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라던 이순신의 심정이 이랬을까. 낙동강을 답사하러 간 사진가 이상엽씨와 문화예술인들에게 지율 스님은 간곡히 호소했다. “낙동강 하류는 비록 처참하게 찢기고 파헤쳐졌지만 아직 상류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직 지킬 것이 남아 있습니다.”

‘6월2일은 4대강 사업 멈추는 날’이라고 공언한 야당에 표를 몰아준 사람들은 말한다. 선거로 드러난 민심을 딱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4대강 사업 하지 마!”라고. 그러나 선거 직전 이른바 4대강 지지 선언을 발표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렇게 말했다. “보(洑) 건설 작업이 27%의 공정률을 보이는 이때 작업을 중단하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환경 파괴의 결과만을 남길 수 있다.” 재선에 성공한 김문수 경기지사 또한 개표 직후 말했다. “4대강 사업을 지금 중단하면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이를 두고 이준구 교수(서울대·경제학)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저질 논리’라고 일축한다. 국토 파괴가 100%에 이르기 전까지는 하루라도 빨리 중단시키는 것이 우리 국토를 그나마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설사 99%가 파괴되었다 하더라도 1%만이라도 살려내자는 염원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우리 앞에는 아직 이토록 짙푸른 생명의 숲과 강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상엽경남 창녕군 남지에서 용산으로 가는 낙동강변 개비리길. 개비리는 물가의 벼랑길이라는 우리 지방말이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5km 정도 이어지며 벼랑 아래로 보이는 낙동강 풍광이 좋은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온통 공사장 풍경만 들어온다.
ⓒ이상엽낙동강 하구 삼락 둔치의 한가한 오후. 콘크리트 대신 자연스러운 수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부산 사람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곳이다. 주변 산이 좌청룡 우백호를 이루어 마을을 감싸고 전면이 열린 전형적인 노서하전(老鼠下田) 즉, 늙은 쥐가 밭을 향해 내려와 부자가 나온다는 명당으로 이름난 곳이기도 하다.
ⓒ이상엽낙동강 하구의 저녁 풍경. 수많은 하중도가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든다. 낙동강을 찾는 철새들의 쉼터이지만 새롭게 건설 중인 제2 배수관문으로 인해 차츰 이 모래섬들은 사라질 운명이다. 정부 계획으로는 둑 상·하류 수로 157만㎥를 준설해야 한다.
ⓒ이상엽경남 창원시 동읍 본포리의 야산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하중도. 뭍에서 사는 사람들을 피해 많은 생명이 둥지를 트는 곳이 하중도이다. 그래서 이곳을 생태의 보고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하중도 역시 다음 달이이면 사라질 것이다.
ⓒ이상엽삼락 둔치 안의 자연 습지. 겨울에는 철새의 먹이터와 서식지 구실을 하는 곳으로 2006년 686억원 예산을 들여 정비했다. 최근에는 멸종 2급의 맹꽁이도 발견되고 있지만 4대강 정비사업의 낙동강 3지구로 지정되어 4년 만에 사라질 예정이다.
ⓒ이상엽공사장 인부가 포클레인의 삽에 앉아 준설 지역을 표시하는 깃발을 꽂고 있다. 진공흡입식도 아니고 강에 직접 들어가 포클레인으로 준설하는 현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강물의 탁도는 점점 증가하고 물고기는 갈 곳이 없어진다.
ⓒ이상엽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교 부근 낙동강. 주변에 죽은 물고기들이 널려 있다. 전부터 금호강을 통해 대구 공단에서 내려온 오염원들이 쌓여 있다가 강정보 건설로 인해 낙동강 물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낙동강 모래톱에서 이명박에게 묻는다

송경동(시인)

너는 물어보았니 그 실개천들에게 계곡물들에게 물어보았니 당신은 어떤 길을 따라 돌돌돌 흐르고 싶은 영혼이냐고 당신은 어떤 여울목에서 소용돌이로 엎어져 뒹굴며 쿨렁쿨렁 쏟아져 울고 싶은 영혼이냐고 물어보았니. 콘크리트 수조 속에 갇혀 썩어가는 물이 되고 싶은지 세상의 모든 정체와 지체, 세상의 모든 부패와 오염을 밀고 흐르는 급류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았니 실버들 선 돌방죽길을 따라 흐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갈대숲 늪지를 따라 흐르며 어떤 영혼의 정화를 꿈꾸었는지 물어보았니

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우리 모두가 가더라도 남아 있을 저 영원한 강을 수많은 파문과 피눈물을 삼키고도 좌절하지 않고 흐르는 이 역사의 강을 무수히 많은 발원들의 교차이며 합인 기억의 강을 늘 새로운 생명이며 문화인 이 강을 일자로 나란히 줄 세우겠다는 그 저급한 꿈을

관광상품 하나 만들어보겠다는 그 치졸한 상상을 저 평등한 바다로 나가면 어차피 만나게 될 강물들을 이렇게 빨리 격랑으로 만나게 해주겠다고선 고작 화물선 몇 척 물류비 계산이나 하고 있는 그 천박한 머리를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그렇게 무너뜨리고 싶으면 노동자농민서민 도시빈민 실업자 비정규직들의 아픔 위에 도도히 선 저 흉악한 자본의 탐욕이나 무너뜨리렴 그렇게 뚫고 싶은 게 많으면 반 백 년 원한으로 막아선 저 분단의 철벽이나 뚫어주렴 그렇게 성장하고 싶으면 이제 그만 미국의 품에서 일어서 나오렴 신자유주의 착취와 소외 폭력의 세계화 대열에서 벗어나 씩씩하게 독립해보지 않으렴 더 많은 평등을 흐르게 하는 역사의 대운하라면 더 많은 평화를 실어 나르는 사랑과 인내와 연대의 대운하라면 그 누가 말리겠니 그 누구든 작은 손이나마 뜰삽으로 내밀지 않겠니 - 「너는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중에서

