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불기 시작한 적립식 펀드 열풍은 2007년 1가구 1펀드 시대를 열었다. 올해는 해외 펀드 열풍까지 번져 펀드 투자자 1인이 평균 1.36개의 펀드에 매월 29만원씩 투자하고 있다(국민은행 자료). 메리츠 증권 전망에 따르면 펀드 규모는 올해 말로 은행 예금 규모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한다. 저축의 시대에서 투자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투자의 시대’를 견인하는 데 최선봉에 선 이가 미래에셋금융그룹 박현주 회장이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박현주 회장은 국내 펀드 투자뿐 아니라 중국·인도 등에 투자하는 해외 펀드의 잇따른 성공으로 해외 펀드 투자 시대를 개척하기도 했다. 〈시사IN〉이 박현주 회장을 올해의 경제 인물로 꼽은 이유다. 박 회장은 최근 ‘CEO가 뽑은 올해의 CEO’에 선정되기도 했고(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조사 결과), 전설적인 투자 귀재인 워렌 버핏과 함께 ‘가장 닮고 싶은 투자자’로 꼽히기도 했다(새빛 아카데미 조사 결과). ‘2007년은 미래에셋과 박현주의 해’라고 할 만하다.
박현주 회장은 투자의 시대를 견인하는 동시에 미래에셋을 10년 만에 국내 최강의 금융 그룹으로 키웠다. 1997년 자본금 100억원과 9명의 조직으로 시작한 미래에셋은 국내외 11개 계열사를 거느린 금융 그룹으로 성장했다. 미래에셋 그룹은 자산 80조원, 임직원이 1만명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의 3분의 1(45조원)을 주무르고, 대표 펀드의 누적 수익률이 900%를 넘어 ‘펀드=미래에셋’이라는 등식을 만들기도 했다. 그 덕에 특정 자산·지역·섹터를 정해놓지 않고 전세계의 매력적인 투자 대상을 발굴해 집중 투자하겠다며 얼마 전 선보인 인사이트 펀드에는 삽시간에 5조원이 몰렸다. 그룹 덩지를 공격적으로 키우면서 1년 만에 1000명이 넘는 금융 인력을 미래에셋의 새 식구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미래에셋은 홍콩, 싱가포르, 영국 등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어서 세계 금융그룹의 권좌까지 노리는 중이다. 박현주 회장의 동물적인 투자 감각과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미래에셋이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국내 최고 금융 권력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박현주 회장, 괘씸죄에 걸렸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도 깊어지는 법이다. 미래에셋과 박현주 회장의 영향력이 커지자 견제 세력도 늘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금융 자본과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미래에셋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고, 금융감독 당국도 조사의 칼을 빼들었다. 금융감독원이 12월10일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물론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생명 등 미래에셋그룹 전체에 대한 검사에 착수했다. 투자의 위험성 등을 투자자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고 금융 상품을 팔지 않았나 점검(펀드 불완전 판매 실태 점검)하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법인뿐 아니라 미래에셋의 싱가포르 법인까지 조사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금융업계에서는 ‘펀드 불완전 판매 실태 점검의 주 타깃은 미래에셋그룹’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미래에셋과 박현주 회장이 금융감독 당국을 씹더니 괘씸죄에 걸렸다’는 말까지 돌았다. 박현주 회장은 두 달 전 “금융감독 관료들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발언을 쏟아내 화제가 됐다. 금융업계는 금융감독원이 ‘괘씸죄’를 묻기 위해 조사에 들어갔다면 미래에셋과 박현주 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그 칼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인사이트 펀드의 성패 여부도 미래에셋과 박현주 회장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묻지마 투자 열풍’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사면서도 5조원이라는 막대한 시중 자금을 빨아들인 인사이트 펀드가 성공한다면 박현주 회장과 미래에셋은 탄탄한 금융 권력을 거머쥘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는 그들의 독주를 곱게 보지 않았던 이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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