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고은 시인의 〈만인보〉 가운데 단 한 편의 시를 꼽으라 한다면, 나는 단연코 1권에 수록된 〈머슴 대길이〉를 들련다. 시인이 유년 시절 고향 마을에서 만난 상머슴 대길이 아저씨를 생각하는 회인시(懷人詩) 형식으로 쓰인 이 시의 강렬한 매력은,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가를 회상하는 시적 형식에 있을 터이다.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이었지요.”(3연) 이 진술에서 보듯이, 머슴 대길이 아저씨는 고은 시인에게 일종의 ‘최초의 기억’을 강력히 환기하는 의식·무의식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나는 그런 점에서 세계문학 사상 유례가 없는 이 〈만인보〉의 의미란 내 안의 ‘머슴 대길이적인 것’의 가치를 찾으려는 구도 여행이고, 우리 안의 ‘머슴 대길이들’의 참다운 사람됨을 개체의 생명성으로부터 귀납하려고 한 시적 형식이라 보고 싶다. 시인이 〈만인보〉 연작을 시작하면서 “오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 세계이다”(〈서시〉, 1권)라고 언명한 대목은 그 좋은 방증 자료가 될 터이다.
그렇듯 고은 시인은 〈만인보〉에서 진리란 너와 나 사이의 관계에 있으며, ‘남하고 사는 세상’(〈머슴 대길이〉, 1권)을 위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했던 ‘무명씨’들의 삶과 정신을 껴안으려는 화엄적 사유를 특유의 직관 언어로 분출한다. 그러나 고은 시인의 사유와 발성법은 이른바 근대적 서구시의 문법과는 차원을 완전히 달리한다. 김형수 시인이 ‘동참된 존재’라고 옳게 규정하듯이, 고은 시인은 어떤 종류의 체계와 질서를 세우려는 방식이 아니라, 그러한 체계 내지는 질서를 모두 지우고 돌파하려는 ‘직관’의 소유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고은 시인의 시를 ‘샤먼’의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만인보
시인은 마지막 시집 네 권(27~30권)에서 특히 5월 광주의 영령과 피해자들의 고통과 무수한 죽음에 주목한다. “1979년 다음 해를/ 1980년이라고 부르지 말자/ 그해라고만 말하자.”(〈이빨 두 개〉, 27권) 1980년 내란음모 혐의로 수감된 남한산성 내 2㎡의 육군교도소에서 시상(詩想)이 발아된 〈만인보〉는 이렇듯 5·18로 귀환하는 장대한 시굿의 형태를 취한다. 시인은 이 시편들에서 뜻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기억화를 통해 5·18 정신이란 있어야 할 현실을 추동하는 의미로서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 머무르는 현실이어야 함을 노래한다.
‘머슴 대길이들’의 건강한 삶
고영자, 김윤수, 윤상원, 최미애, 채이병, 채일병, 김충희, 김현녀 여사…. 이 ‘무명씨’들의 끝없는 행렬을 보라. 그 가운데 5월의 상징인 윤상원에 대한 시는 이른바 군사작전이 ‘상황 종료’된 후의 잔인한 적막을 복원해낸다. “윤상원의 총은 총이 아니라/ 5월의 상징/ 5월 광주의 의미 그것/ 그것은 끝까지 쏴버리지 않은 아름다움이었다 바다 파도였다.”(〈바다 파도〉, 30권) 나는 이 시를 보며, 고은 시인이 ‘만인보’를 주제로 한 2010년 광주비엔날레 국제 세미나에서 “일체가 봉쇄된 막다른 상황에서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이 시다”라고 한 말의 깊은 의미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그때의 시란, 어쩌면 아아아 모음뿐인 외침과 절규이리라.
〈만인보〉는 1980년 광주에서 발원해 광주 5·18 항쟁으로 귀환한다. 책장을 덮고 나니, 고은 시인은 결국 〈만인보〉 1부에 등장하는 비근대의 시·공간으로 가고자 그토록 무수한 만행(萬行)을 했구나 생각하게 된다. 비천한 신분이되 결코 천박하지 않은 ‘머슴 대길이들’의 건강한 삶이야말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이고, 결코 모욕되고 훼손될 수 없는 아름다운 삶이라는 깨달음을 〈만인보〉는 말하고 있다. 이 무수한 ‘무명씨’를 보라!
그 외 추천된 책:
〈지도〉(누르딘 파라·인천문학재단), 문학평론가 고영직 추천
〈고백의 제왕〉(이장욱·창비)·〈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신경숙·문학동네), 문학평론가 신형철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