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왼쪽),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 소식은 여러 모로 미묘한 파장을 낳았다. 공연 자체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나, 공연 날짜가 하필이면 2월26일, 한국의 대통령 취임식(2월25일) 바로 다음 날인 것이다. 통상 2월에서 4월 사이에는 외부 행사를 갖지 않는 북한의 관례상으로도 이례적 일이다.

이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새로 출범하는 남한 새 정부에 대한 무언의 시위, 또는 2008년 북·미 관계의 대 역정을 예고하는 진군나팔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내의 한 대북 전문가는 “뉴욕 필 공연 때 대북 정책에 관여해온 미국 전문팀들이 대거 평양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뉴욕 필 공연은 2008년의 대공세를 앞둔 ‘꾼’들의 향연이다”라고 규정했다.

이들에게 2008년은 실로 대망의 해라고 할 수 있다. 클린턴 정권 말기인 2000년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이후, 한 걸음을 더 내딛지 못해 7년여의 공백기를 맞았던 이들에게, 내년은 바로 북·미 관계의 클라이맥스인 것이다. 그 선봉장은 역시 라이스 국무장관이다. 라이스는 공화당 현실주의 계보, 즉 ‘꾼’들의 실질 대표이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임무를 교대하는 의미도 짙다.

따라서 뉴욕 필의 평양 공연 소식과 함께 라이스의 평양 방문 얘기가 워싱턴에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최근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즉 내년 1월에 6자회담을 재개해 북한의 핵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 그리고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제외 문제가 해결되면, 4월에 6자 외무장관 회담을 연다. 그것을 계기로 4월 말에 라이스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외교대표부 교환 설치에 합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라이스 방북 문제가 논의됐던 올해 1월 베를린 북·미 회담을 떠올려보면, 4월이라는 시기도 그냥 나온 것 같지는 않다. 당시 미국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라이스의 뜻이라며, 방북 시기로 2008년 3월을 제시했는데, 올해(2007년) 방북해야 한다는 김계관 부상의 주장에 밀려 9월 방북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여러 돌발 변수로 인해 시간이 계속 늦춰져, 결국 라이스가 얘기했던 시기에 근접한 것이다.

ⓒAP Photo2008년 2월26일 평양에서 공연할 예정인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 장면.
라이스가 선봉장이라면, 주전은 역시 부시 대통령이다. 2000년 올브라이트의 방북이 클린턴 방북을 위한 길 닦기였던 것처럼, 라이스의 방북 역시 부시와 김정일, 또는 남한의 새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 등이 빚어낼 메인 이벤트의 테이프를 끊기 위함이다. 그것은 바로 지난 2006년 11월 부시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언급한 ‘한국전쟁을 종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이 바로 2008년 동북아의 가장 큰 국제 행사인 베이징 올림픽 개막일(8월8일)을 전후해 4자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 또는 평화협정이 나오리라는 시나리오이다. 베이징 외교가 역시 개막식 행사에 맞춰 한반도 관련 빅 이벤트 유치하기 위해 물밑에서 치열하게 움직여왔다.

베이징 올림픽 전후 해 4자 정상선언 가능성

그 다음,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4월과 8월 사이의 공백기, 대략 6, 7월께 중동 문제와 관련해서도 모종의 빅 이벤트가 준비 중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그동안 핵 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 간에 물밑에서 전개되어온 협상의 성과물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12월3일 미국 정보기관들이 발표한 국가정보평가(NIE) 보고서(이란이 2003년에 이미 핵 프로그램을 중단한 이래 현재까지 핵 개발을 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는 이란과의 물밑 협상 과정에서, 이란 측의 요구에 의해 발표된 것이라고 한다.

즉 현재 미국과 이란 간에는 수면 아래에서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핵사찰 및 관계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년 2008년이 미국의 대선 기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4월 평양, 6~7월 테헤란, 그리고 8월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라이스 장관 및 부시 대통령의 행보도 선명해질 것이다.

워싱턴과 평양, 그리고 테헤란을 잇는 미국의 외교 스케줄 간에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지난해(2006년) 8월 이후 미국과 북한 관계의 이면에는 ‘중동 변수’가 큰 요소로 작용해왔으나 이 부분은 그동안 철저히 불랙박스에 숨겨져 있었다. 최근 그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 직접 계기가 바로 지난 12월3일부터 5일까지 있었던 힐 차관보의 평양 방문이다.

