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 투입은 없었다. 그러나 고립은 더 심해졌다.
5월11일 화요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군 팔당 일대 일명 두물머리 유기농 단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기도가 4대강 사업 구간인 이곳에서 이날부터 토지 측량과 감정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28일 국토해양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주민 반발로 감정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는 두물머리 지구에 대해 사업일정을 고려해 최대한 빨리 감정평가를 실시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공권력 투입은 없었다.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상수원공동대책위원회’ 방춘배 사무국장은 “어젯밤 경기도에서 전화를 걸어와 6·2 지방선거 때까지 강제적인 측량은 실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선거 이후로 공권력 행사를 유보한 셈이다.
오전 9시 37분, 트랙터 2대를 앞세우고 두물머리 유기농 단지를 출발한 농민·소비자·종교인·환경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연합 대오는 100m도 전진하지 못한 채 좁은 농로를 가로막은 경찰버스의 벽에 부딪쳤다. 맨 앞에 선 트랙터를 몰던 노태환씨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는 ‘팔당 댐이 들어서기 전 강변에 있던 모래사장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임을 자처하는 팔당 토박이다. 평소 순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왜 농기계 다니는 길까지 막고 난리여!”
그러나 트랙터는 끝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부릉부릉, 엔진 소리로 울분을 터뜨리던 트랙터는 십여 분만에 인간 대오 뒤로 퇴각했다. 대신 성난 농민들이 경찰버스 양옆으로 우회해 도보로 행진할 조짐을 보이자 이번에는 여경 한 개 소대가 이들을 막아섰다. 농민들이 멈칫했다. 앳되어 보이는 20대 여경들을 힘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다하다 이젠 별별 짓을 다한다.” “왜 이런 일에 여자들을 들러리 세우는 거냐.” 소비자로서 팔당 농민들을 지원하러 온 팔당생명살림 ‘아줌마’ 조합원들이 대신 나서 울부짖었지만 벽을 돌파할 수는 없었다.
양측의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휴대용 스피커를 잡은 유영훈 팔당생명살림 회장은 “우리는 지금 마지막 낭떠러지에 몰려 있다”라고 말했다. “땅을 지키기 위해 우리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 수단이 없습니다….” 호소하던 그는 결국 터져 나오는 울음에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팔당 문제는 서울시민의 상수원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라는 환경운동연합 김종남 사무총장은 “신양수대교 건너는 길에 팔당 농민들이 내건 현수막과 선전탑이 보이면 운전자들이 격려의 경적이라도 울려 달라”라고 당부했다. 이것만으로도 일 년째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싸우는 팔당 농민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책위는 5월10일~14일을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집중 투쟁 주간'으로 정하고 두물머리에서 농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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