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씨 앞에 놓인 안주가 두 시간 째 그대로였다. 고기를 안 먹는다기에 새로 주문한 김치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안주 없이 소주잔만 들이켰다. 대신 학생들이 자리로 찾아와 한잔 청할 때마다 그들에게 김치전을 떼어 먹였다.

5월20일, 인하대 축제에서 사회를 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게스트 한 명 없이 말솜씨 하나로 혼자 90분간 수백명 관객을 들었다 놓았다. 관객 중 한 커플의 프러포즈를 성공시키고 큰 절을 하는 걸로 무대를 마쳤다. 무대에서 특유의 ‘오쿄쿄쿄’ 웃음을 보이던 그가 술자리에선 잘 웃지 않았다. 표정은 그래도,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인생의 전성기라 했다. 테이블엔 빈 술병이 늘어갔다.

ⓒ시사IN 조남진김제동씨는 ‘슬픈 자리에서 슬퍼하는 게 정치적인거냐’라고 반문했다.
학생들이 운영하는 주점에 앉자마자 학생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아이돌이 아니라서 이러다가도 금방 정돈될 거라고 자신했지만 사인을 받으려는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불쌍하지 않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방송을 안 해도 비싼 전세집에 살고 돈도 많다고 했다. 지켜주겠다며 힘내라는 분들께 송구스럽다고 했다. 지난해 KBS 스타골든벨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하차한 뒤 외압설이 돌았다. 예능인에게 좌파 딱지가 붙었다. 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사회를 본 이후부터였다. 팔순 노모는 공중파에서 그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지자 설에 떡도 뽑지 않겠다고 했다. 마침 만난 날, 이미 한 회 녹화를 마친 케이블TV ‘김제동쇼’의 방송이 늦춰진데 이어 예정된 녹화마저 취소된 사실이 확인됐다.

5월23일,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모제 사회를 보러 봉하마을에 내려갔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신념의 문제였다. 그는 자신의 모든 발언과 행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데 지쳐 있었다. 꼭 써달라고 부탁한 내용이 있다. 문재인 변호사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또 사회를 보는 김제동씨의 밥줄이 끊어질까 걱정’이라며 그 내용을 꼭 써달란 적이 있다. “제발 꼭 써달라. 걱정하지 마시라고 제발. 그런 걱정하는 게 걱정이라고” 김제동씨가 그렇게 화답했다. 1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딴지일보의 김어준씨는 추모사 말미에 ‘남은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라고 말했다. 남은 세상, 남겨진 사람 중 하나로 어떻게든 해보려던 예능인에겐 다소 가혹한 1년이었다. 그와의 인터뷰 전문을 소개한다. 소주 한잔으로 편하게 시작한 자리였고 김제동씨는 취중진담, 속내를 드러냈다.

요새 어떻게 지내나. 생각이 많은 것 같다.
대학 축제도 하고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 생각은 많은데 실천하지 못해서 문제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려고 추진하는 단계다. 요즘 내가 사는 방식에 관해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다. 내가 사는 방식이 아니라 해석의 문제인 것 같기도 같다.

사는 것은 같은데 바라보는 사람들이 달라진 것 같다.
그걸 탓할 수 없다. 고객은 왕이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 사람은 틀릴 수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틀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기본적으로 이뤄진 공감대에 기초한 건 옳은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이 옳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대중이 항상 바른 판단 내리는 건 아니다.
나는 예능 하는 광대이고, 딴따라다. 딴따라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무대 위에서의 관객들이 한 번도 틀린 판단을 한 적 없었다. 그 당시보단 긴 세월 두고 봤을 때 사람들의 판단을, 세월 속에서의 사람들의 판단을 믿는다. 옳은 방향으로 갈 거라고 생각한다.

ⓒ뉴시스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 사회를 본 김제동. 그는 올해 또 사회를 봤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했다.
본인이 정치적인 얘기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본다. 부담스럽지 않나?
부담스럽다기 보다 이해한다. 그러나 동의할 수는 없다. 정치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이전에도 마찬가지였고 앞으로도 그렇고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상식들, 그것에 기반한 웃음에 대한 의지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걸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 있다면 그것 또한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웃기고 싶다는 대전제에서 웃긴 걸 웃기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 던질 수 있는 자유는 사회자에 있다. 청중에게도 자유가 있다. 타인에게 피해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끊임없이 자유가 필요하다. 

