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일은 4대강 사업 멈추는 날’이라고 공언한 야당에 표를 몰아준 사람들은 말한다. 선거로 드러난 민심을 딱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4대강 사업 하지 마!”라고. 그러나 선거 직전 이른바 4대강 지지 선언을 발표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이렇게 말했다. “보(洑) 건설 작업이 27%의 공정률을 보이는 이때 작업을 중단하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환경 파괴의 결과만을 남길 수 있다.” 재선에 성공한 김문수 경기지사 또한 개표 직후 말했다. “4대강 사업을 지금 중단하면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이를 두고 이준구 교수(서울대·경제학)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저질 논리’라고 일축한다. 국토 파괴가 100%에 이르기 전까지는 하루라도 빨리 중단시키는 것이 우리 국토를 그나마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설사 99%가 파괴되었다 하더라도 1%만이라도 살려내자는 염원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우리 앞에는 아직 이토록 짙푸른 생명의 숲과 강이 살아 숨쉬고 있다.
낙동강 모래톱에서 이명박에게 묻는다
송경동(시인)
너는 물어보았니 그 실개천들에게 계곡물들에게 물어보았니 당신은 어떤 길을 따라 돌돌돌 흐르고 싶은 영혼이냐고 당신은 어떤 여울목에서 소용돌이로 엎어져 뒹굴며 쿨렁쿨렁 쏟아져 울고 싶은 영혼이냐고 물어보았니. 콘크리트 수조 속에 갇혀 썩어가는 물이 되고 싶은지 세상의 모든 정체와 지체, 세상의 모든 부패와 오염을 밀고 흐르는 급류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았니 실버들 선 돌방죽길을 따라 흐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갈대숲 늪지를 따라 흐르며 어떤 영혼의 정화를 꿈꾸었는지 물어보았니
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우리 모두가 가더라도 남아 있을 저 영원한 강을 수많은 파문과 피눈물을 삼키고도 좌절하지 않고 흐르는 이 역사의 강을 무수히 많은 발원들의 교차이며 합인 기억의 강을 늘 새로운 생명이며 문화인 이 강을 일자로 나란히 줄 세우겠다는 그 저급한 꿈을
그렇게 무너뜨리고 싶으면 노동자농민서민 도시빈민 실업자 비정규직들의 아픔 위에 도도히 선 저 흉악한 자본의 탐욕이나 무너뜨리렴 그렇게 뚫고 싶은 게 많으면 반 백 년 원한으로 막아선 저 분단의 철벽이나 뚫어주렴 그렇게 성장하고 싶으면 이제 그만 미국의 품에서 일어서 나오렴 신자유주의 착취와 소외 폭력의 세계화 대열에서 벗어나 씩씩하게 독립해보지 않으렴 더 많은 평등을 흐르게 하는 역사의 대운하라면 더 많은 평화를 실어 나르는 사랑과 인내와 연대의 대운하라면 그 누가 말리겠니 그 누구든 작은 손이나마 뜰삽으로 내밀지 않겠니 - 「너는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중에서
어떤 종교도 이념도 저 산과 강이 가진 오묘한 생명의 깊이를 표현할 수 없고, 나날이 새로울 수 없다. 어떤 경전이 그토록 평화롭고 조화로울 수 있을까. 어떤 금언이 이렇게 수천 년 동안 변함없을 수 있을까. 어떤 지혜가 이토록 낮으면서도 위대할 수 있을까. 어떤 대하소설이 그토록 유장하고 광활할 수 있을까. 어떤 지식의 실핏줄이 이렇게 섬세할 수 있을까. 어떤 연대의 몸짓들이 그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이 강에 젖줄을 대고 자라난 자식들이었다. 강을 통해 여울진 삶의 구비를 알았고, 만나고 헤어지는 이별을 알았고, 쉽지 않은 삶의 굴곡을 알았고, 때론 생의 범람과 소용돌이를 알게 되었다. 머물지 못하는 것이 인생임을 배웠고, 그렇게 끊임없이 흘러가 어느 땐가 저 무욕의 바다, 평등의 바다, 평화의 바다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됨을 알았다.
어느 산골짝 소년으로 태어나 작은 여울목들을 지나고 벗을 만나듯 샛강들을 만나며, 큰 도회로 나와 큰 강을 만나는 게 삶이었다. 그렇게 내 가슴이, 우리의 영혼이 드넓어지기를 소망하며 한발 한발 걷는 게 인생이었다. 강은 그런 우리 모든 인류의 교사였으며, 삶의 시원이었다. 직선의 칼이 아니었으며, 멍청한 유리어항이 아니었다. 포박당한 노예가 아니었으며, 절단당한 사지가 아니었다.
이런 강을 함부로 유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에는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윤리가 없다. 모래톱을 단지 골재의 양으로 환산하는 머리엔 사람 역시 자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 그들이 개발하고 있는 것은 단지 강만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정신을, 몸을 가공이 가능한 어떤 재료로 여기고 있다. 모든 자연스러운 것들을 ‘낙후’로 낙인찍고 이윤 창출을 위해 개발 가능한 대상으로 지정한다. 그렇게 4대강을 쓸모없이 흐르는 불모지로 지정하고, 결핍으로 호명하고, 운하라는, 관광지라는 이윤창출 가능한 상품으로 파괴, 개발한다.
이렇게 수탈해선 안 될 것들을 수탈한, 착취할 수 없는 것을 착취한, 소유해선 안 되는 것들을 소유한 이들이, 지금 우리들의 몸을 유린하고 있다. 우리들의 피를 뽑아가고 있고, 살을 베어가고 있고, 근육을 절단하고 있다. 지혜의 강을 무뇌의 강으로 만들며, 모든 생명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4대강 유린의 고통은 곧 우리에게 닥칠 재앙에 다름 아니다.
작가 이상엽의 사진이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지금 당신의 몸 안에, 우리 공동체 사회 안에,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 안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이 침투해 있다고, 걷어내야 할 것은 저 자애로운 강바닥이 아니라, 이들이라고.
*송경동 시인은 시집으로 〈꿀잠〉과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펴냄. 〈천상병문학상〉을 수상함. 현재 〈비정규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에서 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