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존 매코넬 미국 국가안보국장(오른쪽 두 번째)은 국가정보평가 보고서에 잘 모르는 내용은 솔직히 모른다고 명기하도록 했다.

전세계에서 ‘슈퍼파워’ 미국처럼 대외 정보를 열심히 캐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중앙정보국(CIA)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대외정책 및 국가안보와 관련된 각 연방부처에는 으레 정보 조직이 있다. 최대 정보 조직을 갖춘 부처는 단연 국방부다. 국방정보국을 비롯해 육해공군 등을 포함하면 9개 정보 조직이 있다. 또한 에너지부, 국토안보부, 법무부, 국무부, 재무부까지 합치면 미 연방 정부 내에서 정보를 다루는 조직은 16개에 이른다. 이들 16개 정보 조직을 통칭해 ‘미국 연방 정보집단’이라 부른다. 이 집단 내에는 중장기적 정보 분석을 담당하는 ‘국가정보위원회’가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국가정보평가(NIE) 보고서’를 낸다.

국가정보평가 보고서는 지난 1950년 첫 발간된 이래 오랜 세월 공신력과 정확도를 자랑해왔다. 특히 국가정보위원회는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특정 행정부의 입맛에 맛도록 정보를 취합하거나 해석할 수 없으며, 행정부의 정치적 압력을 배제할 수 있도록 제도로 보장받고 있다. 역대 미국 행정부가 주요 대외정책을 재검토하거나 수립할 때 이 보고서에 의존해 온 이유도 바로 이같은 공신력 때문이다. 

문제는 보고서 내용이 정확하면 문제가 없지만 허위로 드러날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가 바로 지난 2005년 8월에 나온 대이란 국가정보평가 보고서다. 당시 보고서의 핵심은 ‘이란이 핵무기를 확보하기로 작심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보고서가 나온 직후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최근까지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란의 핵개발을 기정사실화하며 국제적인 압박을 주도했고, 실제로 유엔 차원의 대이란 제재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한때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북한 핵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어 조용해진 대신 이란 핵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데는 문제의 국가정보평가 보고서가 끼친 영향도 크다.  

그런데 국가정보위원회가 겨우 2년 전의 국가정보평가 보고서 내용을 180° 뒤집은 보고서를 내놓아 요즘 워싱턴 조야가 뒤숭숭하다. 이번에 새로 나온 국가정보평가 보고서의 핵심은 이란이 이미 지난 2003년 하순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한 작업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보의 정확도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최고 등급인 ‘고도의 확신’(high confidence)을 부여했다. 이란이 핵개발을 중단했다는 사실을 거의 100% 확신한다는 뜻이다. 고작 2년사이에 미국 최고 정보 보고서는 이란 핵개발 문제를 두고 이처럼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가장 당혹스런 처지에 빠진 쪽은 해당 보고서를 근거로 이란과 대화를 거부한 채 한때 군사적 응징까지 심각하게 고려했던 부시 대통령이다. 그는 정반대 보고서가 나온 직후에도 “이란은 여전히 위협국으로 남아 있다”라면서 이란 정부에 대해 핵 의도를 밝히라고 촉구했지만 당혹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이처럼 2년 새 상반된 보고서가 나올 수 있었던 데는 지난 2월 국가안보국장으로 취임한 존 매코넬(64)의 공이 컸다는 평이 많다. 자신을 국가정보국장으로 지명한 부시 대통령에게 ‘보은’하기는커녕 오히려 취임 직후 국가 정보집단의 개혁을 통해 정보 가공과 해석 작업에 쇄신을 꾀한 그의 ‘소신’ 덕분에 이번 보고서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퇴역 해군장성인 매코넬은 지난 2월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국가정보국장에 취임했다. 그는 타성에 젖어 부처 간 협조와 유기적 정보교환이 잘 안 된다는 비판을 받아온 미국 정보집단에 대해 100일간의 혁신 청사진을 밝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2년 10월 정보기관이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확보하고 있으며 핵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란 그릇된 정보를 내놓아 결과적으로 이듬해 3월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이라크 침공의 빌미를 제공했던 사례를 상기시켰다. 떨어진 정보기관의 신뢰도를 바로잡겠다며 대대적인 개혁 작업에 들어갔다. 과거에는 국가정보평가 보고서에 들어가는 특정 정보를 두고 미국 정보집단 간에 서로 견해가 달라도 절충된 의견을 내놓았지만, 매코넬 국장이 취임한 뒤에는 일치된 견해가 나오지 않으면 아예 ‘모른다’고 명기하도록 했다.

이번 보고서 작성에 간여했던 한 고위 정보관리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모르면 모른다고 한 ‘Do not know’라는 표현이 국가정보평가 보고서의 새로운 용어로 자리 잡았다”라고 밝혔다. 매코넬 국장의 방침은 모르는 정보를 왜곡하거나 확대 해석하는 것이 곧 그릇된 정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뿌리뽑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Reuters=Newsis올해 2월 국제원자력기구 이란 대표 알리 아스가르 솔타니에(오른쪽 두 번째)가 이스파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한 것으로 밝혀졌다.

매코넬 국장은 또한 왜곡된 정보 흐름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정보 분석가들의 기존 가정을 재검토하는 한편 더한층 정보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통신 감청 등 비밀 정보수집 작업을 강화했다. 실제로 이란이 핵개발을 중단했다는 요지의 이번 보고서가 나올 수 있었던 데는 이란 고위 정부 및 군관리의 대화 녹취록과 통신 감청 따위가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령 2004년 중앙정보국이 이란 공학도에게서 입수한 랩톱 분석 내용이 이란의 핵개발설의 주요 근거가 되었지만, 최근 미국 정보기관이 입수한 이란 정부의 가장 핵심 간부들이 나눈 핵 관련 대화 녹취록을 보면 랩톱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과거 같으면 설령 정보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절충해 내놓았겠지만 매코넬 국장 지휘하의 국가정보위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특히 2005년 국가정보평가 보고서는 이란의 핵능력과 이란 지도자들의 목표에 대한 막연한 정보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이번 새 보고서는 비밀 공작원이 직접 현지에서 취득한 정보를 통신 감청 등과 일일이 대조하는 방식을 거침으로써 신뢰도를 높였다.

즉, 이란이 농축 우라늄 기술을 포함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과학 기술과 산업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그런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도로 연결하지는 않았다. 저명한 핵 과학자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국제과학안보소장은 “이번의 새 보고서야말로 모처럼 미국 정보집단이 국제원자력기구와 유럽 국가들이 몇 년 전 이란의 핵정보에 대해 내놓은 결론과 일치한다”라며 매코넬 국장 체제의 국가정보위원회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한마디로 이번 새 보고서는 미국 정보집단 내 싱크탱크 격인 국가정보위원회가 향후 ‘정보의 절충 내지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확고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매코넬 국장도 이번 보고서가 공개되기 직전인 지난 11월 하순 “국가정보평가 보고서의 의견 불일치는 항상 존재하는 법이다”라며 특정 정보가 일치하지 않으면 일치하지 않는 대로 보고서에 싣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새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미국 정보집단이 매코넬 국장 아래에서 환골탈태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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