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녀석들이 만든 자리치고 이름 한번 거창하다. ‘세심교 논문 발표회’란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열아홉 살짜리들이 논문은 무슨 논문? 세심교는 또 뭐고?  

의심과 의문을 번갈아 품은 채 초대장에 적혀 있는 주소대로 서울시 강북구 수유리 한 귀퉁이에 있는 허름한 다세대 상가 건물을 찾은 것이 지난 5월23일. 건물 지하실에서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선 청중부터 색달랐다. 명색이 논문 발표회인데 자리를 지키는 것은 1318 중학생·고등학생 30여 명이었다. 오프닝 세리머니 또한 ‘깼다’. 논문 발표회를 시작한다는 사회자의 안내가 끝나자마자 장내에 ‘왈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이날의 주인공인 김준혁·서인석·송성호 세 아이가 개 짖는 소리를 내며 무대에 등장한 것이었다.

ⓒ시사IN 백승기세심교의 세 친구는 스스로를 ‘세 개’라 부른다. 맨 왼쪽부터 서인석·송성호·김준혁군.
세심교는 ‘세 개와 심한개의 인문학교’ 준말이다. 세 개는 스스로를 ‘개’라고 지칭하는 세 아이 준혁·인석·성호를 말한다. 심한개는 이들의 교장이자 스승이자 도반인 심한기씨(45·‘품 청소년문화공동체’ 대표) 별명이다. 지난 1년간 심씨와 세 아이가 함께 꾸려온 인문학 수업 공동체가 바로 세심교이다. 또 인문학 얘기냐고? 이 아이들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쓰레기’ ‘양아치’ 소리를 예사로 듣던 아이들. 심지어 다니던 학교에서마저 사실상 퇴학을 강요받아야 했던 아이들이 1년 넘게 꾸준히 인문학을 공부해 급기야 논문까지 직접 쓰게 됐다. 인문학과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이들이 작은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일은 ‘너무 심심했던 차’에 불거졌다. 어릴 적부터 동네 친구로 어울려 다니던 세 아이가 중3이 된 어느 날, 현중이라는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우리 동네에서 ‘추락’이라는 걸 한다는데 거기 한번 가보지 않을래?” 추락(秋樂)은 ‘품 청소년문화공동체’가 매년 가을 여는 청소년 축제이다. 축제 얘기를 듣고 귀가 솔깃했다고 준혁이는 말한다. “PC방, 노래방 다니기도 지겹던 참에 재미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합류하게 된 축제 기획단.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별 감흥도 없었다. 그런데 기획이란 게 하면 할수록 단순히 축제에 참가해 즐기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쾌감이 크더라고 이들은 말한다.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들일 퍼포먼스를 구상하고, 신종 게임도 만들어보고. 학교에서는 쓸모없었던 ‘끼’를 맘껏 발산하며 이들은 잘 놀고 잘 뒹굴었다.

‘세 개’라는 닉네임을 지은 것도 이즈음이었다. 아이스크림 한 통을 서로 먹겠다고 머리 박고 싸우다 반짝 떠오른 이름인데, 심한기 대표 말대로 어찌 생각하면 동네 똥개들이나 자기들이나 다를 바도 없었다. 평소 할 일 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뭔가 시빗거리 하나 생겼다 싶으면 콧구멍 벌렁대며 킁킁거리기도 하고, 신나는 일이 있으면 온 동네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오, 좋다, 개! 우리, 개처럼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살자.” 셋은 그렇게 의기투합을 해버렸다.

고3 문턱에서 시작한 인문학 공부

그렇지만 찧고 까불면서 즐겁게 사는 것만으로는 뭔가 공허했다. “축제 기획을 할수록 바탕이 부실하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내가 말로만 떠드는 사기꾼이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라고 인석이는 말했다. 그때였다. 욕 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심한기 대표가 어느 날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이 ×탱이들아, 언제까지 놀기만 할 거냐?”(이 대목에 대한 심 대표와 아이들의 기억은 엇갈린다. 심 대표는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로 이렇게 권유했다고 우긴다. “얘들아~, 이제 공부 좀 해보지 않으련?”)

