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공양을 한 문수 스님의 법구가 모셔진 경북 군위군 읍내 삼성병원은 1일 아침부터 전국 각지에서 온 스님들로 북적였다. 장례식장 입구에 삼삼오오 모인 스님들은 전날 4대강 사업과 정부에 항의해 강둑에서 자신의 몸을 불태운 문수 스님을 생각하며 침통해 했다. 스님들은 “분신이라고 하면 안 된다. 소신공양이라고 해야지”라며 한 목소리를 냈다. 스님들은 문수 스님이 겪었을 마지막 고통을 생각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특히 문수 스님과 소신공양을 하기 전날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지보사의 견월스님은 눈시울을 붉혔다.
지보사에 몸담고 있던 문수 스님(47)은 5월31일 오후3시께 군위읍 사직리 위천 잠수교 둑에서 휘발유를 몸에 뿌리고 정좌 자세로 불을 붙였다. 400여 미터 떨어진 인근 주유소에서 직접 산 2만5천원 어치 가량의 휘발유로 자신을 부처에게 바치는 소신공양을 한 것이다.
총무 스님인 견월 스님은 지난 5월30일 사찰에서 문수 스님을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3년 간의 선방 수행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스님은 평소답지 않게 그날 따라 뭔가를 결심한 듯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견월 스님은 “승가대 학생회장 당시의 이야기를 비롯해 개인적인 얘기를 해 놀랐다. 특히 4대강 사업을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데 왜 자꾸 하는지, 국민이 대통령을 뽑았는데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을 안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얘길 했다”라고 전했다. 문수 스님은 누군가 나서 4대강 사업을 막아야 할 게 아니냐는 말도 남겼다고 한다.
지보사에는 문수 스님을 비롯해 스님 4명이 있다. 모두들 말이 적은 문수스님과 많은 대화를 해보진 않았다고 한다. 문수 스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수행에 전념했다. 승가대학 17기로 문수스님과 동기이며 지보사 주지인 원범 스님은 “소신공양이란 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분신이 아니라 내 몸을 부처님께 바치는 행위다. 이전에도 연비라고 해서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 두 마디를 태웠다. 치열한 자기 수행의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문수 스님은 지보사에서 3년 간 수행에 정진하는 동안 하루에 한 끼 만 먹는 1중식을 했다고 한다.
묵언수행에 가깝게 말을 아꼈던 문수 스님이지만 가족들은 일찍부터 4대강 사업 등 정부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걸 알고 있었다. 문수 스님의 형 윤아무개씨는 두 달 전 마지막으로 문수스님과 통화를 했다. 윤씨는 “예전에도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우려스럽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더니 마지막 통화 때는 4대강에 대한 이야기만 하더라. 나 하나 희생되면 될런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설마했는데 날마다 선방이나 강가에 앉아서 그 고민을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문수 스님의 장례는 경북 영천 은해사 교구장 5일장으로 치르고 6월4일 10시 지보사에서 영결식과 다비식을 치르기로 했다. 장례위원장은 은해사 주지스님인 돈관 스님이 맡고 상주는 각운 스님·원범 스님·견월 스님이 맡는다. 서울 등 전국 곳곳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49제는 7군데에서 한다. 장소 등 세부사항은 다비식 이후에 결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