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의 한강 지역 답사는 여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이 벌어지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우리는 운치 있는 밤섬을 바라보며 시멘트 더미 위에 서 있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그 사업의 위험성을 사진과 글로 세상에 이야기하고자 모인 이 행사의 시작이 서울 한강의 여의도공원인 이유는 바로 우리가 밟고 선 시멘트 더미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4대강 사업의 핵심은 모든 주요 강을 서울의 한강처럼 만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흘러가는 강물을 수십 개의 보(작은 댐이라고 보면 된다)로 막아 철새가 모여들 모래톱과 민물고기가 부화할 여울을 없애고 거대한 어항처럼 물의 양을 잔뜩 늘린, 그리고 그곳에 공연장과 인공 공원과 도로와 고층 아파트를 건설할 토목 왕국의 전형적인 계획이 4대강 사업인 것이다.
한강 둔치에서 4대강을 떠올리다
답사를 떠나기 전, 4대강 사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가장 핵심 이미지는 지율 스님의 〈낙동강 숨결 느끼기 사진전〉에서 본 사진들이었다. 환경 공포와 재난의 코드로 가득 차 있는 이 사진들만큼 4대강 사업의 위험성을 한눈에 드러낸 것이 또 있을까? 누구나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 천인공노할 토건사업은 지율의 사진에서 증명하듯 여전히 신나게 진행 중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양쑥부쟁이와 꾸구리뿐 아니라 여울에서만 살 수 있는 수많은 민물고기가 무더기로 몰살당하는 지금, 이 정부가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데도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저리도 자신만만하게 이곳저곳에서 강바닥을 후빌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마음보다, 수많은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되는 이 사업의 당당한 의지의 근거가 궁금해서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부와 여당이 마치 ‘사이코패스 증후군’에 집단 감염된 것인 양 해석하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들에게 사망선고를 내려버리면 끝나는 일일까? 아니, 난 오히려 모든 책임과 비극의 결과를 이명박 정부에 몰빵(!)하는 지금의 청산주의적 태도에 회의를 느낀다. 왜냐하면 서울 한강을 거대 어항으로 완성한 것은 이명박-오세훈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토건 콤비였지만, 그 시작은 몇 십 년 전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지금 파괴되고 있는 4대강 유역의 주민들, 민주당 소속인데도 4대강 사업에 지지를 보내는 영산강 관련 지자체의 인사들은 몇 십 년 전 서울 ‘한강 개발’에 대한 꿈과 비슷한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잘못된 탐욕의 선택으로부터 우리 모두는, 이명박 정부를 끔찍해하는 우리 모두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게 내 무거운 발걸음과 어두운 심장의 배경이었다.
여의도에서 출발해 경기도 여주 여강선원까지 가는 여정에서 나는 ‘제2의 용산참사’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두 번 발견했다. 하나는 강변북로를 따라 상수에서 마포를 거칠 때 아파트촌에서 붙여놓은 큼지막한 플래카드이고, 다른 하나는 미사리 주민들이 걸어놓은 것이었다. 재개발·재건축이 2010년 우리에게 전해준 비극의 이름 용산. 좀 더 정확히 결론부터 말해보면 이건 부메랑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뉴타운과 주식, 펀드, 내 아이의 성공적인 교육, 그리고 축복처럼 다가올 부동산의 이익을 꿈꾸며 투표했던 바로 그 부메랑 말이다. 밖으로 보이는 것은 철거와 내쫓김이 두려운 사람들이 내는 신음 같은 플래카드였고 우리를 태운 버스의 텔레비전에서는 천안함의 함수를 인양하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양수리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두물머리 인근에 흔히 양수리 세트장이라고 불리는 종합촬영소가 있다. 두 작품을 그곳에서 찍었던 나에게 두물머리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는 아주 좋은 산책로로 기억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유기농 단지와 수풀은 그야말로 최고의 사색 공간이었다. 토요일 오후, 2차선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봄나들이 나온 많은 사람들. 그리고 이제 그들을 위해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이 아름다운 두물머리의 유기농 농지와 수풀을 싹 밀어버리고 자전거 도로와 생태(!)공원을 만들려 한다. 유기농업이 경기도의 희망이라며 세계 유기농대회를 유치하고는 ‘개량 한복’을 입고 만세를 부르던 그가 지금은 유기농업이 오히려 한강 상류의 오염을 발생시킨다며 비상식적인 발상의 전환을 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유럽에서는 강의 상류 하천지역에 유기농업을 권장하고 있기도 하다. 수질 개선을 위해서다. 아마 우리가 싸움에서 실패하고, 몇 년이 지난다면 당신은 콘크리트로 아름답게 치장한 자전거 도로를 아이들과 함께 달리며 인공적으로 부화한 민물고기들을 전시해놓은 수족관에서 자연·생태 교육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에 지금은 투쟁과 생명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들이 서 있다. 천주교 프란치스코회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고, 농민 50여 가구가 이 아름다운 곳이 파괴될 것을 두려워하는 시민들과 함께 미사를 본다. 그들은 측량을 하러 오는 파괴자에 맞서고 있다. 이곳에서 팔당생명살림의 유영훈 회장과 팔당대책위원회 서규섭 위원을 만났다.
