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

〈시사IN〉은 삼성 비자금 존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200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시사IN〉 7호에 실린 김 변호사의 양심선언(“나는 삼성과 공범이었다”)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은밀한 성역을 발가벗겼다. 올해의 인물은 100인 자문단의 설문을 거쳐 편집국에서 결정했다. 김 변호사의 행위를 보는 시각은 다양했지만, 〈시사IN〉 편집국은 그의 문제 제기가 한국 사회를 좀더 투명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중시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88만원 세대’ 또한 올해의 인물 주요 후보로 거론되었음을 밝혀둔다. 분야별 올해의 인물과 최악의 인물도 함께 선정했다.

“내 방에 있어.” 요사이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으면 김용철 변호사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김 변호사가 말하는 ‘내 방’은 검찰청 조사실이다. “직업이 참고인”이라면서 김 변호사는 검찰청을 편안하게 생각한다. 검찰 수뇌부에서 부르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져, 검사가 오지 말라는데도 아랑곳없이 김 변호사는 거의 매일 검찰청에 출근한다. “수사의 기본은 밀행, 신속이다. 삼성이 지금 자료를 태우고 있는데 그냥 누워 있을 수만은 없다.”

김용철은 ‘검사의 정의감’을 품고 산다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찾아온 직후 기자는 김 변호사를 처음 만났다. 당시 이학수‧김인주 등 그룹의 최고위층이 직접 나서 김 변호사를 설득하려고 했다. 회유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그들이 자신을 납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김 변호사는 젖어 있었다. 사제단은 김 변호사의 거처를 이틀에 한 번꼴로 옮겼다. 김 변호사는 성당 사제관 세 곳, 호텔 여섯 곳 그리고 절에 숨기도 했다. 기자는 사제단과 함께 김 변호사의 도피 생활을 도왔다. 그러는 동안 인간 김용철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김용철. 그는 ‘검사스럽다’. 생각이며 행동이며 말투가 아직도 영락없는 검사다. 김 변호사는 검사였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검사를 그만둔 것을 억울해했다. ‘검찰이 썩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김 변호사는 대부분의 검사는 반듯하다며, 검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도 김 변호사는 검사이고 싶은지도 모른다.

김 변호사는 성격이 까다롭다. 자존심 세고,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안다. 그런데 김 변호사는 사제단 신부들에게는 절대 복종하고, 예의 바르다. 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김 변호사와 생활하면서 그가 정말 어려운 길을 택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용기와 신념에 감복해 순간적으로 구두 방향을 돌려주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변호사와 시민단체 사람들은 무뚝뚝하게 대했다. 때로는 말투 때문에 변호사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마음을 상했다. 김 변호사에 대해 어느 신부는 고등학생 같다고 했다. 한 시민운동가는 공범자가 너무 거만해졌다고 했다. 특수부 검사와 법무법인 ‘서정’에서 함께 일했던 권성동 변호사는 “용철이 형은 자존심이 굉장히 센 분이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은 무례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변호인단의 이덕우 변호사는 “김 변호사가 매우 똑똑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검사 앞에서 책상 걷어차고 가방 던져

기자들이 핵심을 벗어난 질문을 하면 김 변호사는 면전에서 “공부 좀 하라”고 핀잔을 준다. 검사 앞에서 가방을 던지고 책상을 걷어차기도 한다. 김 변호사는 화가 나서 기자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김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오해를 풀고 일을 마무리했다. 뒤에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김 변호사가 삼성 인사에 관한 험담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몇 번이나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얘기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검사들에 대해서는 더욱더 그랬다.

김 변호사는 돈을 잘 안 낸다. 근래에 돈을 벌지 못하는 탓도 있다. 하지만 검사의 속성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는 잘한다. 호텔에서 짐을 정리하다 말고 김 변호사는 자신이 입고 있는 양복을 벗어주었다. 사양하자 다른 물건을 주려고 했다. 다시 사양하자 김 변호사는 “너는 평생 못 입어볼 좋은 옷인데 몰라서 그런다”라고 말했다. 한 번은 김 변호사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그는 안 입는 옷이라며 옷과 넥타이를 잔뜩 들고 나왔다. 물론 안 입는 옷이 아니었다. 김 변호사의 부인은 “김 변호사가 원래 주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특히 후배들에게 옷 주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삼성에 다닐 때 김 변호사는 모교인 고려대에 1억원을 기부했고, 처남에게는 아파트를 사주기도 했다.

