꽂힌 러시아 국기를 보여주고 있다.
북극 선점 경쟁은 러시아가 먼저 불을 댕겼다. 러시아는 지난 7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북극-2007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북극점 심해 해저에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국기를 꽂은 뒤 북극 영유권 증거 수집에 박차를 가했다. 이 탐사에는 원자력 쇄빙선을 앞세운 ‘표도로프 아카데미’ 특수선과 헬리콥터가 동원되었다. 심해 탐사를 위해서 특수 장비를 탑재한 잠수함 ‘미르(평화, 세계)’호가 제작되었다. 로모노소프-멘델레예프 해령이 시베리아 대륙붕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증명해서 북극을 자국 영토로 만들겠다는 것이 러시아의 의도다. 로모노소프-멘델레예프 해령은 북해를 횡단하는 해저산맥으로, 이곳에는 100억 t의 천연가스를 비롯해 다이아몬드·금·니켈·아연 따위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극-2007 프로젝트’를 총괄 지휘했던 두마(하원) 부의장 아르투르 칠린가로프는 “우리는 역사에 기록될 지리상의 발견을 해냈고, ‘첫날밤 권리’를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2008년 폭풍과 같은 작전을 펼쳐서 (북극) 경계를 확정지을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001년 러시아는 유엔을 상대로 로모노소프-멘델레예프 해령이 시베리아 대륙붕과 연결되어 있다며 영유권을 주장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다. 러시아는 증거 자료를 보강해 2009년 영유권을 재차 주장할 계획이다.

1982년 유엔이 제정한 국제 협약에 따르면, 북극은 남극과 마찬가지로 개별 국가의 관할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러시아·미국·캐나다·노르웨이·덴마크의 200해리 경제수역만 인정될 뿐이다. 그러나 북극이 특정 국가의 본토와 대륙붕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면 영토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처럼 러시아의 북극 공략이 거세지자 캐나다가 이에 반격했다. 러시아의 북극 탐사 이후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는 사흘간 북극을 직접 방문하는 한편 캐나다의 북극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최초로 북극에 군사기지를 설립할 계획을 세웠다. 총리 대변인 디미트리 소더스는 “캐나다 정부는 북극 해저의 막대한 자원을 통한 경제 발전과 북극 환경 보전, 자국 토지와 영공·영해를 보호하는 북극 주권 확립 같은 좀더 건설적인 의제를 갖고 있다”라며 북극 영유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빙하 녹으면서 새로운 섬도 등장

미국도 경쟁에 합류했다. 하퍼 캐나다 총리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북극 북서 항로를 지키기 위해 순찰선을 투입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북서 항로에 대한 캐나다의 배타적 권한을 부정한다. 이와 관련해 데이비드 윌킨스 캐나다 주재 미국 대사는 북서 항로는 엄연한 ‘중립해’라고 쐐기를 박았다. 지난 8월부터 3개월간 북극 탐사를 진행하면서 대륙붕 확장 가능성을 타진한 미국은 2008년 봄 북극에 해안경비 기지를 세울 예정이다. 이어 지난 10월 말 미국 상원 대외위원회는 북극 영토 분할에 관한 법적 토대를 준비하는 한편, 부시 대통령에게 유엔의 200해리 협약에 비준하라고 권고했다. 미국은 세계 150여 나라가 비준한 유엔 해양협약 (1982년) 비준을 유보해놓은 상태다.

ⓒReuters=Newsis2007년 8월 러시아 심해 탐사 잠수함 ‘미르’가 북극해 밑으로 들어가는 모습.
덴마크도 북극 영유권에 야심이 있다. 2004년 북극 탐사에 착수한 덴마크는 북해 대륙붕이 자국 영토라는 증거를 수집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최근 덴마크는 북서 항로 인근의 ‘한스’ 섬 영유권 문제로 캐나다와 분쟁을 빗기도 했다.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최근 북해에서는 미지의 섬도 새로 발견되고 있다. 이 역시 북극권 인접 나라들간 영유권 다툼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지난 7월 미국인 탐험가 데니스 슈미트 씨(60)는 그린란드 인근 북해에서 길이 40m에 이르는 작은 바위섬을 발견했다. 난데없이 이 섬이 나타난 것은 지구 온난화로 주변을 둘러싼 유빙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슈미트 씨는 이 바위섬을 ‘떠돌이 개 웨스트(Stray Dog West)’라고 명명했다. 이 섬은 북극점과 불과 700km 떨어진 위치에 있어 지구 최북단 육지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린란드 주권국인 덴마크는 이 바위섬 주권을 매개로 북극 영유권도 주장할 태세다. 하지만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은 터무니없는 욕심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스티븐 탤먼 옥스퍼드 대학 교수는 “이 바위섬은 작지만 상당한 국제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얼음이 녹아 향후 더 많은 섬이 나타나면 해양 경계선 획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북극 탐사에 후발 주자인 노르웨이는 조용한 가운데서도 내심 좌불안석이다. 노르웨이는 북해 주변에서 러시아가 벌이는 잦은 군사훈련을 불평한다. 최근 러시아는 옛소련 시대 실시하던 태평양 연안 정찰을 정례화하고 북극까지 정찰 영역을 확대했다. 지구 최북단 스발바르 제도의 주권국으로서 북극 이권 다툼에 방관할 수만은 없는 노르웨이는 주변 강국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경쟁에 뛰어들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8 세계 대전망’ 보고서에서 2008년 최대 격전지로 북극을 주목했다. ‘세계 극지의 해’로 지정된 2008년을 맞아 60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200여 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극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북극은 이래저래 소란스러워질 전망이다.

기자명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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