ⓒ이상엽삼락둔치 안의 자연 습지. 겨울에는 철새의 먹이터와 서식지 구실을 하는 곳으로 2006년 686억원의 예산을 들여 정비한 곳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멸종 2급의 맹꽁이도 발견되고 있지만 4대강 정비사업의 낙동강 3지구로 지정되어 4년만에 사라질 예정이다
나는 무신론자이고 종교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경외하는 대상들이 있다. 그건 이 대자연이다. 수없이 많은 말들을 펄럭이면서도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저 산의 나무들이고, 쉼없이 흘러가는 저 먹먹한 역사의 강이다.

어떤 종교도 이념도 저 산과 강이 가진 오묘한 생명의 깊이를 표현할 수 없고, 나날이 새로울 수 없다. 어떤 경전이 그토록 평화롭고 조화로울 수 있을까. 어떤 금언이 이렇게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을 수 있을까. 어떤 지혜가 이토록 낮으면서도 위대할 수 있을까. 어떤 대하소설이 그토록 유장하고 광활할 수 있을까. 어떤 지식의 실핏줄이 이렇게 섬세할 수 있을까. 어떤 연대의 몸짓들이 그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이 강에 젖줄을 대고 자라난 자식들이었다. 강을 통해 여울진 삶의 구비를 알았고, 만나고 헤어지는 이별을 알았고, 쉽지 않은 삶의 굴곡을 알았고, 때론 생의 범람과 소용돌이를 알게 되었다. 머물지 못하는 것이 인생임을 배웠고, 그렇게 끊임없이 흘러가 어느 땐가 저 무욕의 바다, 평등의 바다, 평화의 바다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됨을 알았다.

어느 산골짝 소년으로 태어나 작은 여울목들을 지나고 벗을 만나듯 샛강들을 만나며, 큰 도회로 나와 큰 강을 만나는 게 삶이었다. 그렇게 내 가슴이, 우리의 영혼이 드넓어지기를 소망하며 한발 한발 걷는 게 인생이었다. 강은 그런 우리 모든 인류의 교사였으며, 삶의 시원이었다. 직선의 칼이 아니었으며, 멍청한 유리어항이 아니었다. 포박당한 노예가 아니었으며, 절단당한 사지가 아니었다. 

이런 강을 함부로 유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에는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윤리가 없다. 모래톱을 단지 골재의 양으로 환산하는 머리엔 사람 역시 자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개발하고 있는 것은 단지 강만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정신을, 몸을 가공이 가능한 어떤 재료로 여기고 있다. 모든 자연스러운 것들을 ‘낙후’로 낙인찍고 이윤 창출을 위해 개발 가능한 대상으로 지정한다. 그렇게 4대강을 쓸모없이 흐르는 불모지로 지정하고, 결핍으로 호명하고, 운하라는, 관광지라는 이윤창출 가능한 상품으로 파괴, 개발한다. 

ⓒ이상엽낙동강 창아지 마을 근처의 진공흡입식 준설기의 모습. 모래가 아니라 그 밑의 검은 뻘까지 올라오고 있다. 게다가 주변에는 침사지와 오탁 방지막도 없다. 포크레인으로 직접 준설하는 모습은 너무도 흔하다. 공사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 곳이 너무도 많은 실정이다
마찬가지로 자본의 효율만을 잣대로 모든 정규직 일자리들을 불량한 것으로 낙인찍고, 언제든 쓰고 버릴 수 있는 비정규 인생들로의 전환을 강요한다. 모든 창조적 작업들을 상품가치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시키고, 그 작업들에서 나눔과 연대의 가치들을 거세한다. 이민족의 국가들을, 또는 자국 내 가난한 이들의 삶을 저개발로, 미개로 규정하고 계몽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토착적 가치들을 파괴한 후 값싼 노동력과 원료의 수탈지로, 무한 이윤 창출이 가능한 시장으로 재구성한다. 

이렇게 수탈해선 안 될 것들을 수탈한, 착취할 수 없는 것을 착취한, 소유해선 안 되는 것들을 소유한 이들이, 지금 우리들의 몸을 유린하고 있다. 우리들의 피를 뽑아가고 있고, 살을 베어가고 있고, 근육을 절단하고 있다. 지혜의 강을 무뇌의 강으로 만들며, 모든 생명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4대강 유린의 고통은 곧 우리에게 닥칠 재앙에 다름 아니다. 

작가 이상엽의 사진이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지금 당신의 몸 안에, 우리 공동체 사회 안에,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 안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이 침투해 있다고, 걷어내야 할 것은 저 자애로운 강바닥이 아니라, 이들이라고. 

*송경동 시인은 시집으로 〈꿀잠〉과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펴냄. 〈천상병문학상〉을 수상함. 현재 〈비정규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에서 일함.

 

기자명 사진 이상엽, 글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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