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스웨터에 헐렁한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는 늘 이런 차림으로 무대에 선다. 중요한 신제품을 발표할 때도 예외가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청바지가 더 헐렁해진 정도다. 쉰다섯 살 CEO의 차림으로는 파격이다.

애플은 최근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추월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Windows)라는 컴퓨터 운영체계(OS)로 30년 이상 세계를 주름잡은 테크놀로지 제왕이다. 이런 기업을 애플이 제쳤다는 것은 세계 최고 테크놀로지 기업이 됐음을 의미한다. 스티브 잡스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휴대전화 업체의 한 간부는 스티브 잡스 얘기만 나오면 “그 친구 얘기는 들먹이지도 마. 밥맛 떨어져”라고 말하면서 손사래를 친다. 장난삼아 하는 말이지만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모바일 생태계를 바꾸는 바람에 고민이 늘었음을 암시한다. 무엇을 어떻게 바꿨기에 잡스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일까.

스티브 잡스는 1997년에 애플 CEO로 복귀했다. 당시 애플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회사를 청산하는 게 낫다”라느니 “애플은 이미 죽었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애플을 잡스는 13년 만에 세계 최고 테크놀로지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그래서 ‘마술’이라고들 말한다. 그가 사용한 마술 지팡이는 아이폰이다.

스티브 잡스의 마술은 알고 보면 간단하다. 협력사(파트너)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몰려들게 하는 것이다. 아이폰만 봐도 그렇다. 전 세계 개발자(개발사)들이 앞다퉈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올린다. 애플이 이들한테 통사정하는 것도 아니고 경진대회를 여는 것도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제공스티브 잡스(오른쪽)의 마술 덕에 애플의 시가총액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섰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에게 천국 열어줘

그들이 몰리는 것은 자기네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애플은 2008년 6월 아이폰 두 번째 모델을 내면서 앱스토어를 열었다. 앱스토어는 애플리케이션을 사고파는 사이버 장터. 누구든지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앱스토어에 올리면 매출의 70%를 챙길 수 있다. 개발자 처지에서 보면 천국이 열린 셈이다.

전에는 달랐다. 이동통신사나 휴대전화 메이커한테 철저하게 종속됐다. 이들은 갑(甲)이고 개발자는 을(乙)이었다. 아무리 좋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도 갑이 받아주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대가는 인건비나 건지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것이라도 하려고 개발사 사장은 이동통신사 실무자한테 굽실거려야 했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를 열광하게 하는 마술도 부린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간파해 신제품을 만든다.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성능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잡스는 소비자 직관을 더 중시한다. “써보니까 좋더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게 잡스 마술의 핵심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잡스의 이 마술에 당한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30년 이상 컴퓨터 OS 시장을 독점한 탓에 사실상 앉아서 장사했다. 소비자를 알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실수를 연발했다. 2007년 1월에 발매한 윈도비스타에 대해서는 ‘소비자를 깔보는 제품’이라는 혹평까지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업은 있다. 말로는 ‘상생경영’을 외치면서 협력사를 노예처럼 부리는 기업도 있고 소비자 편의보다 기술 과시에 주력하는 기업도 있다. 한여름에도 넥타이를 매야 하는 경직된 풍토도 바람직하지 않다. 애플처럼 되고 싶다면 스티브 잡스가 가진 마술의 비법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기자명 김광현 (한국경제신문 IT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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