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은 잿빛이었다. 만물이 피어나는 봄에도 겨울 풍경과 다름없이 황량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상풍교에서 바라본 낙동강 공사 현장은 빛깔 자체가 없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모래알도, 겨우내 움츠렸다가 푸른 싹을 틔우는 풀들의 기지개도 없었다. 잿빛 흙더미만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 흑백 사진을 보는 듯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기계만 굴러가는 흑백의 공사 현장에는 유일하게 주황색 포클레인만 제 색을 간직하고 있었다.
5월1일부터 이틀간 4대강 사업 공사 현장을 찾았다. 지난해 12월 25~27일 운하반대모임 교수들과 종교인, 국민소송단 변호사, 환경단체 활동가, 일반시민 40여 명과 함께 걸었던 그때와는 또 달랐다. 공사가 시작된 지 5개월여가 지난 낙동강 상류 지역은 몇 달 새 모래사장이 상당 부분 사라졌다. 낙동강 살리기 34공구 상풍교~강창교 일대 준설 작업이 진행 중인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공사 현장에는 가물막이가 유실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준설 작업 때 일어나는 흙탕물 때문에 제방을 쌓고 그 안에서 준설 작업을 하는데 그 중 일부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누런 물이 그대로 강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낙동강은 국내에서 모래톱이 가장 발달한 강이다. 모래톱이 중요한 이유는 모래가 물을 정화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정화뿐 아니라 사행천(구불구불한 하천)의 특성을 가지고 모래를 옮기는 역할도 한다. 정기영 교수(안동대)는 “모래 때문에 낙동강 하류로 내려갈수록 BOD가 낮아진다. 보가 생기게 되면 정체 구간이 생기고 정수 기능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월 4대강추진본부가 발행하는 잡지에선서는 ‘낙동강은 누런 지방층이 두텁게 낀 늙은 강이며, 지난 40년간 거의 돌보지 않은 강’이라고 표현해 모래를 지방으로 비유한 바 있다.
상풍교에서 머지않은 병성천 합류 바로 위 지점은 낙동강 33공구 상주보 공사 현장이다. 교각 3개를 세우고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지난해 찾았을 때는 가물막이 공사 시작 단계였는데, 지금은 그 공사가 끝나고 그새 보의 기본 골격이 드러났다. 공사장 옆 제내지에는 준설량을 짐작케 하는 거대한 높이의 토성이 쌓여 있었다.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은 상주보 공사 현장을 비롯한 준설 작업 풍경으로 절경이라는 명성을 잃고 있었다. 현장에는 야간 공사를 위한 서치라이트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간 환경단체들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상주보가 완공될 경우 모래톱과 습지가 발달한 내성천이 잠길 우려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낙동강 상류의 구담보 공사 현장을 지날 때 지역 주민 한 명이 다리에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우린 무슨 공사를 하는지도 모른다. 맨 날 뭘 퍼나르고 먼지 날리는 건지”라며 우려했다. 정부 말대로 일자리가 늘어난 것도 아니라고 말을 보탰다. 구담보가 지어지는 자리에는 구담습지가 있었다. 습지는 모래와 마찬가지로 정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안동 지역 생활수가 이 지역을 지나며 1급수로 회복되어 왔다. 하지만 구담보 건설 때문에 습지는 사라질 운명이다. 전문가들은 수질뿐만 아니라 구담보 건설이 진행되면 홍수 때 물이 정체되어 하회마을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다. 내성천 상류에 영주댐까지 건설되면 하회마을 하류에 쌓이는 모래 유출량이 줄어들어 절경을 자랑하는 백사장이 사라질 위기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공사는 강행 중이었다. 강천보 건설 현장은 약 23%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현장 책임을 맡고 있는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도리섬에 형광 줄이 쳐 있는 단양쑥부쟁이 보호지로 기자들을 안내했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단양쑥부쟁이는 자갈이 덮인 척박한 땅에서 자란다. 2005년부터 도리섬 인근에서 발견됐다. 꽃이 피기 전에는 자칫 잡초로 착각하기 쉽다고 한다.
도리섬 인근은 4대강 사업이 끝나면 생태공원으로 변한다. 5월2일 현장을 방문한 ‘4대강 사업저지 및 생명의 강 살리기 범국민대책위원회’는 남한강 일대 4대강 사업 현장에 대한 항공 촬영 사진을 공개했다. 강천보 공사 현장이 찍힌 사진에는 벌거숭이가 된 공사 현장의 막대한 규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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