줄탁동시(안과 밖에서 함께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 공부의 필요성을 이제 막 느끼고 알에서 깨어나려는 아이들에게 스승이 때마침 손을 내민 셈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고2 겨울방학에 이뤄진 거사라는 점이다. 남들은 너나없이 입시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고3 초입, 느닷없이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이들에게 주변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품청소년문화공동체세심교의 세 친구는 스스로를 ‘세 개’라 부른다. 맨 왼쪽부터 서인석·송성호·김준혁군.
그러거나 말거나. 2009년 2월19일.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짧을 10분짜리 입학식과 함께 이들은 세심교를 열었다. 사실 인문학이 뭔지는 누구도 잘 몰랐다. 그러나 “인문학은 내가 누구인지, 잘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해주는 학문이다”라는 심 대표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준혁이는 말한다. 그로부터 1년. 세 사람의 성장은 눈부시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세상과 나, 과거와 미래, 모든 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준혁이는 말했다. 성호는 “예전에는 막연한 꿈만 좇으면서 내게 꿈이 있는 줄 알았다. 지금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보면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힘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평생 그럴듯한 책 한 권 읽어보기는커녕 교보문고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녀석들이었다. 심 대표 또한 이런 일을 벌여본 건 처음이었다. 제대로 된 교실도, 교사도, 교과서도 없는 학교. 그러나 이들은 몇 가지 규칙에 합의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공부하되, 자유롭게 사유하고 실천할 것. 그 무엇도 울타리에 가두지 말 것. 단 수업이 끝난 뒤 각자 작성하기로 한 수업일기만은 꼭꼭 세심교 홈페이지에 올릴 것.   

실제로 수업은 자유자재로 진행됐다. 필요하면 그때그때 서점·박물관·도서관도 찾아다녔다. 그러던 와중에 논문을 써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대학교 4학년 때 논문을 쓰면서 나 자신이 크게 성장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은 대학 학부 과정에서도 사라진 논문 쓰기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라고 심 대표는 말했다.

아이들은 예상 외로 흥미를 보였다. “내 생각대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게 논문이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엄청 흥분이 됐다”라고 인석이는 말했다. 그렇지만 자칫하면 흥분‘만’ 하다 끝날 판이었다. 논문 준비 초반, 감을 잡지 못한 아이들은 대백과사전 하나를 써도 될 만한 주제를 논문 주제랍시고 내놓곤 했다. 그 와중에 주변과의 마찰은 커져만 갔다. 대학을 안 가겠다는 자식들에게 두려움까지 느끼는 부모를 설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 또한 ‘공부 안 하고 뭐 하는 짓이냐’고 이들을 달달 볶았다. 한국의 공교육 과정에서 인문학 공부는 공부가 아니었다. 고3 여름, 담임에게 “선생님은 대학만이 길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편지를 썼던 성호는 그 뒤 졸업하는 날까지 교실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해야 했다.

5월23일 논문 발표회는 이 모든 시련을 거쳐 만들어진 자리였기에 감동을 더했다. 일명 ‘개소리’라 이름붙인 이들의 논문 주제는 각각 집착(준혁), 오류(인석), 나의 삶 해부하기(성호)였다. 이들의 논문은 기성 논문과는 달랐다. 발표 중간에 퍼포먼스를 끼워넣기도 하고, 3200명도, 320명도 아니고 불과 32명에게 물었다는 설문 결과를 당당하게 연구 내용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객관과 논리보다 우리 스스로의 상상력을 불어넣고 싶었다”라고 인석이는 말했다.

이들은 어쩌면 ‘김예슬 선언’을 일찌감치 실천한 10대일 수도 있다. 김예슬이 대학생이 되어 깨달은 대학의 허구를 이들은 ‘고딩’ 시절 일찍이 간파했다. “일류대에 입학해야 좋은 직장, 달콤한 연봉이 보장되고 그래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확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라고 인석이는 말한다. 그는 논문에 이렇게 썼다. “이렇게 결코 사실이 될 수 없는 사실들이 하나둘씩 보편화되고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해가면서 다른 이면의 가능성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들의 앞날이 어찌 될 수는 알 수 없다. 2월 졸업 이후 명실상부 ‘백수’가 된 세 사람이다.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하는’ 가치의 전도에 저항해 수능과 대학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공부하는 데 필요하다 싶으면 대학을 다시 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계획이 없으면 없는 대로, 앞날이 어둡게 느껴지면 느껴지는 대로 나는 지금 충분히 당당함을 알리고 싶었다”라고 준혁이는 말했다. “과거에는 돈 많이 벌면 행복할 줄 알았다. 지금은 공부하고 깨치며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라는 성호는 논문 발표회 말미, 앞으로도 재미있는 냄새를 찾아다니며 순간순간 즐겁게 살자고 남은 두 마리 개를 선동했다. ‘개처럼 미친 듯 자유롭게.’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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