부인은 한창 밭일 중인데 자신은 이곳에서 방문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있는 것이 못내 신경이 쓰이는 듯하면서도 담담한 서규섭씨의, 땅의 진정성을 믿는 말에서 조금 위안을 얻은 나는 유영훈 회장의 한마디에 두려움과 걱정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국 이 싸움은 가치관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나의 뇌와 심장을 번쩍거리게 만든 이 말은 1박2일의 짧은 한강 답사 일정에서 핵심이었다. 가치관의 싸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것은 단순히 자연을 파괴하려는 깡패와의 폼 나는 한판 승부가 아니다. 세상을 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다. 있는 그대로는 도저히 단기적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는 개발 논리와의 싸움이다. 그리고 단기 이윤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그동안 얼마나 달콤한 유혹이었는지 인정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심장 안에 숨어 있는 두려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내 소중한 아이가 나의 무능함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희망 없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소름 끼치는 악몽이 결국 지난 몇 년간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 사실적 주범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하이에나처럼 성공의 상징에 목매게 되었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 부당한 일이 아니라 무능과 실패의 결과라고 애써 외면해왔던 것은 아닐까? 2008년 촛불집회 때부터 유행처럼 번진 말이 있다. ‘잘못 뽑았다. 실수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저주하고, 총선 때 버렸던 그 사람을 ‘지·못·미’했다. 그러나 정작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건 어느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의 심장이고 미래가 아니었을까?
라이터에 새겨진 4대강 인부 모집 광고
여강의 아름다움이 소름끼치게 파괴되고 있는 여주의 어느 호프집 라이터에서 나는 한쪽에는 호프집 전화번호가, 다른 한쪽에는 4대강 사업 인력을 모집하는 광고가 인쇄된 것을 보았다. 그리고 여주의 한 시민은 여강이 서울 한강처럼 개발되면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오고 여주가 더욱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분께 내가 제공해드릴 수 있는 ‘악몽’은 죽어가는 단양쑥부쟁이나 민물고기의 펄떡거림이 아니다. 용산이다. 새만금이다. 그리고 뉴타운의 꿈을 꾸다가 이제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시민이며 문어발처럼 다가온 대기업 직영 SSM(초대형 슈퍼마켓)으로 인해 문을 닫아버린 절망의 자영업자들이다.
아마 지금도 거침없이 4대강의 삽질을 독려하는 정부와 한나라당은 믿는 게 있을 것이다. 하나는 새만금의 교훈이다. 이만큼이나 사업을 벌였는데 이제 와서 중단하면 경제적으로 손해라며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는 논리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기적인 이윤이라는 환상의 꿀단지일 것이다. 그들은 그것으로 이미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했고, 여전히 우리가 원하는 것이 거기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난 그들의 믿음을 산산조각 내는 데 한몫하기로 결심하며 두물머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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