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의 키워드는 단연 ‘위장’이었다. 예일대 박사라는 위장 학력으로 미술계를 농락했던 신정아를 비롯해 각종 위장 학력자가 속속 드러났다. 윤석화·장미희의 학력 위조에서 시작해 최수종 오미희 최화정 주영훈 심형래 이경영 등이 허위 학력으로, 혹은 인터넷상에 잘못 기재된 학력으로 곤욕을 치렀다.
학력 위조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은 학력 위조가 드러난 연예인이 네티즌에 의해 철저하게 단죄되었던 것에 반해, 교수나 종교인 등 사회지도층에 있는 학력 위조범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 없이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사회지도층보다 연예인에게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기형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2007년 한 해 동안 위장이라는 수식어를 가장 많이 달고 다닌 사람은 바로 이명박 후보다. 위장이라는 단어로 기사를 검색해보면 대다수 관련 기사가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것이다. 수차례 위장 전입, 자녀들의 위장 취업, 대선 캠페인 위장 광고까지, 위장의 연속이었다. 이회창 캠프에서는 이 후보를 ‘위장 우파’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경우 ‘위장 재산’이 있는지가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사회지도층의 '위장'에 불신감 커졌던 한 해
위장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위장 삼성맨’이다. 형식은 검찰로,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으로, 혹은 국가 공무원으로 존재하지만 실제론 삼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 ‘위장 삼성맨’들의 정체가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드러났다. 김 변호사는 〈중앙일보〉가 삼성그룹으로부터 ‘위장 분리’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타들의 ‘위장 행복’도 한 해 동안 시청자를 씁쓸하게 했다. 결혼 12일 만에 파경을 맞이한 이찬·이민영 커플의 이야기와 11년 동안 ‘위장 잉꼬부부’로 행세했던 박철·옥소리 부부의 이야기는 시청자를 실망시켰다. 시청자들은 이제 알 것이다. 화면 안에서 행복하다고 모든 연예인 부부가 진짜 행복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가수 싸이의 ‘위장 복무’도 팬들을 실망시켰다. 병역특례 요원이었던 싸이는 ‘지정 업무인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에 종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병무청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받고 현역 입대를 통보받았다. 싸이는 현역입대 통보 취소청구 행정소송과 입대정지 신청을 냈지만 끝내 패소하고 입대 판정을 받았다.
위장과 관련해 올해 가장 스케일이 컸던 사건은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위작 사건이었다. 총 2829점의 위작 그림이 드러난 이 사건의 위작 규모는 역대 최대였다. 뻔한 위작 작품이 일부 화랑의 욕심과 ‘위장 전문가’의 농간에 의해 진품으로 둔갑해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미술 시장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위장과 관련해 가장 안타까운 세태는 ‘위장 학생’이 많다는 것이다. 졸업을 해야 할 시기를 넘기고도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이 두려워 9학기, 10학기를 수강하며 졸업을 연장하는 ‘위장 학생’의 모습은 ‘88만원 세대’의 쓸쓸한 자화상을 보여준다. 2008년에는 ‘위장’이라는 단어가 기사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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