모든 게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사회를 봐서 그렇게 된 거 아닌가?
정치적인 행사가 아니었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고, 국민장이었다. 국민들이 강요받지 않고 슬퍼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미의 자리였다. 꽃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꽃을 바칠 수 있어야 하고, 슬프지 않은 사람은 애도하지 않을 권리 있다. 애도할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 정치 행사 아니었다. 광장 나온 사람이 5백만명, 6백만이었다. 나는 5백명 6백명 모여도 섭외 받아 간다. 웃음을 줄 수 있다면. 적어도 나에겐 정치적인 이념은 없다. 16대 대통령이었던 사람이다. 돌아가셨다. 거기에 대해 애도하는 게 정치적인 것인가. 어떻게 그걸 정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동네 같으면 그 사람과 은혜가 있었건, 원한이 있었건 삼일장을 치루면서 상갓집에서 술 마시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이러는 거다. ‘슬픈 자리에서 슬퍼하는 게 정치적인거냐’라고 반문하고 싶다. 

노제 사회 이후, 진행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하차했다.
통상적인 개편에 의한 일련의 과정도 있다. 그것까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다. ‘환상의 짝꿍’은 개인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진행자 바뀌어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유명한 사람 자제분들이 아니라 보통 아이들이 나오고 부모님들 나와서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사회자 바뀌어도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타골든벨’의 경우, 통상적인 절차를 벗어났다. 그것은 나한테 물어보면 안 된다. 99%의 원인은 항상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산을 올라가면서 힘들면 체력 단련이 덜 된 거다. 산이 높은 건 그 다음 문제다. 열심히 내 나름대로 만들었지만 완벽한 프로그램,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손댈 수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했다. 내부요인 충분히 찾고 만일 외부에 요인이 있다면 외부 촉발시킨 분들한테 여쭤보시라. 

KBS는 외압설 부인한다.
외압이었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하면 정말로 그렇다고 하면, 아~~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내부로부터의 처절한 반성, 우리가 우리 것 지켜야 한다는 것들에 대해 그 반성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심 잃었던 부분, 사람에 함몰된 부분 많았던 것들 있다. 다행히 직접 만나러 다니며 소통 창구 생겼다. 요즘 솔직히 행복하다. 인생의 전성기다. 하고 싶은 일들을 역설적으로 다 하고 있다. 다른 외부 요인 없더라도 한번쯤 연예인들이 겪는 슬럼프다. 그걸 너무 정치적 의미로 엮고 싶지 않다. 가끔 이런 생각 한다. 무협지에서처럼 뭐가 툭 떨어졌는데 우연히 삼천년 묶은 거북이가 엄청난 비법을 토해낸 거, 그걸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다. 단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사람들 안에 있었던 것들인데 잊고 살다가 발견한 기쁨이다. 카메라 뒤에 있던 사람들 잊고 살았다. 직접 카메라 거치지 않고 만나면 저렇구나. 아 내가 이랬었지 하는 것들을 느낀다. 

권력 주변에 경상도 출신이 많다. 그쪽 출신인데 지인들이 말리는 분위기는 없나.
축제 사회 볼 때의 사람으로 봐 달라. 연예인 인터뷰 아닌 것 같다.(웃음)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연예인의 사회 참여에 대해 시선이 곱지 않았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파의, 정당의 이득, 계층의 이익을 위해 돈 받고 행사한 적 없다. 어떤 정당이나 정치 집단의 이해관계에 관여한 적은 없다. 그런데 자꾸 해석이 되어 대단히 부담스럽다. 내가 무얼 했다고. 돌아가신 분 제사에 가서 마이크를 들었을 뿐이다. 이번에도 간다. 신념이다. 신념을 표출할 자유 있다. 웃겨야 할 사람들이 정치적 색깔을 어쩔 수 없이 입는 거, 그것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 그게 사람들한테 미안하다. 그것 때문에 웃음이라는 최고의 가치를 뒤에 두어야 할 때가 있다. 그것 때문에 속은 상하지만 그래도 가야겠다. 저의 최고의 가치가 웃음이라는 건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다. 가야 된다. 사람들은 숨만 쉬어도 정치적이라고 한다. 물론 편하게 사는 법을 안다. 하지만 그것이 더 편하게 사는 길이 아니다. 그러면 잘 때 불편할 것 같다. 

