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나무 종자가 더 필요합니다. 농사꾼이 종자가 없으면 뭐합니까?”(북한 측 개풍양묘장 지배인)

 

ⓒ시사IN 신호철북한이 잦은 물난리를 겪는 이유는 산에 나무가 적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 당국은 산림녹화 사업에 적극적이다. 개풍양묘장(위)은 남한 사업가 성재경씨가 사용권과 운영권을 갖고 있다.

“종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12월에 가지고 올 겁니다.”(남한 측 성재경 제일유통 회장)

지난 11월19일 오후 성재경 제일유통 회장(62)은 북한 개성시 개풍동 개풍양묘장에서 현지 관리인들과 묘목장 운영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 지배인과 관리 인부는 모두 개풍 지역에 사는 농민이고, 성재경 회장은 경남 진주에 본사를 둔 대북 사업가다. 성재경 회장은 북한 국토성으로부터 개풍양묘장 사용권과 운영권을 얻어 묘목 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 북한 측 당국과 남한 측 사업자 모두가 산림 녹화 사업에 열정을 보이면서 그가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남한 측 기업·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들이 모두 개풍양묘장을 답사하며 유사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개풍양묘장은 마치 모내기를 하듯 북한 곳곳에 심을 묘목을 기르는 곳이다. 개성공단에서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이어서 교통이 편리한데다 인근에 있는 죽백천 덕에 토질도 좋아 묘목장으로 최적지다. 개성 땅이 원래 마사토라 물이 잘 빠지는데 강 둑을 쌓아서 만든 농장이어서 땅이 기름지다. 묘목장을 보니 뒤에는 산이 있어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다. 12㏊(12만㎡)가 넘는 이 묘목 농장에 백합나무·살구나무·단풍나무·은행나무 등 묘목 12종 100만 그루가량이 자라고 있었다.
 

 

ⓒ시사IN 신호철성재경씨

개성시에서 25분가량 굽이진 2차선 도로를 지나오는 동안 차창에 비친 북한 산하는 나무가 거의 없어 보였다. 제일유통 직원 성연희씨(29)는 “북한 당국이 요즘 녹화 사업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라고 말했다. 동행한 민족경제연합(민경련) 개선총회사 김태길 사장은 “묘목 사업은 우리에게 필요한 사업이다. 나무를 심어야 할 것이 많다”라고 말했다. 묘목장 입구에는 ‘모두 다 산림 개조 사업에로’라고 적힌 표석이 보였다. 묘목장 끝 벽에는 ‘질 좋은 나무모를 더 많이 생산 공급하자’라는 주황색 구호가 크게 적혀 있었다.

이 묘목장에서 가장 많이 자란 품종은 백합나무다. 2006년 4월 930㎡에 2년생 묘목 2만3000그루를 심었는데 지금 절반 정도가 살아남아 1만830그루가 자라고 있다. 모두 2m가 넘게 컸다. 성연희씨는 “원래 백합나무는 20% 정도 자라면 성공이라고 본다. 여기는 국내보다 발아율과 생존율이 높다”라고 말했다. 성 회장은 “자라는데 맞춰서 적당히 솎아내야 되는데 지금 너무 빡빡하게 서 있어서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밖에 방문할 수 없어 현지 관리인 지도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아직 묘목장 시설은 미비했다. 관리 사무실은 낡은 기와집이 전부였다. 성 회장은 기와집을 허물고 현대식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그는 현지 관리인에게 새 사무실 도면을 설명하며 필요한 공사 자재를 12월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12ha에 100만 그루 자라"

성 회장은 6·15 선언이 있기 전인 1997년께부터 대북 사업을 하는 한국 사업가다. 나무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9년으로 임업 쪽에서는 최초 사업자다. 개풍양묘장을 운영한 것은 지난해 4월부터다. 그는 8년 동안 나무와 묘목 1300만 그루를 북한에 보냈는데, 남한에서 나무를 배송하는 데는 한계가 많아 북한에 묘목장을 직접 조성하기로 했다. 성재경 회장은 앞으로 북한 전역에 나무 1억 그루 이상을 심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과 올해 느티나무 종자 400kg, 살구나무 종자 2t을 파종했고, 백합나무 종자도 올해 추가로 40kg를 뿌렸다. 묘목장 관리에 동원되는 인부가 20~30명 된다.

제일유통은 아직 큰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성 회장은 이 묘목장에서 나오는 나무를 판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남한으로 수입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였다. 대신 북한에 나무를 심으려는 사람들이 개풍양묘장 묘목을 구입할 수 있다.

통일부 남북산업협력팀 윤현중 사무관은 “수익을 내는 기업활동(대북 협력사업)과 순수 지원사업은 구분된다. 묘목 관련 협력사업자는 제일유통 하나다. 지원사업을 하는 곳은 수없이 많다”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북한 산림 녹화 사업을 벌이는 단체가 급증하고 있다. 개풍양묘장은 그 중심에 있다. 경기도청은 최근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 개성 인근 묘목장 지원사업에 나섰는데 그 땅이 제일유통의 개풍양묘장과 겹쳤다. 혼선이 있었던 것이다. 통일부의 조정으로 경기도청은 개풍양묘장 맞은편 땅으로 옮겨갔다. 경기도청 박성환씨는 “그동안 몇 번 나무를 북측에 지원사업으로 보냈다. 그런데 검역 때문에 뿌리 흙을 다 털어가는 바람에 쉽게 죽어버렸다. 아예 묘목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사업 취지를 설명했다. 경기도청은 개풍묘목장 건너편 땅을 현재 2~3㏊ 확보했고 앞으로 9㏊까지 확보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사IN 신호철개풍양묘장(위)에 지난해부터 백합나무 등 묘목과 종자 100만 그루를 심었다.

시민단체도 녹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11월19일 성재경 회장의 개풍양묘장 답사 길에 경남 통일운동 시민단체 ‘하나됨을 위한 늘푸른 삼천’ 회원들도 동행했다. 이 단체 황철하 사무총장은 “북한 산하가 우리 1960·1970년대처럼 황폐화되어 있다. 우리가 녹화사업을 도와줘야 한다. 올해 제일유통에게 나무 50만 그루를 사서 북한에 지원했는데 이제는 직접 묘목장을 지원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개풍양묘장 이외에 다른 묘목장을 지원하는 단체도 많다. 올해 4월 결성된 ‘겨레의 숲’은 국내 30여 개 시민단체가 연합해 북한 산림 녹화 사업을 벌이는 곳이다. 연간 30억원의 사업비로 나무 5000만 그루씩을 북한에 심을 계획이다. ‘겨레의 숲’ 측은 “도시개발·다락밭 농지 전환·벌채 등으로 인해 북한 산림 면적 890만ha 가운데 약 150만ha가 황폐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묘목 사업은 남한과 북한의 이해관계가 잘 맞는 사업이다. 북한 측 당국은 매년 되풀이되는 수해 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나무를 많이 심을 절실한 필요가 있다. 남한 측 사업자의 경우 임업은 군사 전용 우려가 없다는 점에서 일부 보수세력의 ‘퍼주기 사업’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성재경 회장의 북측 맞상대인 민경련 개선총회사 김태길 사장은 “나무는 위로 자란다. 경협 사업도 나무처럼 위로 쑥쑥 뻗어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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