 

ⓒ시사IN 안희태11월28일 검찰에 출두하는 김용철 변호사(가운데). 김 변호사는 “검찰청에 출근한다”라고 말했다.

1997년 김 변호사는 전두환 비자금 수사를 하다가 쌍용 김석원 회장이 관리하던 비자금을 찾아냈다. 그런데 상부에서는 수사를 못하게 했다. 평생 수사 검사이고자 했던 김용철은 사표를 던진다. 김 변호사는 “검사에게 수사하지 말고 덕을 쌓으라니 나가라는 소리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검사 초년병 때 월부로 타자기를 샀다고 한다. 전화도 자비로 놓았고,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으면 전화를 뜯어갔다고 한다. 선배들은 책상과 의자가 없어서 지역 유지들이 걷어 주는 전별금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검사가 스폰서를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김 변호사는 “검사 1년차에 부모님께 1000만원을 받았는데 아버지께서 어설프게 똑똑한 자식을 두어 힘들다고 하셨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1997년 8월1일 변호사 업무를 안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삼성에 입사했다. “국가 다음으로 망할 염려가 없고 월급이 잘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사실 아들 녀석 대학 등록금은 빚 안 얻고 벌었으면 하는 가난한 검사의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삼성에 들어간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고 김 변호사는 고백했다.

“삼성이 검찰을 망가뜨리고 있다”

김 변호사는 삼성에서도 잘나갔다.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가려고 검사 때처럼 일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 7년간 그룹의 관제탑이라는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에 들어가 재무팀과 법무팀에서 일했다. 한때는 1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하루 만에 부산에 문상을 갔다 오려고 삼성의 전용 제트 비행기를 띄울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누렸다.

그런데 삼성에서 젊은 검사를 타락시키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그는 괴로워했다. 여러 번 출근을 안 하고 도망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검찰 출신이니 검찰 내 인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이게 가장 힘들었다. 물론 안 한 건 아니지만 견디기 힘들었다. 삼성 돈을 되돌려주는 검사를 보면 눈물나게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승진을 해서 주요 보직에 올라가면 삼성이 사람을 못 쓰게 만드는 이런 구조에서는 더 이상 검찰에 희망이 없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김 변호사는 이 말을 되풀이했다. 김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다. 검찰과 삼성이라는 두 거대 권력기관에 몸담았던 김 변호사는 검찰이 삼성에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에 자괴감이 컸던 것이다. 김 변호사를 아예 사회 밖으로 내쫓으려는 삼성에 대한 반발과 구조본 인사들에 대한 사적인 감정도 한몫 거들었다.

막상 양심선언을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차가웠다.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예상했지만 삼성이 가족까지 파헤치며 매도하고 보수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 적는 데는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말이 하나 둘 사실로 밝혀지자 국민이 공감하기 시작했다. 김 변호사에게 사과와 양파를 보낸 농민이 있었다. 홍초를 보내고 보약을 지어 보낸 지지자도 있었다. 이름 없는 이의 격려 편지는 셀 수 없이 많다. 해외에서 응원 메시지를 전하는 이도 적지 않다. 김 변호사 부인이 하는 노래방에 지지 방문을 하는 고객도 많다고 한다.

이제 김 변호사의 가족은 평안을 찾았다. 부인 양 아무개씨가 적극 응원하고 있다. 양씨는 “삼성에 있을 때 사라졌던 자부심 같은 게 김 변호사에게서 다시 살아났다. 의사인 큰아들을 비롯해 전 가족이 응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제대한 둘째 아들은 “아버지다운 모습이 자랑스럽다”라고 했다.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둘째 아들과 영화를 보고 온 날 김 변호사는 “이만하면 내 역할을 한 게 아닌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함께 본 영화는 〈바르게 살자〉였다.

오늘도 김 변호사는 검찰청으로 출근했다. 출근길에 김 변호사는 “삼성이 바로 서야 이 사회의 부정부패를 추방할 수 있는데 삼성이 적당히 넘어가려고 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할 일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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