신념대로만 세상을 사는 게 쉽지만은 않다.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민감한 문제지만 우리 조카가 해군을 갔다 왔다. 나는 독자였기 때문에 신체 건강했지만 방위 갔다. 천안함에서 생떼 같은 애들이 죽었다. 원인이 어디 있든 삼촌 같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나가서 싸울 것 아닌가. 조카가 맞았는데. 북한이든 중국이든 어느 나라가 했든 마찬가지다. 문제는 조카가 누구에게 어떻게 맞았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좌파인가? 나는 민족주의자에 가족을 중시하는 아주 아주 전형적인 경상도 놈이다. 다만 우리 조카들이 무방비 상태에서 죽어나가게 한 사람들이 먼저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 누가 때렸든지 간에 막고 통솔하겠다고 해서 수련원에 보낸 것 아닌가. 그렇게 보낸 애를 누구한테 맞았든지 간에 다치게 한 보호자들이 적어도 사과해야 한다. 보호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삼촌 마음 아닌가, 진짜 봐야할 건 이 아이들이 죽은 것이다.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때렸다면 북한이 책임져야 한다. 때리게 만든, 허술하게 울타리를 쳐 놓은, 몇 십 년 간 국방비 쓰고 어깨 힘주고 했던 사람들 도대체 뭔가. 그 사람들 사과해야 한다. 그 다음에 보복을 하든, 어떻든 할 수 있다. 사람들을 낭떠러지로 이끈 인솔자들이 낭떠러지로 민 사람들을 욕할 수 있는가. 적어도 그 낭떠러지 앞으로 데려가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시사IN 조남진김제동씨는 자신에 대한 걱정을 그만 해달라고 했다. 자신은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웃음 끝 뒤에 서린 어두운 그림자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는 우울증 약도 먹고 수면제도 먹는다.
가족들의 걱정도 클 것 같다.
나를 낳고 아들 낳았다고 3일간 있는 돈 없는 돈 다 부어서 잔치를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100일 잔치 전에 돌아가셨다. 애와 남편이 바뀌었다고 외할머니가 미워했다고 한다. 어머님이 그랬다. “이번에 네가 가면 죽는다. 또 가면 죽는다.” 팔순 노모다. 어떤 압력이 아니라 엄마가 부담스러워 한다. 누가 봐도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라 죽어있는 권력 아닌가. 정승의 권력이 아니라 정승을 실제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가야하는 것 아닌가. 그게 죄인가, 어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리, 거기에 무슨 정치가 있는가.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것이다. 