부시 대통령의 친서 전달로 더욱 주목되었던 그의 평양 방문은 연말까지로 예정된 북한의 핵 프로그램 목록 신고를 독려하기 위함이었다. 힐 차관보는 지난 10월17일 시드니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까지만 해도, 그동안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의 양이 문제일 뿐 나머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해왔다. 그런데 이번 방북 과정에서는 플루토늄뿐 아니라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북한과 시리아 간의 핵 커넥션 등 해묵은 쟁점을 모두 들고 나와 그 배경을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됐다.

ⓒReuters=Newsis지난 9월25일 유엔 총회에서 연설 중인 이란의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
그 이유와 관련해 유력하게 거론된 게 바로, UEP 문제에 대한 북한의 불성실한 해명이 화근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UEP와 관련해 문제가 된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이 클린턴 정권 말기 러시아 업체로부터 구입해 들여온 알루미늄 147t(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는 원심분리기용 알루미늄 강관 약 2600개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의 사용처와 관련한 문제이고, 또 하나는 파키스탄의 칸 박사로부터 들여왔다는 18개의 원심분리기의 행방을 밝히는 문제이다. 그동안 UEP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던 북한 김계관 부상은 올해 들어서는 ‘적극 해명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힐 차관보를 안심시켜왔다고 한다.

그런데 11월 들어, 북한이 해명한다고 내놓은 얘기들이 미국을 전혀 납득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알루미늄 147t의 용처에 대해 김계관은 다연장포를 발사하는 과정에서 총열이 찢어지는 문제와 관련한 실험을 하느라 알루미늄 강관을 수입했고, 실험 과정에서 일부 없어졌다고 해명했다.

또한 18개의 원심분리기에 대해서는 자신들은 필요가 없어 이미 시리아에 넘겼고, 지난 9월6일 이스라엘 폭격기의 기습 폭격으로 이미 전부 파괴됐다고 해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같은 해명이 화근이었다. 그 정도 가지고는 미국을 납득시킬 수 없었고, 특히 시리아로 원심분리기를 넘겼다는 설명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미국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난 9월6일 발생한 이스라엘 기의 시리아 시설물 기습 폭격 사건은 재대로 밝혀진 게 거의 없을 만큼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미국·이스라엘·시리아·북한 등 관련 4개국 모두 직접 설명 없이 침묵으로 일관해온 탓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영국 언론들이 일부 소식통을 인용해 여러 가지 설을 유포해왔다.

최근 〈시사IN〉은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이 사건의 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사IN〉과 접촉한 서방의 한 소식통은 문제의 시리아 측 타깃이 북한의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와 같은 모델의 원자로를 짓기 위한 공사 현장이었으며, 북한 기술자들이 현장에서 공사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폭격기들이 폭격을 가한 시점은 이미 부지 조성 등 기초공사가 끝나 원자로 가설을 위한 본 공사에 진입한 단계였다.

북한 측은 이 원자로에서 생산될 플루토늄의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같은 모델인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에서 생산된 플루토늄 샘플을 시리아에 사전에 넘겨줬고, 이 샘플은 공습이 있기 직전 시리아 군으로 위장한 이스라엘 특수부대원들에 의해 이미 탈취된 상태였다. 이 소식통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북한 기술자들의 원 소속 기관명까지 미국이 이미 파악했음을 내비쳤다.

북한-시리아 핵 커넥션이 북-미 대화 촉발

〈시사IN〉은 북한 사정에 밝은 또 다른 정보 소식통을 통해 이같은 정보를 ‘크로스 체크’했다. 그 결과 사실에 가깝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정보 소식통 역시 북한이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의 설계도와 기술자를 시리아에 파견한 것이 사실이며, 문제의 현장이 바로 그 원자로 건설 현장이라고 확인해줬다. 그는 당시 시리아에 파견된 북한 기술자의 숫자와 그 중 몇 명이 이스라엘 군 폭격으로 사망했는지도 정확히 언급했다.

