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내각 지지율(19%)로는 오는 7월11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아우성이 몰아치자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과 동반 퇴진을 선택했다. 중의원 선거 대승의 여파를 몰아 지난해 여름 출범한 이른바 ‘오하토(오자와-하토야마)’ 체제가 8개월 만에 무너진 것이다.

발족 당시 75%에 달했던 지지율이 10%대로 급락한 첫째 이유는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정부 현안에 대해 하토야마 총리의 말과 행동이 갈팡질팡했기 때문이다. 외무·국방장관으로 구성된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는 지난 5월28일 미 해병대 전용 비행장인 후텐마 기지를 나고 시 헤노코 주변 해안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2006년에 미국 정부와 자민당 정권이 합의했던 이전 안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그 때문에 하토야마 총리는 자신이 내건 선거 공약(오키나와 밖 이전이나 해외 이전)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집중포화를 받았다.

하토야마 총리는 선거 공약을 포기하는 이유로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제3 해병원정군 약 1만6000명의 ‘전쟁 억지력’을 들었다. 그는 천안함 사태를 예로 들면서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제3 해병원정군이 48시간 안에 한반도에 투입된다는 점을 역설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제주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에 앞서 이례적으로 대전 현충원을 참배하고, 정상회의 모두에 천안함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제안한 것도 후텐마 문제가 그 배경에 깔려 있었다는 것이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AP Photo6월4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운데)가 공식 사퇴한 뒤 총리 관저를 떠나고 있다.
‘깨끗한 민주당’ 이미지 위해 동반 사퇴

당연히 ‘오키나와 밖 이전’이 당의 간판 공약이나 다름없는 사민당은 하토야마 총리가 말을 바꿔 ‘헤노코 이전 안’을 그대로 수용하자 크게 반발했다.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당수는 미·일 협약에 대한 서명을 거부해 소비자 담당장관에서 파면됐고, 사민당은 전국대표자회의를 열어 민주당·국민신당·사민당으로 구성된 ‘3당 연립정권’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지지율이 급락한 또 다른 이유는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자금 스캔들 때문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모친이 제공한 돈을 정치자금인 것처럼 허위 기재한 혐의로 비서가 검찰에 기소됐다. 오자와 간사장 역시 정치자금으로 받은 돈을 도쿄의 토지를 구입하는 데 쓴 혐의로 현직 중의원 의원인 전 비서가 기소됐다. 그래서 민주당 안에서는 ‘돈에 깨끗하다’는 민주당의 이미지를 되찾기 위해 두 사람이 동반 퇴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6월4일 열린 중·참의원 합동 본회의에서 제 94대 총리로 선출된 간 나오토 신임 총리는 어떻게 보면 이색 정치가이다. 그는 도쿄 공업대학 이학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유명한 여성 시민운동가 이치가와 후사에 씨의 선거 사무장을 거쳐 1980년 중의원 의원에 첫 당선했다. 이후 도쿄의 선거구에서 열 번이나 당선하는 최장 기록을 수립했다.

간 총리는 사회시민 연합, 신당 사키가케를 거쳐 1996년 하토야마 전 총리와 함께 민주당을 결성하고 대표로 취임했다. 그 뒤 오자와 전 간사장의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병을 추진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1996년 하시모토 내각의 후생장관을 지낼 때 ‘에이즈 약해(藥害) 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하면서부터이다. 하토야마 내각의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있을 때는 ‘탈관료정치’를 주도했다. 

그러나 그는 하토야마 전 총리처럼 명문 집안 출신도 아니고, 오자와 전 간사장처럼 2세 의원도 아니다. 총리를 배출하는 명문 도쿄 대학이나 와세다·게이오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다. 오카야마 현의 평범한 직장인 아들로 태어나 시민운동가에서 정치가로 변신했을 뿐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는 약간 엇갈린다.

간 총리는 틈만 있으면 “20년간 지속된 잘못된 경제정책이 오늘의 피폐한 일본을 만들었다”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그는 “강력한 경제, 강력한 재정, 강력한 사회보장을 동시에 실현하자”라고 외친다. 그는 하토야마 내각에서 ‘성장 위주 전략, 납세자 번호 제도 창설, 소비세 증세’ 등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오자와 전 간사장(왼쪽)은 간 나오토 신임 총리(오른쪽) 뒤에서 일본 정계를 주무를 것으로 보인다.
간 총리가 장기 집권할 가능성은?

그러나 간 총리가 직면해 있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먼저 우정민영화 법안이나 고속도로 무료화 법안 등을 참의원 선거 이전에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 또 후텐마 비행장의 대체시설 건설에 대한 세부 사항을 8월 말까지 결정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간 총리가 후텐마 이전 문제에 관해 발언한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간 총리도 오키나와와 헤노코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큰 고초를 겪게 될 것이다”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간 총리에게 닥친 가장 큰 두통거리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어날지도 모를 당의 분열이다. 민주당은 현재 중의원 의원 307명과 참의원 의원 116명이 속해 있는 거대 여당이다. 그중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 그룹이 의원 150명을 거느린 최대 파벌이고,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그룹은 70명 정도이다. 뒤이어 간 나오토 총리 그룹 50명, 마에하라 세이지 국토교통장관 그룹 40명, 옛 민사당 그룹 40명, 노다 가쓰히코 재무 부장관 그룹 30명, 옛 사회당 그룹 30명, 하타 쓰토무 전 총리 그룹 15명으로 이어진다.

오자와 파벌을 제외한 각 파벌 의원들은 7월11일 치러질 참의원 선거에서 단독 과반수를 얻으려면 민주당의 ‘오자와 색깔’을 전부 지워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즉 ‘낡은 정치가’ ‘금권 정치가’라는 꼬리표가 달린 오자와 전 간사장의 입김을 완전히 배제해야만 민주당이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간 총리가 ‘선거의 귀재’로 불리는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의 입김을 배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자와를 설득해 자유당과 민주당을 합병한 당사자가 바로 간 총리이며, 두 사람은 바둑을 함께 두면서 정국을 논의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에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것도 실은 오자와의 치밀한 선거전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게 정치 평론가들의 말이다.

전문가들은 “간 총리는 마에하라 그룹을 비롯한 ‘반(反)오자와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오자와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시늉을 하겠지만,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그와 결별하는 길은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민주당의 대표가 하토야마에서 간으로 교체됐지만 결국 일본 정계를 주무르는 숨은 실력자는 여전히 69세의 오자와라는 얘기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도쿄 대학 이공학부 출신답게 ‘정치를 과학으로 풀어가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은 과학도답지 않게 늘 갈팡질팡했다는 것이 주위의 촌평이다. 전문가들은 “간 총리도 도쿄 공업대학 이공학부 출신답게 집요하게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나쁜 버릇이 있다. 정치를 과학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순리적으로 풀어간다면 간 정권이 장기 집권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한다.

기자명 도쿄· 채명석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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