김제동은 트위터에 글 한 줄만 쓰고, 한숨만 쉬어도 난리가 난다.
나는 돈이 많다. 상상하는 이상으로 돈이 많다. 비싼 전세집에 살고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행사도 많고 토크 콘서트도 잘 된다. ‘지켜주겠다’고 하는 말 들을 때마다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 고마움이 격해지면 미안함이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경제적 조건만 보면 기득권 중의 기득권이다. 많이 받았으므로 그만큼 많이 돌려 드리겠다. 나는 야한영화 보면 환장하고 돌아버리겠다. 슬픈 영화 보면 눈물 흘리고, 예쁜 여자 보면 좋고, 가슴 속 울컥 하면 울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나의 얼굴이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라. 이제 관심 많이 받았으니 돌려드릴 때다. 나에 대한 걱정 거두어 달라. 방송에 안 나온다고 죽은 거 아니다. 어머니는 일 끊겼다고 설 때 떡 안 뽑겠다고 하는데 걱정하지 말라. 내가 사람들을 위해 할 일 준비하고 있다. 보시는 것만큼 불쌍한 사람 아니다. 최근 문재인 변호사님 인터뷰를 신문에서 봤다. ‘김제동씨 일 끊어질까 걱정이라고 꼭 써 달라’라고 했더라. 나도 이 말 꼭 써 달라. “걱정하지 마시라고 제발. 그런 걱정하는 게 걱정이라고.” 사람들하고 학생들하고 강한 연대감과 유대감 느낀다. 오늘도 아무것도 없이 한 시간 반 동안 얘기했다. 나는 사람들만 있으면 된다. 충분히 웃길 자신이 있다. 변호사님이나 잘 하시라고. 변호사님보다 훨씬 돈 많고 잘 살 것이다. 내가 돈 더 많을 것이다.(웃음) 하지만 이 돈이 어디서부터 온 건지 다 알고 있다. 내 줘도 큰 손해도 없고 이기적인 생각도 있어서 받은 거 이상으로 돌려줄 생각도 없고 적당히 돌려주고 칭찬받으며 살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때 마이크를 잡았다.
정당행사가 아니다. 17대 대통령 취임식 아닌가. 요청 왔다. 거기 있는 사람들 재밌게 해줬다. 파란색 머플러 두르고 웃었다. 당선되고 대통령 되신 분 축하하는 자리 아닌가. 적어도 그 자리에서 축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버드대에 가서 외국 학생이 그랬다. “당신도 참 파란만장한 삶이다. 대통령 취임식 때 사회보고 전직 대통령 추모제 사회 보나?” 내가 파란만장한 게 아니라 파란만장한 일이 생겨났다고 했다. 신념 지조의 문제가 아니고 대통령 취임식 사회는 가서 축하해주고 했다. 앞으로 이런 다양성들 존중해 달라. 좋은 일이지 않는가. 지금도 똑같은 생각이다. 잘되길 바란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노무현 재임 때 나도 비판한 적 있다. 그 당시 비판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 웅변대회에서 1~2등 했다. 그 때 주제가 고 육영수 여사에 관한 것이었다. 울컥해서 울면서 했다. 그때도 진심이었다. 사람이 돌아가셨지 않았는가. 그 어떤 정치적 견해 떠나서 사람이 죽었다. 어렸을 때 광주민중항쟁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저 나쁜 자식들’ 이랬다. 그때 사회가 그들을 폭도로 몰았고 정서가 그랬다. 반대하면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존경하는 사람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적었다. 대학교 가서도 마찬가지다. 그걸 무지했던 세월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정치적 자유고 개인적 잣대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돌아가신 분이 가지고 계셨던 각론 아니라 총론에 대해 인간적인 존중을 가지고 있다. 각론에 반대할 수는 있다. 그것까지 반대하면 숨 쉬지 말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에게 빚 못 돌려받고 이 갈던 사람들도 아버지 장례식에 왔다. 그게 도리고 예의다. 나는 내 도리와 예의 지키고 살겠다. 그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치질 않는다면 말이다. 

ⓒ시사IN 양한모시사IN 미술팀장이 만든 캐리돌 김제동. 김씨가 수려한 말 솜씨를 뽐내며 마이크를 잡고 브라운관에 돌아올 날은 언제쯤일까?
최근 이미 녹화된 ‘김제동쇼’ 방영이 미뤄지고 있는데.
6월 개편 때문에 상황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녹화를 했다. 방송국도 사정이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거 있나. 요새 뭐하나.
등산 좋아한다. 산에 업히러 간다, 야구도 좋아한다. 주위 친한 사람과 가금씩 술 먹고 그게 제일 좋다. 잠자는 거 고통스러웠는데 그것도 견뎌야 할 것이다. 우울증 약도 먹는다. 수면제를 먹기도 하고.

언제부터 먹었나.
6개월, 8개월 정도 됐다. 1~2주 먹다가 안 먹고 그랬던 적도 있고. 불면증이 있다. 비행기 타면 잘 잔다. 내 옆에 잠들지 않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잘 잔다. 

외로워 보인다. 만나는 분 없나.
여자들이 날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다. 만나보면 대놓고 못생겼다고 안 한다. 진지한 만남 가진 적도 있다. 사람들 사이 어깨동무, 연대, 함께 있음. 나는 이게 가장 중요하다. 요즘 나 보며 큰 사상 가진 사람으로 여기는데 나 아주 개차반이다. 눈 마주치면 시비도 붙고 그게 사람 사는 거 아닌가. 피 철철 흘리면서 경찰서 가서 화해도 하고, 철퍼덕거리면서 되게 친해지고 그런 것처럼 말이다. 평범하게 살고 있다. 내면의 불안함, 우울한 정서. 그런 이면이 있기는 하다. 누나의 아들이 아기를 낳아서 할아버지가 됐다. 경상도 남자라 표현은 못했지만 어찌 그리 예쁜지. 눈에 아른 거린다. 애 낳고 싶어 죽겠다. 아빠라고 한 번도 불러본 적 없어서 아이가 나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거 듣고 싶다.