그동안 해당 시설물이 북한 측이 제공한 원자로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의 일부 과학자와 지난 10월14일자 뉴욕 타임스 등이 일부 지적한 바 있으나 다양한 설에 묻혀 부각되지는 못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폭격 당시부터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 정부가 이미 시설물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AP Photo11월27일 아나폴리스 중동 평화회담에 참석한 시리아 외무차관 파이잘 메크다드(왼쪽).
그렇다면 북한은 왜 시리아에 원자로 기술을 제공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은 왜 그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을 지켜왔나.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의 설계도가 시리아에 건너간 시점은 지난해(2006년) 8월 말이었다. 7월5일의 미사일 발사 직후 북한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 할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북한과 오랜 친분을 쌓아왔고 북한산 미사일의 주 고객이었던 시리아 측에 핵기술을 팔았다는 것이다. 앞의 대북 소식통은 “시리아는 이란과 마찬가지로 핵무장을 통해 아랍의 종주국이 되겠다는 열망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이란보다 훨씬 많은 가용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나라였다”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과 시리아 간의 이 은밀한 핵 거래가 미국의 대북 정책 및 대이란 정책에 돌파구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워싱턴 한반도 전문가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매우 흥미롭다. 당시 미국은 북한이 원전 설계도를 시리아에 넘김으로써, 부시 행정부가 선언한 레드라인(금지선)을 간단하게 넘어버린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설계도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중동의 모든 나라로 핵이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다고, 미사일까지 쏘아대며 배수진을 친 북한을 제재할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핵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과 직접 대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라이스를 중심으로 한 국무부 팀은 이런 상황 논리로 네오콘을 설득했다. 이스라엘의 안보에 치명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네오콘으로서도 반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북한-시리아의 핵 커넥션이 미국과 북한의 직접 대화를 앞당기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지난해 10월31일과 11월26~28일 두 차례에 걸친 힐·김계관의 베이징 미팅과 올해 1월16~18일의 베를린 대화 등이 이런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

북·미 직접 대화가 시작되면서 북한과 시리아 관계에도 미묘한 변화가 발생했다. 북한이 시리아와 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핵동결 조처를 취한 것이다. 그러자 시리아는 다시 이란과의 제휴 관계를 강화했고, 그런 시리아를 눈여겨본 미국이 시리아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라이스 장관은 지난해 5월 말 북한·이란과의 직접 대화 방침을 천명하긴 했지만 특히 이란에 대한 접근 통로가 없어 애를 먹던 중이었다. 아랍 국가 중 유일하게 이란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시리아는 이런 점에서 매우 유용한 존재였다. 시리아를 채널로 한 미국의 대이란 접근이 올해 초부터 시작되었고 상당히 깊은 수준의 대화가 오고 갔다.

그렇다면 9월6일의 폭격 사건은 왜 일어났나. 서방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폭격을 주도한 팀은 국무성 협상팀이 아닌 정보기관 쪽이었다. 이들 정보기관으로서는 이미 1년여 동안 공사가 진행돼 본 공사에 들어가기 시작한 시리아의 원자로 공사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그는 “하룻밤의 수고로 핵 능력을 5년 이상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양쪽 다 교훈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시리아의 역할에 회의적이었던 체이니 등 네오콘은 이를 북한이나 시리아를 공격하는 빌미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이란과의 협상을 중시한 부시 대통령은 시리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 사건을 덮었을 뿐 아니라, 의회에 약 1억600만 달러의 대북 지원금액을 신청하는 등 북한 유화책을 유지했다.

자신의 남은 임기 중 3대 역점 과제로 이란 핵 문제와 북한 핵 문제 그리고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문제를 들고 있는 라이스 장관으로서는 시리아를 매개로 한 북한과 이란 문제의 연동이야말로, 3대 현안을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즉 북한 핵문제 해결이 이란 핵문제 해결에 자극을 주고, 미국과 이란 관계의 개선은 곧 중동 문제의 근원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개선에 서광을 비추게 되는 것이다. 지난 11월27일 워싱턴 아나폴리스에서 열린 중동 평화회담에서 2008년 말까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시점을 잡은 것도 우연의 일은 아니다. 2008년 4월 평양-6, 7월 테헤란-8월 베이징에 이어, 2009년 1월 예루살렘이라는 장대한 구상이 무르익어가는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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