근래 들어 한 가장 큰 실수가 있다면.
이 인터뷰에 응한 게 실수 같다(웃음). 근래 들어서 사람들에게 걱정 끼친 게 좀 그렇다. 어찌됐든 의도한 게 아닌데 자꾸 나를 안 되게 보고 웃음을 주어야 하는 사람인데 자꾸 웃음이 아니라 걱정을 하게 했다. 제작진한테 미안하다. 앞으로 섭외하려는 제작진에게 미안하다. 일했던 PD 결혼식 사회를 봤다. 마지막까지 일했던 피디이다. 작가들과 등산도 한다. 그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싸울 건 싸울 것이다.

한 일간지 논설위원이 내 하차 이유를 제작진과의 불화로 칼럼을 썼다. 불화 있을 수 있다. 없는 게 이상하지 않나. 게이트키퍼하고 일선 기자들 사이 불화 없는 게 비상식적인 것처럼 말이다. 총학생회장과 총장과 불협화음 자연스럽듯 단체장이 있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불화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 그게 흔히 말하는 민주주의이고 협의다. 그런 불화 있었던 것 은 인정하지만 프로그램 닫을 만큼의 불화는 없었다. 언론에 그런 불화 없다면 존경한다. 프로그램 하면서 충돌이 좀 있고 그래도 좋아하는 PD형이 결혼식 할 때 사회보고 작가랑 등산 갈 정도의 어깨동무하고 있다. 싸울 때도 있지만 인간의 문제로 들어갈 때는 전혀 다른 얘기다. 

이승엽 선수가 요즘 좀 부진하다.
잘 될 거다. 형의 입장에서 동생 놓고 애기하자면 이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할 만큼 했다. 역대 한일전 하이라이트, 국가대표 태극마크 단 거 보면 안다. 승엽이를 욕하지 말라. 내 욕은 참아도 승엽이 욕하는 거는 못 참는다. 승엽이 문제는 이해도 동의도 못한다. 

무대에서 마지막에 꼭 큰절하더라. 어떤 느낌인가.
수천 명, 수만 명이 호흡하고 느끼고 있다. 눈빛으로 박수로 함성으로 얘기하고 있다. 무대에 서게 만든 사람들, 마이크의 존재 이유가 그들이다. 고맙지 않을 수 있나. 난 아이돌도 아니고 보잘 것 없다.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사람일 뿐이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 저는 몸을 낮춰야 한다. 내가 마이크 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마이크 줬기 때문에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 글 속에서 가장 깊숙이 새기는 말이 ‘나무로 굳건히 서 있되 더불어 숲이 되자’라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만 계속 나면 어떻게 하나. 개천 지킬 사람이 없다. 송사리, 빠가사리, 이름 없는 피라미들의 조그마한 연대가 개울을 이루는 원천적인 요소들 아닌가. 용은 자기를 키워준 하천을 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연대해서 어깨동무해야 한다. 멋진 부자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멋지게 살고 최선 다해 어깨동무하고. 상식 주장하는 사람들이 멋있었으면 좋겠다. 유기농 해서 몇 십억 벌고 이러면서 멋있게.

숨만 쉬어도 정치적이라고 한다. 다 접고 산에 갈까 이런 생각도 했다. 법정스님 말 생각했다. 도는 원래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야한다고. 큰절할 때의 연대의식이 있다. 무대 위라는 표현 안 쓴다. 무대는 원래 위아래 없다. 

하루 일과가 요즘 어떤가. 아침 6시에 잔다고 들었는데
매번 다르다. 많이 자진 않는다. 나는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고 있다.

어떤 책 읽나.
어렸을 때 다쳐서 6개월 간 외삼촌댁에서 책만 봤다. 그때 읽은 게 자산이 많이 됐다. 알랭드 보통 책 많이 읽었다. ‘불안’ 장진영 누님이 추천해 읽었다. 신문도 챙겨본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웃기는 게 목표다. 무대에 섰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그렇게 살아왔다. 방송은 무대만큼 편하지 않다. 무대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대안 학교를 세우려는 계획이 있다. 지금 진행중이다. 대안 학교도 귀족화 된 측면이 있어서 그런 것 없이 어떤 학생들이라도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학교 만들고 싶다.

기자명 임지영 주진우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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